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출장 앞둔 이창용 '제로 금리' 전제하고 언급…금리 휴일 사이 급등락
非기축 통화국은 '불가능' 중론…5월 말 성장 전망 하향 수정 폭 클 것 암시
"경기 하강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어"…연말 기준금리 2.25%보다 낮아질 수도
[서울=뉴스핌] 온종훈 선임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양적완화(QE)' 를 언급하면서 국고채 금리가 급등락하는 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한은과 한국금융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심포지엄 환영사에서 "선진국처럼 정책금리가 제로 수준에 근접하게 되면 양적완화와 같은 대차대조표 확대 정책을 도입할 수 있을지, 도입이 바람직한지 등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한은 양적완화 도입 검토"라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은은 이날 저녁 참고자료를 통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또 이 총재의 발언은 기준금리가 '제로 금리'에 근접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대체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무엇인지를 "사전에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심포지엄에 참석한 서영경 전 금융통화위원을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도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같은 양적완화가 필요하지 않으며, 실행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라고 전했다.
이 총재의 국회 출석 일정 때문에 이날 환영사를 대독한 박종우 한국은행 부총재보도 "비기축통화인 우리나라 실정에 도입할 수 있을지, 아니라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연구해 보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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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마친 후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총재는 5월 금통위에서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GDP 성장률 전망을 낮출 것을 예고했다. 2025.04.17 photo@newspim.com |
그러나 3일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포함해 14일까지 열흘 이상의 장기 유럽 출장을 떠나는 이 총재가 논란이 당연히 예견된 '양적 완화'를 언급한 것과 심포지엄의 구성과 시점 등이 단순한 '연구 차원' 이상인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여졌다.
이날 심포지엄은 제 1세션은 공대희 한은 금융시장국 공개시장 부장의 '한은 공개시장 운영의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제 2세션은 최동범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주요국 대차대조표 정책 및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당장 이날 국고채 3년물의 금리가 전 거래일보다 전 거래일보다 0.043%포인트(p) 내린 연 2.267%로 마감했다. 3년물 금리가 2.2%대로 내려온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도 2.563%로 전 거래일보다 0.04%포인트 내렸다. 국채금리는 1일 휴장 후 2일 다시 일제히 오르는 등 급등락하고 있다.
대다수 거시경제와 시장 전문가들은 이 총재 발언과 한은의 입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등 초유의 불확실성속에서 침몰하는 경기에 대응하는 '통화 정책 수단'을 확충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경기가 많이 둔화하면서 금리 인하 기대가 높아지는 타이밍에 양적완화 언급이 나온 것이 공교롭다"면서 "올해 금리 인하 레벨이 어디에서 그칠지 시장의 설왕설래가 이뤄지기 시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요 시점은 이달 말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회의와 수정 경제전망 발표다. 이미 지난달 17일 통방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2.75%로 동결하면서 5월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화와 올해 성장률 전망의 하향 수정을 예고했다. 한은은 지난 2월 25일 당초 올해 성장률을 1.9%에서 1.5%로 하향 제시했으나 더 내리겠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발 관세 전쟁의 여파는 이미 1분기 역성장(-0.2%p)으로 가시권으로 들어오고 있다. 여기다 미국마저 1분기 역성장(-0.3%p) 하면서 가뜩이나 "장기 저성장의 구조"(이창용 총재) 갇힌 한국경제가 경기 하강 국면이 어디까지 치달을 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따라서 기준금리 이외의 다른 방안까지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사실상 양적완화와 비슷한 맥락에 있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정례화'가 언급됐고 한은은 올해 중 실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내수 부양을 위해 연내 최소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해 연말기준으로 2.25%가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발 관세 충격으로 경기 하방 압력이 더 커지더라도 더 이상의 금리 인하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다. 가계부채와 환율 등에 민감한 한은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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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기하강 국면이 가팔라질 경우 5월에 빅컷(0.5%p 인하)를 단행하고 연말 금리가 2% 아래로 갈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한은 출신 한 경제학자는 "이 총재의 발언은 '양적 완화'라는 단어보다 통화정책 당국으로서 고민하고 있는 점 주목해야 한다"며 "트럼프발 관세 충격으로 전례없는 경기침체가 가시화되면 과거 연준(Fed)이 했던 '헬리콥터 머니'라도 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아직까지 경기 하강 상태가 얼마큼 어디까지 갈 지 알 수 없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ojh11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