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시행 앞두고 노동·중기부 잇단 간담회
사용자 범위·쟁의 대상 확대에 협력사 피해 우려
경제6단체 "시행 유예 필요"…정부 "연착륙 지원"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제계의 온도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동계는 불법 파업에 따른 과도한 손해배상·가압류 위험을 줄이고 단체 행동권을 보장하는 취지라며 환영하는 입장인 반면, 경제계는 사용자 범위와 쟁의 대상이 무제한으로 넓어져 산업 전반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다.
정부는 제도 연착륙을 강조하고 있으나 시행까지 남은 약 6개월은 쉽지 않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아직 지침과 매뉴얼이 부족한 상황이라 현장에서는 거래 단절과 경쟁력 약화 등에 대한 위기감이 여전할 뿐더러, 실제 교섭 현장의 갈등을 제도만으로 제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결국 남은 시간 동안 현장 불안을 얼마나 해소하느냐가 법 시행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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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경제6단체 및 경제단체협의회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조법 개정 반대를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08.19 pangbin@newspim.com |
◆ 법 시행 앞두고 경제계 불안감 고조…"정부가 보완조치 마련해야"
22일 정부·경제계 등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은 공포 6개월 후인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앞서 노란봉투법은 지난 7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돼, 8월 본회의에서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장 주도로 가결됐다. 이후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법안에 최종 서명·공포했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배 책임을 제한하고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업이 파업이나 집단 행동으로 발생한 영업 손실을 이유로 개별 노동자에게 과도한 손배를 청구하는 관행을 막자는 취지다. 개정안에는 ▲근로조건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를 사용자에 포함하고 ▲노동 쟁의 대상을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확대하며 ▲노조나 근로자에 대한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번 개정에 대해 노동계는 파업 참가자에게 수억원대 손배소가 제기되거나 급여가 압류되는 현실을 막고, 노동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라고 강조한다. 반면 경제계는 교섭 상대가 원청까지 확대되고 파업 사유도 경영상 결정으로 넓어질 경우, 공장 가동 중단이나 거래 차질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산업 전반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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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경제계는 손배 상한선 신설 등 보완책을 제시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회는 노동계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형태로 법안을 처리했고, 정부는 이를 내년 3월부터 시행하는 일정을 확정했다. 시행까지 약 6개월을 남겨두고 정부는 연착륙을 강조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불안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중소벤처기업부는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한성숙 중기부 장관 주재로 간담회를 열고 업계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는 자동차·조선·금속 패널 등 다양한 업종 대표들이 참석해 제도의 파급력을 놓고 우려를 쏟아냈다.
간담회에서는 먼저 사용자 범위가 넓어질 경우 원청이 부담해야 할 교섭 책임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과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다. 또 벤처·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노사 분쟁에 대응할 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만큼, 남은 기간 동안 맞춤형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분쟁 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서비스업계는 계약 구조가 복잡해 사용자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이에 매뉴얼 제작 과정에 업종별 특성을 반영해 달라는 요청이다. 아울러 제조업계에서는 원청과 노조 간 교섭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교섭력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중소 협력사가 불리해지지 않도록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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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비롯한 경제6단체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노조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8.18 pangbin@newspim.com |
이보다 앞서 지난달 19일 열린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도 업계의 불안은 그대로 드러났다. 건설업계는 한 현장에서 여러 협력업체가 동시에 일하는 특성상 파업이 발생하면 연쇄적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업계 역시 수만개 부품으로 얽힌 공급망 구조 때문에 일부 협력사의 문제가 산업 전체의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선업계에서는 글로벌 경쟁 환경을 강조했다. 이미 중국이 인력과 근로시간 유연성을 무기로 한국 조선업을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교섭 대상이 협력사까지 확대되면 장기간 교섭과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 결국 경쟁력 유지 자체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경제6단체는 이미 지난달 공동 성명을 통해 강력한 반대 입장을 낸 바 있다. 이들은 "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노동 쟁의 대상이 되는 경영상 결정이 어디까지 해당하는지 불분명해 향후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는 유예 기간 동안 경제계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충실히 보완조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 정부, 현장 혼란 최소화 방점…노동·중기 장관 "6개월 동안 대책 강구"
정부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연일 내놓고 있다. 노동계와 경제계의 시각차가 뚜렷한 상황에서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산업 현장의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관계 부처는 간담회와 전문가 발제 등을 통해 현장 목소리를 적극 수렴하고, 매뉴얼 보완과 맞춤형 컨설팅·교육 지원 등의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제도 시행 준비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노동부는 최근 업계와의 소통을 통해 제기된 불확실성과 거래 단절 등에 대한 우려를 파악하고, 시행 초기의 불확실성을 줄일 방안 마련과 현장 설명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주무 부처로서 제도 연착륙을 위해 필요한 대안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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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에 관한 질문에서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5.09.18 pangbin@newspim.com |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시행 시기까지 6개월 정도 남았는데, 기업이나 야당 의원들이 과도하게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찾아뵙고 성실히 말씀드리겠다. 전담반(TF) 등을 통해 잘 경청하고 설명하겠다"며 "처음 가보는 길이지만 다양한 노선을 마련해 놓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기부는 법 시행 초기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노동부와 협력해 구체적인 지침·매뉴얼을 마련하고, 업종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컨설팅과 교육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 중소기업이 언제든 제도 변화와 관련한 애로를 전달할 수 있도록 소통 창구를 상시 운영하고, 현장 건의사항을 정책 설계 과정에 적극 반영할 방침이다.
이날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중소기업이 제도 변화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건전한 노사관계 정착과 산업생태계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며 "법 시행까지 남은 6개월 동안 현장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제도 시행이 혼란 없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확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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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09.15gdlee@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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