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 코인에서 달러 비중 95%
국채 수요 창출 및 달러 패권 강화
암호-중상주의 의미는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디지털 달러화가 글로벌 무역에서 신종 무기로 부상하고 있다는 주장이 관심을 끈다.
달러화에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이 전세계 무역시장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 국채 수요를 늘리고, 달러화 패권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번주 골드만 삭스와 소시에테 제네랄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루브르 박물관에 모여 가상화폐 컨퍼런스를 열고 장밋빛 시장 전망을 나눈 가운데 블룸버그는 칼럼을 통해 디지털 달러가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장악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야심의 연장선이라고 경고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규모가 2500억달러에 이르고, 이 중 95%가 달러화 표시인 것으로 파악됐다. 스테이블 코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의회 그리고 투자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의 뿌리는 자유지상주의적이면서 반국가적인 데 반해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이 지배하는 기존 기술 및 통화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주장한다.
특히 유럽 주요국들이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팽창에 바짝 긴장하는 표정이다. 전문 간행물 유로 스테이블 워치에 따르면 전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의 비중이 20%에 이르지만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1%에도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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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달러화 [사진=로이터 뉴스핌] |
프랑스 중앙은행의 프랑수아 빌르와 드 갈로 총재는 최근 스테이블 코인에 의한 죽음, 즉 말 그대로 '탈 유럽화'의 위험을 경고해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유럽은 소셜 미디어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컴퓨팅, 비자와 마스터 카드를 통한 결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서비스를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는 로벅스나 적립금 같은 단순한 가상 세계의 얘기가 아니다. 미국 지니어스(GENIUS) 법안이 제안한 대로 규제를 받는 스테이블 코인은 실제 유동 자산으로 뒷받침된다. 서클을 포함한 발행사에는 수익원을 제공하고 미국 정부에는 국채 수요 기반을 형성해 주는 구조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스테이블 코인이 향후 수 년간 국채시장에 최대 2조달러 규모의 수요를 창출해 줄 것이라고 거듭 언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미 재무부가 국채 발행을 토큰이 필요로 하는 단기물 국채에 중점을 둘 가능성을 점친다. 프랑스 중앙은행의 2023년 논문에서는 유통 중인 스테이블 코인이 늘어나면서 달러화 표시 기업 어음 발행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급됐다.
이 같은 디지털 블록들을 연결해 보면 무역전쟁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말한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은 본질적으로 암호화폐 거래에서 사용되지만 가령, 아마존이 이른바 '아마존벅스' 즉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결제하는 고객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할인 기회를 제공한다면 어떨까. 연간 쇼핑 금액 2700달러에 유럽의 고객 기반 3억5000만명을 곱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나온다.
최근 경제학자 에릭 모네는 이를 '암호-중상주의(crypto-mercantilism)'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달러화의 과도한 특권의 21세기 버전이라는 얘기다.
물론 유럽에 대응 방안이 없지 않다. 디지털 유로를 개발하거나 유로화 기반의 스테이블 코인을 장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 비해 상황이 복잡하다. 근본적으로 유럽 내 금융 통합이 먼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유로화의 글로벌 영향력과 범위를 확대하는 일은 회원국들의 보다 긴밀한 통합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는데 이는 기술적이기보다 정치적인 영역의 문제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한다.
유로존이 은행 합병을 허용하는 데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서 유로화가 달러화에 견줄만 한 입지를 구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다.
한편 스테이블 코인의 주요 발행사 중 하나인 서클은 상장 이후 기업 가치가 3배 급등, 236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24년 수익의 150배에 이르는 수치다.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이를 '저커버그의 복수'라고 말한다. 메타 플랫폼스가 자체적인 디지털 달러 계획을 추진하다 전세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지 6년만에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몸집을 2500억달러까지 불렸기 때문이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