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 아빠 문종택 감독의 다큐 <바람의 세월> 개봉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눈 감으면 더욱 생생해지는 기억. 다녀오겠다는 아이의 뒷모습을 조금 더 오래 봐 둘 걸 그랬습니다. 딱 한 번 놓친 그 손을 다시 잡길 얼마나 원하고 바라는 지요"
벚꽃이 휘날리는 경기 안산 단원고 정문 앞. 영화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 한명 한명을 안아주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모습과 2학년 1반 문지성 양의 아버지(문종택 감독)의 담담한 목소리로 시작됐다.
◆ 아이들을 위한 영화..."우리 아이들...가만히 놓아 달라"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영화 '바람의 세월' 문종택(오른쪽), 김환태 감독. 2024.04.08 mironj19@newspim.com |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영화 '바람의 세월'을 만든 문종택 감독과 김환태 감독을 만났다. 세월호 유가족이 제작에 참여한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문 감독은 "울고 분노하기 위해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감독은 "김관홍 잠수사가 '아이들이 이렇게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했다"고 말했던 것과 세상을 떠난 김종필 감독과 인연이 있었다"며 "누가 주목되거나 주인공이 되는 것들을 말고, 우리 영화, 가족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합류 계기를 얘기했다. (故) 김관홍 잠수사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나선 뒤 트라우마와 잠수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고(故) 김종필 감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과 연대해 관련 현장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영화에서 가장 힘들고 감정이 요동쳤던 순간이 생존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과 (세월호 유가족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가족분들을 안아주고, 이태원에 가서 '힘내라'라고 외치는 장면이었다"며 "살아온 게 미안하고, 살아와 줘서 고맙다고 이렇게 안아주는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너무도 힘들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피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 '국가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분들을 이렇게 대우하는 사회에 문제의식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들은 "우리 민지"라며 '우리'를 강조했다. 문 감독은 "'생존자'라는 세 글자가 우리 아이들에게 십자가 무게 이상"이라며 "'나만 살아왔네' 사회가 그렇게 아이들한테 만들어버렸다"우려를 표했다.
까만 니트에 왼쪽 가슴에 세월호 벳지를 달고 있던 문 감독은 "살아온 우리 아이가 있고, 그 아이들이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며 "'저 아이들은 그냥 가만히 놔두세요'라는 그 울림이 (영화에서) 전달됐음 좋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김 감독은 "우리라는 표현과 흔들리는 장면들 등 아버님이 당사자이시기에 이런 섬세한 표현이 영상에 담길 수 있었다. 이걸 혼자 했다면 그런 것들 까지 체득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생존 학생과 우리 아이들이 같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자막 디자인도 학생마다 다르게 했다"고 설명했다.
문 감독은 "이런 세심한 부분을 아이들이 나중에 어디선가 볼 것"이라며 "혹시 우리 아이들이 그걸 봤을 때를 생각하며 장면 하나, 글자 하나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 "진상 규명을 통해 안전 도모 됐으면"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영화 '바람의 세월' 문종택 감독. 2024.04.08 mironj19@newspim.com |
전남 팽목항(진도항)을 뒤흔들던 바람은 바램이 됐다. 2014년 4월 19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평범한 학부모였던 이들이 유가족으로 투사로 변했다. 엄마와 아빠는 삭발과 단식투쟁, 삼보일배 등 거리로 나섰다.
지성이 아빠 문 감독은 2014년 여름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10년간 3654일 5000여개의 기록을 우직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2022년 김 감독과 영화 작업을 시작하며 그에게 건넨 영상은 7테라에 달했다. 이마저도 50테라에서 덜어낸 영상이다.
문 감독은 "나로서는 99.9%가 잘린 영상으로 0.1%가 그 안에 들어가 있으려나 그것도 안 될 것 같다"며 "영화를 만들려 촬영한 게 아니라, 기록하다 보면 진상 규명도 저절로 따라올 거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문 감독은 "많은 분들이 10년이라고 말씀하시는 기간이 며칠밖에 안된 거 같다"며 "그만큼 진상 규명이 참 더디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유가족분들이 걸어온 10년의 걸음과 마음을 (영화를 통해)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제도 개선의 싸움이고, 이를 통해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건 진상 규명"이라고 말했다.
문 감독은 "단순하게 잊지 말고 기억하자 그렇게 하면 저는 잊어주시고 기억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내가 어떻게 옳게 살아갈 지, 이와 비슷한 상황일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봤음 좋겠다"며 관객에게 숙제를 던졌다.
문 감독은 젊은 세대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길 소망한다. 그는 "내가 이들 보다 갈 날이 더 빠르지 않겠냐"라며 "이 친구들이 이런 자료들을 가지고 뒤를 계속 쫓아오며 진상 규명이 되고 결국 안전이 도모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언론, 진실 보도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약자들 옆에 있어야"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영화 '바람의 세월' 김환태 감독. 2024.04.08 mironj19@newspim.com |
언론에 대한 비판과 제언도 이어졌다. 문 감독은 "기자들이 큰 카메라를 들고 얼굴도 아니고 우는 눈동자를 찍으려 카메라를 유가족 눈 앞까지 들이댔다"며 "세월호 유가족이 우는 모습만 찍은 게 몇 년간 인터넷을 돌아다녔다"고 토로했다.
김 감독은 "약자의 편에서 진실 보도를 얼마만큼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하느냐는 지점 같다"며 "어떤 시기에 맞춰서 따라가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그것들이 이어지고 그다음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더 들어가고, 이런 관심을 가지고 계속 옆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문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을 '장소'로 꼽았다. 팽목항과 광화문, 단원고, 생명안전공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용산참사를 예로 들었다. 문 감독은 "그 곳에 가면 너무도 멋진 건물이 있을 뿐 어머니와 아버지, 노동자들이 투쟁했던 흔적이 하나도 없다"며 "아이들 사진만 걸어달라는 게 아니라, 함께한 시민들의 역사를 같이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어 줬음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4·16 생명안전공원 건립을 제안했다. 4·16 생명안전공원은 사업비 협의 과정에서 발목이 잡혀 거듭 지연되고 있다. 문 감독은 "우리 애들이 줄넘기도 하고 우리 지성이도 춤도 주고 자전거 타던 곳이 고향인 안산이다. 8군데로 흩어진 아이들이 당연히 와야 할 장소"라며 "안산 시민들이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누우실 수도 있는 공감을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앞에서 와서 눈물을 흘려야 되는 장소보다, 미래 세대들이 여기 와서 같이 엄마 아빠 손 잡고 사진도 남기며 여기는 정말 안전한 공원이구나 라고 느끼는 곳이 되었음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연대'를 통해 탄생했다. 세월호 10주기에 이르기까지 김 감독의 합류부터 촛불 시민들과 수많은 활동가들이 자리한다. 문 감독은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씩 지금도 촛불을 들고 계시는 지역이 7군데가 있다"며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못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태원 참사와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을 만나 부둥켜 안고, 다른 유가족과 숱한 갈등 속에서도 함께 김장도 하고 희로애락을 나누는 모습을 비춘다. 영화 속 인터뷰에 참여한 유가족들은 '같이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영화를 통해 주어져 좋았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영화는 '꼭 안아주세요"라는 곡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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