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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총알 대신 투표용지로"…정당의 성공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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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제대로 성취하려면 기초를 다지고 습득하는 지리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주저 앉게 된다. 엄마에게 배우는 걸음마는 쉬운 절차같지만 갓태어난 아기에게는 고된 훈련과정이다. 배를 뒤집고 땅바닥에 기면서 키워진 팔, 다리, 아랫배의 근육은 걸음마를 위해 필수적이다. 앞뒤로 넘어질 듯한 불안함을 엄마가 조금씩 잡아주면서 단련된 다리 근육이 아기가 서서 지탱해 주는 시간을 늘려준다. 첫 발을 뗀 후 진행되는 걷기, 뛰기, 높이 뛰기, 넓이 뛰기는 엄마의 '걸음마' 연습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는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그리고 그 성장의 결과 발생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중 하나인 정당이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국가성장 - 근대화, 민주화,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국가의 발전과정 초기에는 경제성장이라는 걸음마 과정이 필수적이다. 역사상 어떤 나라도 경제성장 없이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지키며 발전하지 못했다.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은 2차대전 이후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한 신생국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필수요소들이 요구되는지 답하기 위해 서유럽과 북미의 사례를 바탕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학파에 속한 학자 중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은 4가지의 국가성장의 필수조건을 제시했다.

산업화된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첫째 요소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다. 어떤 나라도 전통적 농업과 임업, 어업 등의 1차산업으로 잘 사는 국가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조금 늦게 출발한 국가들도 반드시 거쳐간 과정이 바로 산업화다. 폴 케네디(Paul Kennedy) 교수는 '강대국의 흥망'(1987)에서 1800년대 산업화 기간동안 생산된 철과 석탄의 양의 비교를 통해 국력을 측정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의 철생산 능력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세계패권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러시아와 미국으로 넘어 갔는지 보여 준다. 산업화는 농업에서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면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산업화의 결과 선진국가들의 1830년대 1인당 국민총생산 규모는 1,000 달러 수준에서 1900년대 초에 이르러 2,500 달러 수준으로 팽창되었다 (Bairoch 1995). 우리나라도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 초기 가발, 섬유, 신발 등의 단순제조업 생산에서 점차 자동차, 기계, 조선, 철강, 석유산업, 반도체 등이 주축이 된 선진국형 산업화를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둘째, 농촌인구가 공장이 있는 대도시로 이동하는 것은 필연이다. 이 현상을 도시화(urbanization)라 말한다. 일자리를 찾아 공장이 있는 도시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공장이 있는 도시는 빠르게 인구가 팽창하기 시작하면서, 주택, 위생, 안전, 실업, 건강, 인구증가, 범죄증가 등의 새로운 문제를 양산하면서 2차대전 이후 새로운 정책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것이 1932년 소개된 스웨덴의 뮈르달 (Alva Myrdal and Gunnar Myrdal) 부부가 발표한 인구문제의 위기(Kris i befolkningsfrågan)와 1943년 발표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Beveridge Report)다.

세번째 요소는 부의 증가다. 공장에서 받는 임금은 농촌에서 일할 때보다 높아 부의 축적으로 소비와 생활수준이 향상된다.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문화생활과 여가의 증가와 독서시간의 증가도 함께 가져오면서 의식의 수준도 함께 발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소득수준은 취업한 노동자와 비취업자(실업자), 고소득 노동자와 저소득 노동자간의 임금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소득격차와 삶의 질의 격차는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냈다.

넷째, 교육수준의 향상이다. 18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교육개혁은 귀족 자녀들에게 독점되었던 교육을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공공재로 여기기 시작했다. 남성에 국한되었던 의무교육은 점차 여성으로 확대되었고, 의무교육기간도 3년에서 5년, 그리고 6년으로 확대되며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교육은 사회적 유동성 증가, 즉 부모와 자식세대의 신분상승을 진행시켜 중산층을 양산함으로서 기회의 균등을 통한 사회평준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근대화이론가들은 위 4가지 요소가 민주화를 가능하게 하는 필수요건이라 말한다.

