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 제공을 요구하거나 해당 자료를 경쟁업체에 제공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하도급거래공정화에관한법률(하도급법) 위반(기술자료요구) 혐의로 기소된 한모 씨와 김모 씨에게 벌금형 집행유예, HD한국조선해양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14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HD한국조선해양은 선박 건조 및 수리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고, A사는 1990년부터 HD한국조선해양의 협력업체로 등록해 선박용 디젤엔진 피스톤 등 부품의 제조·공급을 위탁받은 수급사업자이다.
HD한국조선해양과 A사는 2006년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으며 피스톤 설계도면 작성과 구조해석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A사는 피스톤, 실린더 헤드 등을 제조하기 위한 관리계획서, 작업표준서, 검사성적서 등 A사의 소재·제조 기술이 집약된 각종 기술자료를 자체적으로 제작했다.
이후 조선 경기 부진으로 2014년 2분기 큰 적자를 기록한 HD한국조선해양은 국내 생산제품 중 A사에서만 생산·납품하던 피스톤 등을 포함한 일부 품목에 대해서 이원화를 계획했다.
이에 HD한국조선해양 엔진기계부품 품질경영부 5급기사였던 한씨는 2015년 A사 모 직원에게 자료 요구의 목적 및 범위 등을 미리 협의하지 않고, 대가도 지급하지 않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A사의 작업절차(표준)서, 일부 제품의 관리계획서 및 작업표준서 등을 요구했다.
같은 부서 과장이었던 이씨도 A사의 다른 직원에게 자료 요구의 목적 및 범위, 권리귀속관계 등에 대해 미리 협의하거나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관리계획서 등을 요구했으며, 같은 부서 차장이었던 김씨는 기술자료를 경쟁업체에 전달했다.
이에 검찰은 이들과 HD한국조선해양이 법인의 업무에 관해 하도급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1심은 한씨에게 벌금 300만원에 집행유예 1년, 이씨에게 벌금 200만원 집행유예 1년, HD한국조선해양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HD한국조선해양은 품질관리를 이유로 외부 업체의 품질관리 시스템에 깊숙이 관여해 왔다"며 "A사를 상대로도 피스톤 제조 노하우가 담긴 4M 관리계획서 및 작업표준서 등의 기술자료를 요구해 이를 제공받아 관리해 왔는데, 이는 품질관리 명목으로 정당화된다고 볼 수 없는 하도급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는 "다만 HD한국조선해양은 자사에서 개발한 피스톤을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수급사업자의 품질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러한 관행이 남아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바 이러한 범행 경위를 양형에 있어서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한씨와 이씨가 요구한 자료들이 이원화 업체로 넘어갔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들이 엔진기계부품 품질경영부 직원으로서 품질관리 및 개선을 위한 회사의 방침에 따라 본인들의 행위가 위법한 것이라는 별다른 인식조차 없이 A사를 상대로 기술자료를 요구하게 됐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기술 유용의 전제가 되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유출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이를 유용했음이 입증되지 않으면 하도급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김씨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한씨에게 벌금 100만원 집행유예 1년, 이씨에게 무죄, 김씨에게 벌금 5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면서 판단을 달리했다.
우선 재판부는 이씨에 대해 "문서의 형태로 제출받은 관련보고서와 관리계획서를 시스템 양식에 맞춰 입력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새로운 기술자료 제공요구 행위로 보기 어려우며, 정당한 사유도 있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한씨가 A사에 기술자료를 요구한 행위 중 일부에 대해선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봤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에 대해 "피스톤의 공급처를 이원화하는 과정에서 피해 회사의 기술자료인 관리계획서를 경쟁업체에 건네줘 유용해, 관련 법령의 목적, 범행 경위 및 내용, 요구하거나 유용한 자료의 내용 등에 비춰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판시했다.
2심은 HD한국조선해양에 대해선 벌금 2000만원을 유지했으며,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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