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기준 2% 못 넘는 국가도 7개국에 달할 듯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유럽연합(EU) 27개국 중 4위인 스페인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나토 예측에 따르면 스페인의 올해 국방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28%에 그쳐 32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할 전망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9일(현지시각) "(이런 점 때문에)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52) 총리가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나토 정상회의는 9일부터 사흘간 열린다.

GDP 대비 국방비 지출 규모는 나토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현안이다. 나토는 지난 2014년 "모든 회원국이 오는 2024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2%까지 올리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국가들이 올해 말까지도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통계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전체 31개 회원국 중(스웨덴은 올해 가입) GDP 대비 2% 이상 국방비를 지출한 나라는 미국과 폴란드, 영국, 그리스 등 11개국에 불과했다.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도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일부 나토 회원국의 기준 미달은 도널드 트럼프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될 경우 큰 파열음을 낼 수 있는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 1기 집권 때도 이런 상황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지난 2월엔 나토의 동맹국들이 돈을 제대로 내지 않으면 러시아의 공격을 용인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파장을 일으켰다.
최근 몇 년 새 유럽 각국은 경쟁적으로 군비를 늘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크게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 기준'을 충족하는 나라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나토는 올해 말까지 'GDP의 2%' 국방비 지출에 도달하는 나라가 23개국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도 스페인의 국방비 지출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작년 말 기준 스페인보다 국방비를 적게 쓴 나라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있었지만 올해 이들 나라가 스페인을 추월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나토 통계 전망은 올해 벨기에는 1.3%, 룩셈부르크는 1.29%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파브리스 포티에 전 나토 정책기획 책임자는 "스페인은 아주 중요한 '잃어버린 조각'"이라며 "유럽의 안보가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라는 단 3개의 주요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이 국방비를 성큼성큼 올리지 못하는 데는 과거 독재에 대한 악몽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페인 정부가 군비를 더 지출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큰 반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은 1939~75년 파시스트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무자비한 폭정을 겪었고, 1981년에는 군부 쿠데타(실패)를 경험했다. 카를로스 미란다 전 스페인 나토 대사는 "스페인에선 군사, 그리고 전쟁에 대한 어떤 것도 인기가 없다"면서 "정부가 탱크를 사자고 하면 당장 '그 돈으로 학교를 세우라'는 반응이 쏟아진다"고 했다.
스페인 정부는 돈 문제 이외에 스페인이 유럽 안보에 기여하는 측면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군에 주요 해·공군 기지를 제공하고, 라트비아에 병력 600명을 파견하는가 하면, 스페인 전투기와 함정이 나토 임무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산체스 정부가 군비 지출을 위해 국내 여론 전환에도 애쓰고 있다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비금전적 노력이 다른 회원국, 특히 미국을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는 평가이다. 지난해 미국이 쓴 국방비는 7430억 달러 규모로 전체 나토 국방비의 68%에 달했다. 미란다 전 대사는 "산체스 총리의 노력이 바이든에겐 통할지 몰라도 트럼프를 납득시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ihjang6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