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4일 취임한 엄상필 대법관은 지난달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이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재판 지연의 해소"라고 말했다. 또 "재판 지연을 초래하는 요소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데에도 경험과 지혜를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장으로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재판 지연 해법으로 법관 증원 및 처우 개선 등을 강조하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판사 정원 370명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했다.
그동안 제 때 재판을 받지 못해 발생된 국민 피해에 대해 사법부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국민의 피해를 회복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국가가 참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참여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지난해 10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당시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야당을 저격했다.
사회부 김기락 차장 |
국민 인질에 이어 국민 볼모가 된 모습은 또 있다.
정부의 의과대학 2000명 정원 확대에 반대한 의료계의 전공의 사직 등이 이어지면서, 국민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환자들이 적시에 치료와 진료를 보기 어려워진 탓이다. 정부가 전공의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으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요즘은 지병 있는 노인들은 아파서도 안 되고, 교통 사고, 낙상 사고 등을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서로 당부한다고 한다. 혹여 그런 일이 생겨 전공의 이탈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아야겠다는 공감대를 나누는 것이다.
한 지인은 코로나19 때 응급 상황인 부친을 모시고 응급실을 찾았으나 병원 측이 감염 우려와 병상 부족 등을 이유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인근 다른 병원에 연락을 돌려가며 겨우 응급 치료를 받고 입원할 수 있었다.
진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 탓에 국민들은 크고 작은 불편을 겪고 있다. 그 중에는 불편을 넘어 생사 기로에서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환자나 보호자도 있을 것이다. 전공의가 비운 자리에 교수, 전임의,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의 업무 가중은 불 보듯 뻔하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모여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전국의사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를 초법적인 명령으로 압박하고, 회유를 통해 비대위와 갈라치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한덕수 국민총리는 "정부가 전공의들의 의료현장 복귀를 요청한 지 3일이 지났지만, 대부분의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6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계획 발표에 같은달 15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뒤,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의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내고 환자 곁을 떠났다.
정부는 국가로서 할 일을 하고 있다. 이를 두고 '초법적인 명령'이라고 반발하는 의사단체가 오히려 초국가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인질이자 볼모가 된 국민은 오늘도 어디선가 피 말리는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김 비대위원장이 지난달 17일 "단 한명의 의사라도 이번 사태와 연관해 면허와 관련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한다"고 한 점을 보면, 앞으로 국민들도 대한민국 모든 의사를 도전적으로 대할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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