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급증에도 "전 정권 대비 안정적" 강조
공매도 전격 금지 이어 잇단 메시지 변화
총선 앞둔 변화 의심...금융권 "혼란스러워"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금융당국의 잇단 말 바꾸기가 구설수에 올랐다. 급작스러운 공매도 금지에 이어 은행권을 향한 대대적인 압박을 서슴지 않았던 가계대출마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 연달아 불거진 태도변화를 놓고 정권 표심관리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9일 금융당국은 최근 급증한 가계대출에 대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선제대응 차원에서 추가 규제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매도 전면 금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2023.11.05 leehs@newspim.com |
10월 국내 모든 금융권 가계대출은 6조3000억원 증가하며 25개월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9월 증가폭 2조4000억원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지난 4월 이후 7개월 연속 증가했는데 이 기간 늘어난 금액만 26조원에 달한다.
특히 가계대출 증가 요인으로 꼽히는 주택담보대출은 같은 기간 35조원 가까이 늘었다. 8월 6조6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9월 5조7000억원, 10월 5조2000억원 등 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고는 하지만 주택경기회복과 맞물려 반등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표상 명확히 이어지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이 "문제없다"는 입장을 들고 나온 건 전 정권과 비교할 때 위험하지 않은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4~10월 가계대출 증가폭은 월평균 3조7000억원인데 이는 2020~2021년 월평균 9조7000억원의 38%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문재인 정부 집권기 동안 520조4000억원 증가해 2022년 1월 기준 1862조9000억원을 기록했던 가계부채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23년 2월 기준 1862조8000억원으로 오히려 1700억원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고금리를 감안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기준금리만 2배 이상 급증, 차주부담증가가 경제불안을 촉진하는 요인임에도 이를 배제하고 단순한 지표만 언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료=금융위] |
당시와 현재의 급변한 대내외 경제상황을 감안하지 않는 주장이라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당시에는 부동산 가격이 너무 급등해 가계대출도 함께 증가했지만 지금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가계대출이 늘었다. 전 정권과 비교해 증가폭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가계대출 '경고등'을 키며 전방위 압박에 나선 금융당국이 말 바꾸기에 나서자 총선을 앞둔 정권 표심관리에 발맞춘 행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금융당국이 그동안 꾸준히 반대의사를 밝혔던 '공매도 한시금지(내년 6월)' 카드를 지난 5일 당정 압박을 이유로 급작스럽게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지적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상황에 입각해 중장기적인 정책을 이끌어야 할 주체가 정치적 포석이 의심되는 행보를 연일 보임에 따라 금융권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 기관이 정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번에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분위기다. 당장 금리만 해도 내리라는 건지 올리라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총선이 다가오면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금융위 측은 "일부 정책 도입 시점 등에 있어 혼선을 준 부분은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DSR 규제강화 등 주요 스텐스는 변함없이 유지해왔다. 가계대출 관리가 안정적이지만 미리 대비하고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추가적인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peterbreak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