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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청 개청] 우여곡절 끝 문 여는 '한국판 나사' 우주항공청…K-뉴스페이스 시대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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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우주기업 이끌 우주전담기구 역할 기대
논란 많았던 개청 과정…"여야 머리 맞대야"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대한민국 우주개발과 우주산업 확장을 총괄 책임지는 우주항공청이 문을 열었다.

지난 2022년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첫 발사 성공 이후 우리나라 우주 역사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민간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시대 이끌 뿐더러 새로운 우주경제 시대에 동참하게 됐다. 우주항공청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뉴스페이스 시대 속 민간 우주기업 이끌 맏형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청이 27일 오전 9시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업무에 들어갔다. 우주항공청은 1청장, 1차장, 1본부, 7국 27과 2소속기관 등 모두 293명으로 구성됐다.

우선 임시청사로 사천시 사남면 아론비행선박산업의 건물을 임차해 사용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이 우주청의 직속기관이 됐다.

우주항공청 임시 청사 전경 [사진=우주항공청] 2024.05.27 biggerthanseoul@newspim.com

우주정책 범위가 우주탐사·산업·안보·국제협력까지 확대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우주항공 전담기관 설립이 절실하다는 판단에 우주청 설립이 추진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같은 우주전담기구가 없었다.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도해오는 과정에서 국방부는 안보 및 무기체계를 별도로 추진했다. 항공분야와의 연계된 산업 확장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자체적으로 산업 전반을 관리해왔다. 외교부는 글로벌 협력에 힘을 보태지만 자체적인 우주 프로젝트를 갖지 못해 적극적인 대응도 쉽지 않았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었던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한국천문연구원 역시 독자적인 연구·개발(R&D)을 진행해왔다. 

우주 개발과 산업 분야가 분산돼 각기 추진되면서 민간 분야의 진행도 미진했다. 일부 우주발사체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최근 코스닥 상장에도 나서고 있으나 그동안 해외 발사장 확보 등에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때마다 과기부, 외교부 등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이를 총괄적으로 지원해줄 기관이 없어 사업에 속도는 내기가 쉽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우주청 설립은 민간 주도의 우주 산업을 이끌어갈 새로운 출발점으로도 평가된다. 

우주청에는 연간 예산이 7000억원 가량 투입된다. 과기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진행해온 연구·개발(R&D) 및 사업 등 5000여억원이 편성됐다. 여기에 사업 진흥비까지 합치면 7000억원 규모로 연간 예산이 마련됐다.

외청으로 당장 대규모 예산은 확보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R&D와 산업 확장을 위한 기본 골조는 구축한 셈이다. 사천지역에 집중적으로 자리잡은 우주항공분야 민간 기업들은 우선 우주청 개청을 환호하는 모습이다. 

사천의 한 우주산업 중소기업 대표는 "뉴스페이스 시대라고 했지만 그동안 말만 그렇지 현장에서의 체감도는 낮았다"며 "향후 우주 개발과 산업에 해야 할 일이 많은데 그런 부분에서 민간기업이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길을 터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성빈 초대 우주항공청장은 "우주산업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산업이며 우리는 우주항공청의 설립을 계기로 우주항공 강국으로 도약할 때"라며 "기존의 정부주도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과의 역할 분담을 재정립해 궁극적으로는 민간이 상용 우주개발을 주도하고, 출연연과 대학은 고위험, 장기 미래우주 개발 사업에 집중하는 형태가 되도록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 많았던 우주항공청 개청…"여야 뛰어넘은 국가비전 찾아야 할 때"

우주항공청을 개청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과기부는 지난해 3월 2일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예고하면서 대국민 의견 수렴에 나섰다. 당시 설문조사 결과, 대한민국 국민의 79.6%는 우주항공청의 설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15.3%는 유보적인 입장이었으며 5.1%만 우주항공청 설립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힘차게 날아 오르고 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2023.05.25 photo@newspim.com

다만 야권에서는 기존 설계된 우주항공청의 체계와 역할에 의문을 제기하며 대안 입법을 추진했다. 야권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설문조사도 있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가 2022년 10월 28일부터 11월 11일까지 산업계·학계·연구계·정부 전문가 100명에게 우주항공청 관련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우주항공청 입지를 묻는 문항에 대전과 세종권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67%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입지 예정지인 경남 사천을 꼽은 비율은 8%수준이다.

또 우주만 담당하는 '우주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응답도 50%로 가장 높았다. 우주항공청 조직을 격상해야 한다는 응답도 43%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막판까지 논란이 됐던 R&D 주도권 논란도 우주항공청 설립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다.

야당은 R&D 기능을 우주청이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여당은 우주항공청이 R&D 기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항우연과 천문연을 직속기관으로 둘지 여부도 논란으로 떠올랐다.

과기부가 우주분야 출연연을 우주항공청의 직속기관으로 두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는 말도 나왔다. 우주항공청이 과기부의 산하 기관이지만 2개 분야 출연연을 떼어놔야 한다는 부담이 반영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지난 1월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발의된 지 9개월만에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와 함께 대전, 경남, 전남을 주축으로 한 3개 우주항공 클러스터를 추진해야 하는 만큼 항우연과 천문연은 사천으로 이전하지는 않는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우주항공청 개청과 함께 우주산업은 국가적인 미래 먹거리 산업인 만큼 여야를 떠나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며 "국가 비전을 장기 과제가 우주에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범정부·범정치권 개념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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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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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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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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