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에 들러리 세운 외국계은행 제재 정당
수의 계약 아닌 입찰방식에 따른 계약 판단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국내 공기업의 통화스왑 입찰에서 규제당국이 제기한 입찰담합 판단이 적절한 것으로 판단됐다.
대법원은 지난달 31일 ㈜한국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체이스은행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통화스왑 입찰담합 제재와 관련, 공정위가 패소했던 원심(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공정위의 승소 취지로 파기하고 해당 사건들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핌 DB] |
공정위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도로공사 등이 실시한 4건의 통화스왑 입찰에서 담합한 4개 외국계 은행들을 적발해 2020년 3월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징금 총 13억2100만원을 부과했다.
다만 씨티은행과 제이피모간은 해당 처분에 불복해 같은 해 5월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각각 제기해 2021년 5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공정위는 이같은 판단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고 이번에 대법원이 공정위 처분이 적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다.
원심에서는 각 발주자가 특정 은행과 통화스왑 거래를 하기로 구두로 합의했고 이를 토대로 실질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판단됐다. 입찰절차를 거쳤다는 증빙을 남기기 위해 입찰을 시행하지 않은 채 원고와 다른 은행으로부터 입찰제안서를 제출받는 등 마치 입찰이 있었던 것처럼 외형을 갖추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해당 통화스왑 입찰은 경쟁입찰의 실질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당초 판단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 사건 통화스왑 입찰의 경우 내부 규정이나 실무 관행에 따라 발주자가 입찰에 부치게 되어 있는데도 해당 사건 모두 입찰을 실시하지 않고 형식적인 입찰서류만을 작성해 입찰이 있었던 것처럼 조작한 경우와는 달라 입찰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모습 [사진=뉴스핌 DB] |
이런 관점에서 당초 공정위는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전에 낙찰예정자인 원고(씨티은행)와 홍콩상하이은행, A은행에게 제안서 제출을 요청했고 홍콩상하이은행은 원고와 합의에 따라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결국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원고가 낙찰자로 선정된 것으로 봤다.
한국도로공사 역시 낙찰예정자(홍콩상하이은행)에게 타 은행 제안서 제출을 요청했고 홍콩상하이은행의 요청에 따라 원고(제이피모간)와 씨티은행은 홍콩상하이은행보다 높은 원화 고정금리를 제출해 가장 낮은 금리를 제시한 홍콩상하이은행이 낙찰자로 선정됐다는 점 역시 공정위가 제재한 판단 근거였다.
해당 통화스왑 입찰은 실질적으로 단독입찰을 하면서 들러리를 내세워 마치 경쟁입찰을 한 것처럼 가장하거나, 발주자 측이 특정인과 공모해 그 특정인이 낙찰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예정가격을 알려주고 그 특정인은 나머지 입찰참가인들과 담합하는 등 실제 입찰이 진행된 사안과 유사한 것으로 대법원도 판단했다.
대법원은 각 발주자와 낙찰 은행 사이의 이 사건 통화스왑 거래에 관해 체결된 수의계약은 당사자 사이에서만 구속력이 있을 뿐 그 이후에 진행된 입찰절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또 공동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다른 은행이 유효한 경쟁관계를 전제로 입찰에 참가하거나 해당 사건의 공동행위에 가담한 다른 은행이 합의를 파기하고 발주자보다 더 낮은 원화 고정금리로 견적서를 작성·제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의 시각이다.
부당한 공동행위 등을 규제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자 하는 공정거래법의 입법목적에 비춰볼 때 이같은 입찰을 규제해야 하고 입찰에 이르는 과정엣의 경쟁도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 취지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