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고물가쇼크'에 민심 냉랭…핵심 빠진 민생토론회
고분양가 질주…서울 국평 신축 12억원대 시대
정부, 재정비사업 규제 풀었지만 공사비·분담비 갈등엔 해법 미흡
공급불안 가중, 집값불안으로 이어져…주택공급 선순환 기대 어려워
[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치솟는 물가에 민심이 냉랭하다. 지난 설 연휴 전후 국가대표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악화된 것 못지않은 게 고물가 문제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설 연휴에는 과일이 금값이라고 아우성 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8~9개들이 나주배 세트가 10만원이 넘는다. 그나마 겨울에 손쉽게 까먹을 수 있는 귤조차 박스로 사가는 게 부담스러워졌다는 얘기를 적잖게 들었다.
먹는 것 뿐 만 아니다. 집값은 떨어진다고 하는데, 신축 아파트 분양가는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1·3 대책에서 서울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 대해 사실상 민간 택지의 분양가상한제(분상제) 적용을 해제한 이후 분양가 급등이 두드러졌다.
반포주공1·2·4주구 재건축 철거 전 모습. [사진=이형석 기자] |
통계상으로도 이 같은 결과가 드러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서울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가 1년 새 20% 넘게 뛴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월 말 기준 서울 민간 아파트의 3.3㎡당 분양가는 3714만7000원을 기록하면서 지난해 1월(3063만원)과 비교해 517만원이 올랐다. 서울에선 더 이상 전용면적 84㎡ 기준의 신축 아파트 평균 분양가를 12억원 대 이하로 보기 어렵게 됐다. 이젠 국평(국민평형)이라고 부르기엔 고가 아파트가 된 셈이다.
'부동산규제 정상화'란 명분을 내건 분상제 폐지가 분양가 급등을 촉발시킨 것은 맞지만 상승 압력을 버티기 어려운 요인들도 함께 겹친 게 사실이다. 팬데믹 이후 국내외 고금리기조가 계속되면서 금융비용 조달 부담이 커진 이유가 크다. 여기에 미·중무역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국내 시멘트값 급등의 원자재난 등 대내외적 악재가 겹치면서 공사비 급등을 불러왔다. 그나마 서울에서도 집값이 가장 비싼 강남3구와 용산 지역은 분상제 적용으로 분양가 급등을 막고 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 지경이다.
고분양가에 수도권 미분양 물량이 다시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6998가구로 감소추세를 보였지만 지난 1월에는 1만31가구로 3033가구가 다시 늘었다. 2달 새 43.4% 급증한 것이다.
문제는 수도권 미분양 물량이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신규 분양에서도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분양에 나섰던 서울 동작구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동대문구 'e편한세상 답십리 아르테포레'와 '이문 아이파크 자이' 등이 고분양가로 계약포기자가 속출하면서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11억원 후반대에서 12억원 선을 넘어선 광명뉴타운의 '트리우스광명(광명2구역)'과'광명자이힐스테이트SKVIEW' 등 경기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분양가라도 분양이라도 제때 이뤄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갈수록 공급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재건축·재개발 진행 단지 곳곳에서 조합과 시공사간 공사비 갈등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지난달 1일부터 공사가 중단된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을 비롯해 서초구 신반포4지구, 송파구 잠실 진주재건축, 마포구 북아현2구역 재개발, 성남 산성구역 개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가 더 심각하다. 정부는 '1·10대책'을 통해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기하면서 서울 도심 재건축·재개발과 1기신도시 재건축 추진 등 재정비사업을 앞당기려 하고 있지만 분담금 갈등이 공급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노원구의 재건축 대표 단지 중 하나인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분담금 5억원'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조합은 분담금이 한 채 시세와 맞먹는 수준이라며 시공사인 GS건설과 계약을 취소했다. GS건설은 조합 측을 상대로 계약파기를 이유로 수십억 대 손해배상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도 분담금 문제로 삐걱대고 있다. 2017년에 시공사로 선정된 현대건설은 공사비를 2조6363억원(2019년 5월 산출 기준)에 책정했던 공사비를 4조776억원(2023년 8월 기준)으로 증액해달라고 요청했다. 3.3㎡당 50% 넘게 오르게 된다. 수억원의 추가 분담금 탓에 아직 착공하지 못했다.
정부는 5개 1기신도시에 선도지구를 연내 선정하는 등 수도권 재정비 사업추진 속도를 내도록 해 도심공급 물량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민생토론회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공사비 산정과 분담비용 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 뜻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토부도 속 시원한 해결방법은 없는 듯하다. 이에 대해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공사비 갈등이나 분담금 문제가 불거질 경우 조정을 통해 중재해 줄 수 있도록 도울 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다"면서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선 주택공급과 가격안정의 선순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1·10대책이 민생토론회의 결과라기 보단 정책발표회 같다는 지적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생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해 못내 아쉽다.
dbman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