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삼성다움' 강조한 위기 극복 메시지
경쟁력 흔들리는 삼성, 내부 위기감 확산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가전도 흔들
'삼성 정신' 되찾아야...조직 문화 혁신이 해법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임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삼성다움'을 강조했다. 선대 회장부터 이어진 삼성 특유의 도전 정신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다. 안팎의 위기에 몰린 삼성은 조직 내부에서도 문제를 야기해 왔다. 문제를 발견하면 악착같이 해결하던 삼성 특유의 치열한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부회장이 "과거 성과에 안주해 승부 근성과 절실함이 약해졌다"는 반성을 하는 등 조직 문화 문제점은 충분히 인식된 상황. 이 회장의 과감한 쓴소리는 조직 문화로 비롯된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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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스핌DB] |
◆이재용 회장 "삼성다운 저력 잃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사업의 '초격차 경쟁력'이 무색해졌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와 중국·미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 국내외 불확실한 경영 환경이 맞물린 결과다. 이재용 회장의 오랜 법적 리스크도 발목을 잡았다.
내부에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2등을 지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 회장은 이 같은 내부 분위기에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과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말부터 삼성전자를 포함한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다.
삼성은 임원 대상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위기가 아니라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이 회장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삼성은 생존의 기로에 섰다. 경영진부터 반성해야 한다. 사즉생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이 회장의 '삼성 위기론' 언급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1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최근 들어서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지금 저희가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은 이번 임원 세미나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임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대처를 요구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강한 의지를 전달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임원들에게 '위기에 강하고 역전에 능하며 승부에 독한 삼성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크리스털 패를 전달했다. 참석자들은 "이 문구가 이번 세미나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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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1980년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삼성] |
◆1위는 멀어지고, 2·3위 업체는 턱밑 추격
실제로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은 1등과의 격차는 멀어지고, 2,3위 업체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먼저 파운드리에서 1위 TSMC와의 격차는 멀어지는 반면 3위 중국과의 격차는 좁혀지고 있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8.1%로 전 분기(9.1%) 대비 1.0%p 하락했다.
반면 TSMC의 시장 점유율은 64.7%에서 67.1%로 2.4%p 상승했다. 삼성전자와 TSMC와의 격차는 55.6%p에서 59.0%p로 3.4%p 더 벌어졌다.
3위 중국의 SMIC와의 격차는 더 좁혀졌다. SMIC의 시장 점유율은 6.0%에서 5.5%로 줄었지만,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더 크게 하락하면서 두 회사의 격차는 3.1%p에서 2.6%p로 줄었다.
삼성전자는 퀄컴을 비롯한 주요 파운드리 고객이 떠나면서 좀처럼 점유율 회복을 못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는 새로운 첨단 공정 고객으로부터의 매출이 기존 주요 고객사의 주문 감소를 완전히 상쇄하지 못해 매출이 소폭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D램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직까지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2위의 추격이 거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기준 매출 112억5000만 달러로 전 분기 대비 5.1% 증가하며 1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LPDDR4 및 DDR4 수요 감소로 인해 비트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시장 점유율은 41.4%에서 39.3%로 소폭 하락했다.
그 사이 SK하이닉스는 104억6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 분기 대비 16.9% 성장했다. 시장 점유율은 36.6%로 증가하며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더욱 좁혔다.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지난해 3분기 6.7%p에서 4분기 2.7%p로 줄었다.
SK하이닉스의 성장 원동력은 단연 고대역폭메모리(HBM)다. 지난 2023년 기준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삼성전자(38%)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3E 제품의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올 2분기 중 출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다만 당장 엔비디아에 HBM3E 납품을 시작한다고 해도 큰 매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어 D램 전체 매출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낸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액 56억 달러를 기록, 시장 점유율 33.9%를 차지했다. 전 분기(35.2%) 대비 점유율은 1.3%p 줄었지만, 2위 SK그룹(SK하이닉스+솔리다임)과의 격차는 14.6%p에서 13.4%p로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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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뉴스핌DB] |
◆탓 만 하지 말고 똘똘 뭉쳐 위기 극복하는 '삼성 정신' 되찾아야
스마트폰을 비롯한 TV, 디스플레이 상황도 여의치 않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수량 기준 전년(19.7%) 대비 1.4%p 하락한 18.3%를 기록했다.
TV 시장 점유율은 매출액 기준으로 전년(30.1%) 대비 1.8%p 하락한 28.3%를 보였다.
스마트폰 패널 시장에서도 매출액 기준 점유율이 2022년부터 56.7%, 2023년 50.1%, 지난해 41.3%까지 하락했다.
자동차의 계기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내비게이션 등을 제공하는 디지털 콕핏 시장 점유율도 같은 기간 17.9%→16.5%→12.5%로 순차적으로 하락했다.
삼성도 내부적으로 위기 극복을 위한 자가 진단에 나선 상황이다. 지난해 말 조직 개편으로 신설한 삼성글로벌리서치 내 경영진단실이 지난 1월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에 착수했다. 향후 경영진단은 다른 사업부로 확산될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예전 삼성은 미션이 주어지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해결하는 '삼성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며 "지금은 상법 개정 때문에, 주52시간제 때문에, 노조 때문에 같은 '탓'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똘똘 뭉쳐서 문제를 돌파해 나가는 삼성 정신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sy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