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마약중독자로 만난 남녀의 살기 위한 몸부림
삶은 고통스럽지만 가끔은 살만하다고 말하는 영화
[서울 = 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니가 도적질한 그 돈, 우리 어머니 죽은 몸뚱이 팔아... 팔아서 받은 돈이다 그말이다."
억센 억양의 북한사투리로 훔쳐간 지갑을 돌려달라는 로기완(송중기 분)의 눈빛이 애절하다. 지갑을 훔쳐간 마리(최성은 분)는 로기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외면하지만 눈빛에서 미세한 흔들림이 포착된다.
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영화 '로기완'(감독 김희진)은 우리가 잊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상처를 들쑤셔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영화다.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인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첫 장편을 내놓은 신인감독이지만 능숙한 솜씨로 매만진 영상이 보는 내내 긴장감을 더한다.
[서울 = 뉴스핌] 영화 '로기완' 포스터. [사진 = 넷플릭스 제공] 2024.02.27 oks34@newspim.com |
왜 노기완이 아닌 로기완일까. 북한에서는 한자어에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기에 노씨 성은 로씨로 표기한다. 주인공 로기완은 탈북자다. 중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쫓기던 중 어머니를 잃고 낯선 땅 벨기에까지 흘러들어온 로기완은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게 삶의 유일한 희망이다. 작고 왜소한 체구에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버려지다시피한 기완은 하루하루 막막하고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그런 기완 앞에 나타난 여자 마리는 살아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마약에 찌들어 냉소만 남은 한국땅에서 온 여성이다. 삶의 막장에서 좋지 않은 인연으로 만났지만 서로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서로에게 빠져 든다. 그러나 그들의 앞에 놓인 삶은 늘 위태롭다. 돈도 인맥도 없는 기완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작업은 더디고 힘들다.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공병을 주워 팔고, 도축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전직 사격선수였던 마리는 사설도박장을 운영하는 조직에게 협박당하면서 사격시합에 동원된다.
송중기는 막막한 세상에 버려졌지만 자신을 살려보내기 위해 목숨까지 잃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기로 버틴다. 전작 '화란'에서 조직의 중간보스 역을 맡아 묵직한 연기를 선보였던 송중기는 같은 듯 다른 연기를 펼쳐 보이면서 기완 역을 소화한다. 고통스럽고 안쓰러운 탈북자의 연기를 진정성 있게 그리고 있다. '시동', '젠틀맨', '안나라수마나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는 배우 최성은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마리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와엘 세르숩, 조한철, 김성령, 이일화, 이상희, 서현우 등 든든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린다.
원작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평론가들로부터 "이방을 떠도는 탈북인의 운명에 대해 놀랄 만큼 차분한 공감을 자아내는 넉넉한 품과 세심한 결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또 "올올이 살아 있는 반성의 문체와 서럽도록 몽환적인 여로를 결합해, 소설에서 보편성이 어떻게 획득되는 지를 설득력 있게 입증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는 소설과 스토리의 결을 달리하지만 '우리에게 탈북자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는 알게 모르게 번거로운 존재로 치부되고 있는 게 아닐까. 신인감독 김희진은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잊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동안 어딘가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탈북자가 있음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그들을 껴안는 일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얘기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삶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가끔은 살만한 순간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끝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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