"농촌사회에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영국노동당 당수를 역임하고 정치학자로 알려진 헤롤드 라스키(Harold Laski)의 말이다. 아테네도 도시였기에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었다고 그는 단언한다. 전통적인 농촌사회에서는 절대로 민주화가 진행될 수 없다고 보는 이유로 주종관계가 확실한 지주와 소작농 혹은 농촌노동자의 신분사회에서는 평등과 자유의 수평적 인간관계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든다. 귀족과 하인이 함께 대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사회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 가능하고, 농촌에서보다 높은 임금으로 삶의 질이 향상되고, 한 표를 행사하는 민주적 시민의 권리를 만끽하며 민주화의 핵심적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렇다면 민주화는 어떤 단계를 거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일까?

민주화의 세 단계

민주화는 조직화를 통한 절차화(procedure), 법규범화(legality and rationality),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의 단계로 진행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노동자들과 자유시민들은 점차적으로 조직화하기 시작했다. 차아티스트운동이 1830년대 말에 일어나 30년간 진행되고, 독일과 덴마크, 스웨덴 등의 국가에서 노동정당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늘어난 상인과 도시지식인의 증가만큼 자유무역을 요구하는 세력이 확장되며 자유당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시위와 폭력이 아닌 선거를 통한 권력확장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절차민주주주의가 더욱 확대되었다. 선거, 대화, 타협 등의 조직문화도 서서히 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로 절차화다. 이 민주적 절차화는 국민들이 느끼는 행정결정의 부당함, 일상생활의 불편함 등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다양한 통로를 통해 서비스 소비자인 국민들의 만족감과 기대를 높여줘 국가의 안정적인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동했다.

두번째로, 절차민주주의는 법규범화를 요구한다. 자동차 속도를 통제한 일명 적색기법(Red Flag Law, 본래 법명은 Locomotives Act 1865), 소비자보호법, 기업법, 선거법, 정당법, 의회법 등의 관련 법령과 헌법에 따라 사회적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이 폭넓게 인정되기 시작했다. 사회적 불만과 갈등을 법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법제정과 개정, 그리고 준법정신이 뿌리를 내리며 법치주의가 사회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법치질서의 확립이 국가가 쇠퇴하지 않고 성장하는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Fukuyama,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2015).

셋째, 제도화의 진행이다. 국가통치자를 직접 국민의 손으로 뽑도록 하는 직접선거, 1인 1표씩 적용되는 평등선거, 누구에게도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의 선택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도입된 비밀선거, 그리고 누구의 강요나 협박에서 벗어나 투표하고 입후보해 선출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자유선거, 그리고 나이, 성, 인종, 종교, 경제수준에 관계없이 성인은 누구나 투표할 수 있게 하는 보통선거 등 5가지의 원칙에 따라 선거라는 민주적 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선거가 정권교체와 권력분립의 중심제도로 정착되면서 의회중심의 정치와 대통령제를 채택한 국가들은 직선제 대통령이 통치의 중심에 서고, 사법부의 독립이 보장되어 점차 권력의 균형과 견제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인천=뉴스핌] 김학선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출을 위한 본투표가 시작된 10일 인천 계양구 계양3동 제6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2024.04.10 yooksa@newspim.com

민주화,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민주화 기간동안 절차화, 법규범화, 제도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시작하면 편한 옷을 착용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전철역에서 자연스럽게 줄을 서듯, 투표장에 가서 줄서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된다. 전철을 타면서 줄을 무시하고 끼어드는 사람이 어색하듯, 투표를 하지 않으면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신성한 한 표를 통한 국민대표를 뽑는 중요한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자책감이라 할 수 있다. 신제도주의이론에서는 이를 제도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 정의하고 있다. 경로의존성은 민주적 절차, 법규범, 그리고 제도가 시민의 행동강령으로 자리잡았을 때를 의미한다. 즉 민주적 절차, 법규범, 제도가 시민의식 속에 자리 잡아 사회화 (socialization)가 거의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의 정치적 현상을 시민문화의식(civic culture) 혹은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의 진화(evolution)라 부른다 (Almond and Verba 1963; Schlozman, Verba and Brady 1995). 학자에 따라 시민의식과 정치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민주제도의 고착화(democratic consolidation)라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Juan J. Linz and Alfred Stepan, 'Problems of Democratic Transition and Consolidation', 1996).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와 스웨덴 V-Dem 민주주의 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민주주의 지표가 높은 국가들은 민주주의 고착화가 잘 이루어져 시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높고 관용, 포용, 준법정신, 참여와 책임을 중시하는 시민적 사회화가 안정적으로 천착했기 때문에 대체로 민주제도를 신뢰하고 부패행위를 멀리하는 경향이 매우 높다. 정리해 보면, 민주화 다음 단계는 곧 시민의식의 사회화를 거쳐 완성된 고착화된 시민문화(consolidated civic culture)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화는 왜 실패할까?

