與 주요 의사결정 좌지우지...영향력 더 커져
당원투표 중요...강성 지지층 눈치볼 수밖에
[서울=뉴스핌] 이재창 정치전문기자 = 여권의 주요 의사 결정에 진보 강성 지지층(개딸)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대 특검법 여야 합의 파기와 추석 전 검찰청 폐지,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 개최의 배후에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권의 주요 의사 결정이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들의 입김은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더 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에 나설 후보들의 최대 관심사는 당의 공천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겠지만 공천을 좌우하는 것은 사실상 비중이 큰 당원 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당원 투표에서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천을 받기 위해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 |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추미애, 박지원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고(故) 이희호 여사 서거 6주기 추모식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5.06.10 mironj19@newspim.com |
지난 8월 대표 경선은 그 예고편이었다. 명심(이재명 대통령 마음)이 박찬대 의원에게 있다는 설이 파다했으나 먹히지 않았다. 박 의원은 확보한 의원 수에서 정청래 대표에 우위를 보였고, 의원의 입김이 통하는 대의원 투표에서 어렵사리 승리했으나 당원 투표에서 참패했다. 당원들이 명심 논란에도 강성인 정 대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강성 당원은 의원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김어준 씨 같은 유튜버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게 정설이다. 민주당 의원 166명 중 100명이 넘는 의원이 김 씨 유튜브 방송에 경쟁적으로 출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출연을 못한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그만큼 김 씨의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정치 의사 결정의 주도권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현실이다.
강성 지지층의 입김은 막강하다. 3대 특검법 여야 합의를 파기한 배경에 이들이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당초 여야가 합의한 특검법은 원안에서 기간이 15일 줄어든 정도다. 필요하면 특검법을 또 개정해 늘리면 된다. 파기를 할 만한 내용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여권 내 사전 조율도 이뤄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강성 지지층이 강력히 반발했다. 청산 대상인 내란 세력과의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야합이라고 했고, 정청래 대표는 재협상을 지시했다. 중요한 여권의 의사 결정이 강성 지지층에 의해 뒤집힌 상징적 사례다.
추석 전 검찰청 폐지를 밀어붙인 배후에도 이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초 대통령실과 정부는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추석 전 마련한 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후속 조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입장은 달랐다. 개혁은 전광석화처럼 추진해야 한다며 추석 전 마무리를 공언했다. 이른바 속도전이다. 이 대통령이 두 차례나 국민이 납득할 만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은 정 대표의 속도전에 제동을 건 것이었다. 미묘한 신경전 끝에 결국 강성 지지층의 지원을 받은 정 대표의 입장이 관철됐다.
이렇듯 이들의 입김이 더 커지면서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도 더 강경해지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얘기가 나오더니 급기야 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청문회 개최까지 결정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긴급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30일 열린 청문회에 조 대법원장은 출석하지 않았다. 3권 분립에 어긋난다며 사전에 불출석을 통보했다. 조희대 없는 조희대 청문회가 열린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조 대법원장 성토의 장이 됐다.
청문회는 사전에 지도부와 협의도 없었다고 한다. 독자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여론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을 협의도 없이 결정한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따끔한 질책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 대표는 오히려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 대표는 한 수 더 떴다. 정 대표는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며 "사법부가 하늘 위에 있나. 조희대 불출석 증인에게 묻는다"고 강하게 조 대법원장을 성토했다.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청문회 개최를 주도한 추미애 법사위원장과 강성 행보 경쟁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대목이다.
조희대 청문회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너무 나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친명(친이재명)계 중진인 김영진 의원은 최근 MBC 라디오에서 "대법원장 청문회라는 건 대단히 무거운 주제이고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라며 "약간 급발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3~25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55%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고 34%는 '잘못하고 있다'고 했다. 긍정 평가는 지난주보다 5%포인트(p)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3%p 올랐다. '의견 유보'는 11%였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 급락의 주요 요인으로 여당의 조희대 때리기가 꼽힌다. 갤럽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응답률은 11.4%다.
이런 여론 악화와 당내 일각의 우려에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강성 지지층의 입김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강성 지지층이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공간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당원 투표가 공천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천을 받으려면 강성 지지층에 어필하는 게 유리할 수 있는 구조다.
청문회를 주도한 추 위원장이 강한 메시지를 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추 위원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에서는 광역단체장 출마를 고민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 이들은 공천을 위해 강성 행보 경쟁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은 당의 과도한 강경 일변도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자칫 여론에 악영향을 미쳐 국정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무에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답답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4개월도 안 된 상태에서 당정 간 간극이 커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leej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