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의 강도와 전선의 범위를 정할 한 주
[서울=뉴스핌] 오상용 기자 =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는 전 세계 무역 종사자들의 가슴이 조여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공세가 주초부터 다시 불을 뿜을 것이라는 우려에 이들의 눈과 귀는 오로지 백악관에 맞춰져 있다.
이번 주는 크게 2가지 점에서 글로벌 관세 전쟁이 중대 고비를 맞게 된다. 하나는 전쟁의 강도(수위)를, 다른 하나는 전선의 확장 범위를 결정한다. 어느 것도 방심을 불허한다.
◆ 트럼프 對中 관세...묻고 더블로?
우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세 전쟁이다. 양측이 한 차례씩 관세를 주고 받는 선에서 숨을 고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확전 양상으로 치달을 위험이 상존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위험의 씨앗을 미리 심어 두었다.
지난 2월 1일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와 캐나다, 그리고 중국에 관세 카드를 꺼내들면서 여기에 맞서는 나라에 대해서는 추가 보복 관세로 응징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른바 '보복에는 더 가혹한 보복'으로 대응하겠다는 엄포를 행정명령에 포함시켰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미국의 25% 관세는 한달간 유예됐지만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는 2월4일 0시1분을 기해 발효됐다.
중국에 대한 관세는 불법 펜타닐 문제에 중국이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이유로 강행됐다. 여기에 맞서 중국도 미국산 일부 제품에 10~15%의 관세 조치를 내놓으며 응수하기로 했다. 그 발효 시점이 오는 2월10일이다.
중국은 미국산 석탄과 LNG 등에는 15% 관세를, 원유와 농기계, 대형 자동차 그리고 픽업트럭 등에는 10% 관세를 매길 예정이다.
중국의 대미(對美) 보복관세가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1차 관전 포인트는 트럼프의 대응이다. 자신이 공언한 대로 이를 일종의 '도발'로 간주해 재차 보복에 나설지, 아니면 뜸을 들일지 정해야 한다.
트럼프가 구사하는 광인(狂人) 전술의 핵심은 한번쯤은 실제 미친 행동으로 상대를 얼어붙게 해야 한다는 데 있다. 협상 테이블에서 누구도 자신의 말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언어에 힘을 더하는 담금질이라 하겠다.
중국을 본보기 삼아 '보복에는 보복으로'라는 원칙이 실제 작동한다는 것을 입증하려 든다면 상황은 많이 거칠어진다. 미중 사이에 자존심을 건 관세 보복 전쟁이 강도를 더하게 된다. 이미 지난해 대선을 치르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60%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지난 5일 로이터 통신은 무역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 자존심을 건 관세전쟁이 계속 고조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부여한 특별교역국(PNTR: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 영구정상교역관계) 지위까지 박탈해 중국에 대한 관세를 평균 61%까지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 전에라도 협상의 실마리를 찾으면 다행이나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은 서두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채널을 열어 두되,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해질 때까지 지켜본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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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 |
◆ 상호 관세....엿장수 마음
지난 금요일(현지시간 2월7일)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다수 국가에 대한 상호 관세"는 이번 관세전쟁 '제 1국면'의 전선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정하게 된다. 트럼프는 어느 나라, 어떤 상품이 대상이 될지 구체적인 설명을 삼가한 채 오는 10일이나 11일 회의를 갖고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s)의 사전적 의미는 '너와 내가 부과하는 관세율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다른 나라와 함께 공평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무역 가중치에 따라 계산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약 2.2%다. 반면 인도(12%)와 브라질(6.7%), 베트남(5.1%)은 이를 크게 웃돌고 있다. 중국(3%)과 유럽연합(2.7%)의 평균 관세율도 미국보다는 높다.
트럼프가 내걸고 있는 '관세에는 관세'라는 원칙에 따라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를 내린다면 트럼프의 공격을 피해갈 수 있을까.
트럼프가 그 정도로 만족한다면 그가 내건 상호 관세 카드는 결과적으로 글로벌 '관세 인상 전쟁'이 아니라 '관세 인하 데탕트'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접근법은 안일하다. 트럼프의 본심이 관세 자체라기보다 무역적자 해소, 나아가 미국의 제조업 부흥이라는 좀 더 원대한 꿈에 맞춰져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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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별 무역적자 규모(미국을 대상으로 흑자를 많이 내는 국가들의 순서이기도 하다). [사진=블룸버그] |
그러니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많이 내거나 미국에 투자한 규모가 서운할 정도로 박하게 여겨지는 나라들은 '동등'이라는 외피를 쓴 트럼프의 '자의적 칼날'을 피하기 어렵다. 누가 타깃이 될지는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일 텐데, 대미(對美) 무역흑자국 대부분이 트럼프 관세 공격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트럼프가 모든 수입제품에 일괄적으로 10~20%의 보편 관세가 아니라 선별적인 상호 관세로 방향을 선회하려는 것은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 다행일 수 있다. 그럼에도 전에 없던 수입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부담이다.
미국의 교역 상대국들로선 너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관세(트럼프의 보편 관세)를 얻어 맞는다면 상대적으로 억울함이 덜할 테고 주변국과 합종연횡의 기회를 도모하기도 수월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트럼프의 상호 관세로 줄어들게 생겼다. 트럼프의 상호 관세가 아주 자의적이고 선별적으로 단행된다면 더 그러하다.
공격을 피한 이들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돌아볼 이유도, 겨를도 없어서다. 이런 상황에선 먼저 납작 엎드리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나타난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7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을 두고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 전략을 꼼꼼히 세웠다"며 "당장 일본은 경제 압박(관세 폭탄)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했다.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를 만나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미국에 대한 투자를 1조달러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로선 이렇게 자진납부하는 나라들이 앞다퉈 등장하면 여러모로 편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흐름이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지나친 관세 공격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osy75@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