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핵억제 지침 합의, 여전히 미국이 전권
한미 재래식·핵 전력 통합은 확장억제 본질 회피
'핵공격에 미국 핵자산 자동 대응' 명시해야
현 구조로는 국민불안과 핵무장론 진정 역부족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윤석열 정부가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등을 배제하고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원칙으로 삼은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인식이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흐르면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낳고 있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확장억제 강화가 북한의 핵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안은 물론 아니다. 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비핵화다. 비핵화의 최종 단계(end state)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남·북·미·중·러의 생각이 각각 다르지만, 어쨌든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비핵화를 논하기에는 북한의 핵능력이 지나치게 커졌으며 북한이 공공연하게 한국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태다.
[서울=뉴스핌]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가 개최된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악수를 나누고 았다. [사진=대통령실] 2024.07.12 |
한·미는 지난해 4월 이른바 '워싱턴 선언'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고위급 상설 협의체인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신설했다. 그리고 3차례의 NCG 협의를 거쳐 지난달 양국 정상이 '한·미 핵억제 핵작전 지침 공동문서'에 서명했다. 문서의 내용을 상세히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핵무기와 한국의 재래식 무기체계를 통합해 북한의 핵 공격에 보복을 가하는 절차와 양국 무기체계 통합 방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핵 운용 협의·기획·연습 등 모든 북핵 대응 전략 과정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사령부가 창설도 합의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 합의에 대해 '한·미가 함께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확장억제를 수행한다는 개념이다. 김 차장은 "기존의 억제가 미국이 결정하고 제공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한반도 핵 운용에 있어서 우리의 조직, 우리의 인력, 우리의 자산이 미국과 함께하는 확장억제로 진화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의 핵운용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확대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이 빠져있다. 확장억제 확대에서 한국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은 유사시 핵 반격 결정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국이 전권을 갖는 구조다.
그동안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이 정도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얻어내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대단히 많이 수용했다. 무엇보다 핵무장을 포기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하겠다는 공개적인 약속을 정상 차원에서 확인한 것은 미국에게는 큰 성과다. 또 이번 합의로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하기로 한 것은 확장억제 강화 차원에서 한국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면 미국은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통합 운용하게 됨에 따라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한국군 전력을 인도·태평양 지역과 세계전략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완성 단계에 오른 '한·미·일 군사협력 제도화'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줄곧 요구해온 것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윤석열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 강화 수단을 얻어내기 위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진영승 합참 전략사창설추진단장(오른쪽)은 지난달 10일 미 전략사령부를 방문해 앤서니 코튼사령관과 전략적 억제능력을 주도적으로 강화해 나가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합동참모본부] 2024.07.12 |
확장억제 강화는 한국이 현재 안보상 가장 필요로 하는 요소다. 한국처럼 핵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는 나라는 없다. 한국이 국제비확산체제를 준수하면서 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확장억제 방안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미국과 통합 운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미·일이 사실상 군사동맹과 다름없는 수준의 안보협력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면서 미국으로부터 받아온 확장억제 방안이 이 정도라면 문제다.
김태효 차장은 지난 19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의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북이 핵을 쓰면 한·미는 핵 대응을 한다. 핵 공격을 실제 하기 전, 임박했을 때부터 해당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현재의 한·미 확장억제 지침이 북한의 핵공격에 미국이 핵무기로 1차 대응을 하는 것이냐는 더불어민주당 위성락 의원의 질의에 "핵전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면서 "재래식과 핵전략이 통합된 대응력으로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라고 상반된 말을 했다. 미국이 여전히 '핵에는 핵'이라는 명시적 약속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한·미의 확장억제 강화 방안에는 한국이 안심할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이 없다. 미국의 핵전력 운용과 결정 과정에 한국이 참여할 수 없다면 최소한 '북한의 핵공격에 자동적으로 미국의 핵자산으로 대응한다'는 약속 정도는 받아야 한다. 현재의 구조로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한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에도 부족할 뿐 아니라 한국 내 핵무장론을 진정시키기에도 충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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