민주화의 핵심은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 즉 도농간 빈부격차, 계층간 소득격차, 노사갈등, 가난의 대물림, 장애인차별, 산업재해, 지역간 생활의 질 차이, 높은 물가, 높은 실업률, 주택의 부족과 높은 주택가격, 탈법 및 불법선거, 선거법 위반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절차화, 법규범화, 제도화로 해결할 수 있어야 고착화된 시민화가 이루어 진다는 점이다. 시민문화가 고착화가 되지 못하면 국민들은 민주주의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고 무능과 비효율성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점차 쌓이게 된다.

다시 말해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 과정이 진행될 때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방치하거나 심각성이 확대될 때 대통령, 국회, 그리고 법원, 검찰, 경찰, 중앙은행 등을 불신하기 시작하게 된다. 축적된 불신과 불만은 오래 방치할수록 시위와 폭력의 불씨를 제공하게 된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태국, 아랍의 봄 이후의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의 국가에서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제도가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불안정적인 정국이 계속되는 이유다.

위르겐 하버마스 [사진=위키피디아]

서유럽과 북미에서 나타나는 시민불복종과 시위, 불만 등의 이유를 설명한 학자가 바로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다. 그는 국가행정기능, 제도, 그리고 리더들의 역할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할 때 바로 국가의 정통성 위기(legitimation crisis)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정통성 위기의 하나인 정치제도의 위기는 한 국가의 제도와 리더들에게서 요구되는 역할, 즉 헌법과 법령에 명시된 그들의 정체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하버마스는 이같은 현상을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라고 부르며 민주주의의 핵심적 실패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국가와 실패한 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바로 가치중심으로 세워지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당들의 존재유무다.

정당핸드북(Handbook of Political Parties)은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정치적 목적, 즉 정권창출을 위해 모인 집단이 곧 정당이라 정의한다. 정당들은 태생적으로 가치중심으로 모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지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민주적 고착화가 진행된 국가에서는 공통적으로 오래된 정당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정당들이 의회를 참여하며 정치적 대립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민주주의가 안정적인 정당제도를 유지하며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자리를 잃은 성난 시민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간간이 불만을 표출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민주화의 길목에서 갈등하고 있는 국가들은 어떤 이유로 정당들이 실패할까?

사회적 갈등이 만연된 국가의 정당에 결여된 4가지 요소

우리나라처럼 사회적 갈등이 심한 국가에서 정당들이 민주화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하고 실패하는 이유를 탐구한 이시야마(John Ishiyama) 교수는 4가지 요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첫째는 대의성 증진을 위한 능력부족이다. 특정 세대와 지역의 집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들이 스스로 그 테두리에 가둬놓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의 개혁을 통해 전국정당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정당 내에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당내 목소리를 포용하고 함께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어야 대의성이 확대될 수 있지만, 여전히 안주하고 있기 때문에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의성의 확대에 실패하면 정당은 언제든지 와해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둘째, 정당들의 갈등관리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당은 사회적 갈등을 의회로 가져가 다양한 세력의 요구사항을 타협가능한 선에서 다시 경쟁하는 정당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의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거리로 나가기 때문에 결국 국민은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해 언론의 보도와 핵심지지층을 모아 해결하고자 할 뿐이다.

셋째, 정당에게 요구되는 사회통합기능 능력의 부족이다. 분열의 반대개념이 통합이다. 사회적 분열은 결국 정당의 미숙한 통합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듣고 반대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통합능력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선거의 승리만을 위한 경쟁은 국가통합을 해치고, 결국 민주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게 된다.

