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탄핵 사례처럼 '흐지부지 정책' 안 돼
정부, 기업경영 위한 조력자 역할 이행해야
[서울=뉴스핌] 김아영 기자 = "저희는 생계가 걸렸어요. 하루가 급한데 이 시국에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까요?"
지난 5일 여수 산업단지에서 만난 한 석유화학 기업 근로자로부터 들었던 말이다.
앞서 정부는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불황 타개를 위해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석유화학 기업들은 해당 안에 정책금융 지원, 주요 원재료 관세 인하, 세제 혜택, 연구·개발(R&D) 비용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석유화학 기업의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적용도 유력하다고 봤다. 이 경우 이사회 승인만으로 간이·소규모 합병이 가능하고, 주식 교환 시 과세가 이연돼 구조조정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만난 석유화학 기업 근로자들은 정부의 석유화학업계 지원책만 기다리고 있는데 비상계엄 뉴스를 보자마자 눈앞이 깜깜해졌다고 했다. 정부 발표를 바탕으로 회사가 어떤 식으로 구조조정 대안을 내놓을지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일 밤 10시 25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발표가 무기한 연기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편의점 한 켠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그의 눈동자가 '또다시 긴 불안감에 내던져지는 자신의 상황을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직장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되기도 했다. 직원 입장에서는 실체 없는 구조조정, 매각 이야기만 계속 나오는 것보다 뭐라도 정해지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희망이든 절망이든 빨리 결정돼야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다.
이후 지난 주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소식을 들려왔다. 실제로 탄핵 가결 분위기가 감돌자 정부는 예정대로 이달 안에 지원책 발표를 하겠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기에 생각했다. '이제 진척이 있으려나.'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만큼 올해 안에 경쟁력 강화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한덕수 권한대행체제에서 시행하는 경쟁력 강화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 대안을 바탕으로 구조조정을 시행하더라도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즉각적인 변화도 필요한데, 탄핵 정국에서는 제대로 이행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시에도 정책 콘트롤타워가 없어 혼란이 컷고 결국 '조선·해운·철강·석유화학 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이 흐지부지된 바 있다.
'흐지부지 정책'의 반복은 안 된다.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이번만큼은 기업이 기업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석유화학산업은 국가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우리 경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다른 산업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산업이 중국발 공급과잉과 경기 둔화에 흔들리고 있다.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 없이는 경쟁력 유지가 힘든 만큼 약속한 대로 이달 안에 지원책을 발표해야 한다.
며칠 전 만난 석유화학기업 한 임원은 정부의 정책 발표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불안정한 상황이지만 기업은 기업이 해야 할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정부는 기업이 제 할 일을 할 수 있는 조력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a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