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례 참고해 전략적 접근 권고
"韓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필요 없어"
"길들이기 해석 과도해…협상 후순위"
"결렬보다 연기…美, 협상 우위 의도"
[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한미 재무·통상수장 간 '2+2 통상협의'가 미국의 일방적 통보로 우리 측 대표단의 출국 직전 돌연 연기됐다.
미국의 압박 전술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 등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고, 한국은 조급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15%의 상호관세율에 먼저 합의한 일본의 선례를 참고해 '시기가 아닌 질'을 중시하는 미국의 태도에 맞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이날 강훈식 비서실장 주재로 통상대책회의가 열린다. 회의에는 김용범 정책실장, 위성락 안보실장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이 참석할 예정이다.
회의는 한미 경제·무역 분야 2+2 장관급 회의가 갑작스럽게 연기된 이후, 향후 한미 협상 대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앞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귀국한 위 실장은 이날 회의에서 방미 결과 상황을 공유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측은 2+2 협의를 하루 앞둔 전날(24일)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의 긴급 일정으로 협의 연기를 통보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출국 약 한 시간 전 인천공항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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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도=뉴스핌] 김학선 기자 = 미국 측 요청으로 한미 2+2 통상 협의가 연기된 24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출국 직전 취소 소식을 듣고 인천공항 2터미널을 나서고 있다. 2025.07.24 yooksa@newspim.com |
기재부는 "연기 요청 메일에서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미안하다고 언급했다"며 "조속한 시일 내 일정을 잡자고 했다"고 전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베선트 장관은 오는 28일부터 29일까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와 3차 고위급 무역 협상을 앞두고 있다. 일정 변경 사유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나, 해당 일정 등이 한국과의 2+2 협의를 연기한 배경으로 풀이된다.
2+2 협의가 연기됐으나, 구 부총리보다 먼저 방미길에 오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일정은 그대로 진행됐다.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은 24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미국 측 카운터파트너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을 만났다. 회의에서는 제조업 협력 강화 방안 등 관세 협상 타결 방안이 논의됐다.
김 장관은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제조업 분야의 한미 협력 강화 방안을 설명하고,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 및 상호관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23일(현지시각)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장관과도 회담을 진행했다.
이번 2+2 협의 연기가 전날 갑작스러운 통보로 이뤄졌고, 미국이 당초 밝힌 상호관세 발효일이 8월 1일(현지시각)인 만큼 일각에서는 '한국 길들이기'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가 없고, 먼저 협상을 타결한 일본의 사례를 마지노선으로 삼아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봤다. 앞서 일본이 타결한 상호관세율 15%를 한국이 얻어낼 수 없다면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고도 조언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길들이기'라는 해석은 한국이 과도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미국이 바쁘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협상할 나라들이 선순위가 있고 후순위가 있는데 우리는 아주 선순위는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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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 관세협상 진전과 산업 분야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산업부] 2025.07.25 rang@newspim.com |
허 교수는 또 "베센트 재무장관은 '8월 1일(상호관세 발효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협상의 질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며 "협상을 언제 끝낼지는 미국 의지에 달렸고 더 좋은 패키지를 요구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이어 "일본이 먼저 협상을 타결한 것이 모의고사 문제를 한 번 보고 시험을 보는 것처럼 한국에 좋은 점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2+2 협상은) 결렬보다는 연기로 보인다. 미국이 협상에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미국이 시그널로 주는 것은 '일본을 봐라' '세일즈 할 만한 걸 가져와라' 이런 압력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코틀랜드 일정에 베센트 재무장관이 동행한다고 하는 만큼 우리가 만날 일정이 촉박할 것 같지만,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일본 수준(15%)은 우리가 최소한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며 "이 마지노선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없고,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미국이 계속 요구한다면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베센트 장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각) CNBC에 출연해 "협상의 핵심은 시기가 아닌 품질"이라고 말했다. 베센트 장관은 또 24일(현지시각) 같은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알다시피 한국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정말, 정말 협상을 원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은 늘 서로를 경계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 합의를 읽을 때 한국의 입에서 욕설(expletives)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shee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