넷째, 국가발전의 책임성에 대한 실천능력 부재다. 정책을 통해 지지층의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토론의 장으로 가져가 국민 앞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것은 곧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지 정당의 정권창출에만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Ishiyama, 'Political Parties and Democratization', 2021). 정당이 총알(bullet, 여기서는 폭력과 무질서의 의미)보다 투표용지(ballot, 여기서는 선거, 혹은 평화적 대화와 토론의 의미)로 갈등을 해소할 수 없는 경우 한 국가의 민주화 과정은 다시 깜깜한 미로에 갇히게 된다고 경고한다 (Ishiyama, Introduction to the special issue "From bullets to ballots: the transformation of rebel groups into political parties", 2016).

이시야마 교수는 정당이 적극적으로 한 국가의 민주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정당제도의 구축을 위한 제도적 혁신의 증진(the promotion of institutional innovations that help build institutionalized party systems)이 필요하다고 제시한다.

아데나워재단 [사진=위키피디아]

정당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것들

우리나라 정당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선거 때 공천을 통해 새로운 정치인이 공급되지만, 당의 정책과 가치를 우선하기 보다는 당선가능성과 당지도부에 대한 충성도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에 당내의 활발한 비판과 반론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이시야마 교수가 지적한 네 가지 요소를 갖춘 정당으로 재창당 수준의 개혁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정당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은 구태를 벗고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당헌과 당규를 유럽정당들처럼 평균 15-20년 단위로 국내외적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개정할 것을 권한다. 이를 위해 정책연구소를 당지도부와 분리해 완전히 연구중심으로 씽크탱크를 개편하는 것이 필수다. 독일의 아데나워재단, 사민당의 에버트재단처럼 완전히 당권과 분리된 연구소를 운영하게 되면 당 정책과 당 가치의 재정비 등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당 지도부와 무관한 당 정치학교의 운영도 필수적이다. 북유럽 정당들이 운영하는 청년정치학교는 10대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별 지도자를 교육시키고 있어 전국 전역의 지방정치학교에서 배출된 신인인재들이 지방정치에서 수련을 하고, 중앙정치로 진출하는 방식이 정형화 되어 있다. 공천을 통한 새로운 피의 수혈보다 체계적이고 장기적이며 지속성 있는 정치충원 방식을 한국정당들이 우선적으로 도입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정당은 소수 지지층과 정치엘리트들의 이익을 위한 집단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면서 영국의 보수당을 창당한 로버트 필의 280년 전의 용기는 지금 우리나라의 정당들에 필요하다. 공고화된 시민문화를 지연시키고 민주화를 퇴행시키고 있는 정당을 개혁할 용기있는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해 본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최연혁 교수. 2024.01.15 mironj19@newspim.com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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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레임덕' 오나…민주당 상·하원 '싹쓸이'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2026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주도권을 모두 휩쓰는 '블루 웨이브(Blue Wave·민주당 대승의 파도)'를 일으켰다. 3일(현지시간) 밤, 아직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미국 주요 방송사들은 민주당의 상·하원 다수당 석권을 일제히 예측 보도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 이미 과반인 51석 이상을 확보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과반(218석)을 무난히 넘기는 대승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전반기의 성적표 격인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것은 그야말로 '트럼프 심판론'의 압도적 승리였다. 관세 정책과 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물가가 미국인들의 표심을 결정적으로 돌려놓았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미시시피주 코린스에서 공화당 상원의원 신디 하이드스미스를 위해 지원유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오는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NBC, CNN, CBS 등 미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밝혔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인 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 4곳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뼈아픈 악재로 작용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는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이민 정책이 라틴계 표심의 반감을 사면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이날 밤 개표 상황을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중간선거 결과를 수용할 의향이 분명히 있다(absolutely willing)"며 민주당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일단 패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란과의 전쟁이 공화당 선거 패배에 일조했다"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민주당이 "터무니없는(insane)" 법안을 내놓을 경우 대통령 거부권(Veto·비토)을 족족 행사하겠다고 강조하며 날을 세웠다. ◆ 입법 주도권 상실… 트럼프 '미스터 비토' 전략과 행정명령 우회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형성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 국정 운영 방식은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이 상당한 의석 차로 의회 주도권을 쥠에 따라 주요 국정 과제 관련 입법과 예산안 심의, 인사 청문회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통과시키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찌감치 스스로 '미스터 비토(Mr. Veto)'가 될 것임을 경고해 왔다. 