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4년11개월만 1심 판단…47개 혐의 모두 무죄
"직권남용 해당 안해"…임종헌 등과 공모도 불인정
양승태 "당연한 귀결"…檢 "판결 분석 후 항소 결정"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76·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7·12기)·고영한(69·11기) 전 대법관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2019년 2월 기소 이후 4년11개월 만에 나온 법원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 대한 1심 선고를 열고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각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아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뉴스핌] 이호형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1심 무죄 선고를 받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2024.01.26 leemario@newspim.com |
재판부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통진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행정소송 등 당시 청와대 관심 사건에 대한 재판 개입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소장에 기재된 대부분 사건에 대해 공범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일부 인정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공모하거나 지시 또는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정보 및 동향을 수집한 혐의, 당시 사법행정을 비판한 법관들을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인사 불이익 조치를 검토한 혐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와해를 위한 대응방안 검토 지시 혐의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3억5000만원 상당의 공보관실 운영비 예산 불법 편성 및 집행과 관련해서도 "검찰의 주장과 같이 양 전 대법원장의 격려금으로 지급됐다고 보기 어렵고 각급 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의 대외활동비로 지급됐다"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 임정택 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4.01.26 jeongwon1026@newspim.com |
공소장에 기재된 혐의만 총 47개에 달하는 등 방대한 공소사실 탓에 선고는 이례적으로 장시간 이어졌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26분까지 10분의 휴정을 제외하고 약 4시간15분 동안 선고를 진행했다.
무죄가 선고되자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재판부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이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임성근·신광렬 전 부장판사(현 변호사)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 변호사)도 이날 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 후 법원을 나가며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 명쾌하게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입장문을 내고 "1심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2017년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최대 역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해 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고 이익을 도모할 목적으로 박근혜 정부와 일종의 '재판거래'를 통해 일선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등 총 47개 혐의로 2019년 2월 재판에 넘겨졌다.
박 전 대법관은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각 법원행정처장으로 있으면서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법원행정처 및 일선 사법행정 담당 법관에게 위법·부당한 지시를 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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