그는 지난 1일 폭스뉴스를 통해 선공개된 뉴욕포스트 팟캐스트 인터뷰 예고편에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아마 내가 '미스터 비토'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민주당이 올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다 보면 그들도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닫고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선거 전부터 이미 패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수진을 쳤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출생시민권 및 폴리실리콘 산업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러나 거부권 행사만으로는 국가 예산안 타결이나 행정부 국정 운영을 지속할 수 없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에 따라 입법권이 막힌 트럼프 대통령이 고유 권한인 행정명령(Executive Order)에 집착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쏠린다. 로이터 통신은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백악관이 이미 몇 달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 대비해 비밀 대책 수립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러셀 보트 예산관리국장(OMB) 등 핵심 참모진은 지난 4월부터 법률고문실과 협력해 이민 정책, 관세, 주택 비용 감축 등 의회 승인 없이 행정권한만으로 강행할 수 있는 조치들을 정밀 검토해 왔다. 하지만 행정명령 역시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력이 제한적인 데다, 사법부의 가처분 신청 등에 가로막힐 위험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 레임덕 회기 속 공화당의 '속전속결' 입법전  민주당이 새 의회의 의사봉을 쥐는 내년 1월 3일 전까지,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는 남아있는 '레임덕 회기' 동안 양당 간의 치열한 입법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거 패배를 직감한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는 레임덕 기간을 활용해 시급한 국정과제와 법안, 공직 인준안을 전격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과제는 당장 내달 11일 만료되는 연방정부 임시 예산안(CR)의 연장 및 2027 회계연도 정식 예산안 타결이다. 다만 상원 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하려면 60표가 필요해, 민주당과의 타협이 필수적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 국방 예산 등 핵심 부처 안을 먼저 통과시킨 뒤 나머지 항목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차선책도 거론된다.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처리도 시급한 과제다. 현재 하원 안만 통과하고 상원 군사위원회 안은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고려하면 협상이 필수적이다. NDAA에는 주한미군 규모 유지, 미 해군 함정 정비·건조 관련 한미 조선 협력 등 한국의 안보 및 통상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국내 산업계와 정부도 초유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불은 연방정부 부채한도(현 41조 1,000억 달러) 상향이다. 한도 도달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를 늘리지 못할 경우 향후 2년 간 국정 수행 자체가 마비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지렛대 삼아 복지 정책 확대를 요구할 태세다. ◆ 민주당의 대대적 청문회와 '트럼프 가족 비즈니스' 조준… 탄핵 국면 재현되나 상·하원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게 된 민주당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패와 각종 사법 리스크를 향해 대대적인 청문회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의회 조사의 핵심 타깃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가족 비즈니스다. 출구조사에서도 고물가에 이어 '부패와 사적 이익 추구'가 주요 불만 이슈로 지목된 만큼 민주당의 고강도 조사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지난 10월 26일(현지시간) 저속 셔터로 촬영한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의사당. [사진=로이터 뉴스핌] 로이터의 지난 9월 말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 드론, 인공지능(AI), 예측시장 등으로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은 민간 기업의 경우 대통령 행정권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할 방침이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역시 "개원 첫날부터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했다. 주요 조사 대상으로는 트럼프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파트너로 있는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거론된다. 이 회사는 투자 불과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000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 대선 기부의 대가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석유 기업들, 카리브해 바하마 결혼식 비용의 러시아 올리가르히 대납 의혹 등도 파상공세 대상이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과거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때처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탄핵소추안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실제 대통령 파면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대단히 낮다. 하원에서는 과반(218석 이상) 찬성으로 탄핵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상원 탄핵 재판에서 최종 유죄를 확정하려면 출석 의원의 3분의 2인 67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탈환하더라도 의석은 51석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쳐, 상당한 공화당 상원의원 이탈표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상원 문턱을 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트럼프 2기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의 파상적인 청문회 공격과 하원의 탄핵 시도, 이에 맞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쇄 거부권 행사와 행정명령 강행이 맞물리며 미국 국정이 극심한 대치와 경색 국면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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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제2금융·증권사 등 보안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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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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