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증여세 포탈' 1심 변호→무죄 확정에 소송
"자녀 증여세 소송 결과 따라 지급" 성공보수약정
법원 "성공보수금 4억 줘야"…김기병, 패소 후 상고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지난 2018년 무죄를 확정받은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이 자신의 형사사건 1심을 맡았던 법무법인 태평양(대표 변호사 서동우)과 수억원대 성공보수금을 놓고 소송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부(엄상필 부장판사)는 지난달 초 태평양이 김기병 회장을 상대로 낸 보수금 청구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법원은 김 회장이 태평양과 형사사건 수임 계약을 체결하면서 약정한 2차 성공보수금과 관련해 4억125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고 김 회장 측이 이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대법원이 최종 판단하게 됐다.
법원로고 [사진=뉴스핌DB] |
사건은 세무당국이 2011년 김 회장의 두 아들에게 800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부과하고 김 회장을 증여세 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김 회장은 이듬해 3월 허위 주주명부 등을 이용해 자녀들에게 시가 720억원 상당의 회사 주식을 넘기면서 증여세 467억여원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고 1·2심에 이어 2018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당시 법원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김 회장이 주주명부와 주권을 조작해 허위로 제출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태평양은 김 회장의 1심과 자녀들이 서울 용산·반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1심을 모두 수임하면서 착수금과 별도로 성공보수를 받기로 약정했다. 김 회장과 태평양 간 위임계약서에 따르면 1차 성공보수금은 형사소송 결과에 따라 2차 성공보수금은 김 회장의 자녀들이 낸 조세소송 결과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김 회장의 자녀들은 증여세 소송 1·2심에서 패소했으나 김 회장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날 대법원이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두 번째 대법원 판단을 받은 끝에 2020년 10월 최종 승소했다.
이에 태평양은 김 회장에게 2차 성공보수금으로 5억5000만원을 달라고 했고 김 회장이 거절하자 2021년 2월 소송을 제기했다.
김 회장 측은 태평양이 자녀들의 증여세 소송 1심에만 관여했고 당시 패소했는데 최종 승소했다는 사정에 의해 성공보수금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또 실형 및 벌금형 선고를 받을 염려에 있던 김 회장의 궁박한 사정을 이용해 이례적으로 높은 성공보수 지급을 정한 것으로 민법상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성공보수약정이 민법 103조에 따라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없고 민법 104조에 위반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1심은 "이 사건 성공보수약정은 형사소송이 관련 조세소송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에 따라 피고가 원고에게 추가 성공보수금을 차등지급하기로 하는 약정이라고 해석함이 타당하다"며 "두 소송이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점 등을 더해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약정에 해당한다거나 그 자체로 효력을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반사회성을 지닌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김 회장이 직접 태평양 사무실에 방문해 위임계약을 체결한 점, 김 회장의 지위 및 재산 상태, 형사소송의 공동변호인으로 선임한 다른 변호사에게 지급한 착수금 및 성공보수금 등을 고려하면 태평양에 대한 약정이 불공정하거나 과도하게 높은 보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형사소송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관련 조세소송에서 청구가 인용되는 사안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고 조세소송 결과에 따라 산정된 2차 성공보수금 전부를 지급하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존재한다"며 김 회장이 지급할 성공보수금은 4억1250만원이 타당하다고 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계약 당사자들로서는 형사소송의 결과가 관련 조세소송 결과에 당연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인식 내지 기대를 전제로 피고 측의 경제적 이익 내지 손실 회피 규모가 확정되면 그에 따라 성공보수금을 산정·지급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시했다.
김 회장 측은 형사소송 1심 선고일(2013년 1월)이나 증여세 소송 1심 선고일(2015년 7월)로부터 3년이 지나 보수금 소송이 제기됐다며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원고는 조세소송 판결이 확정돼 피고 측에서 실제로 납부할 세액이 결정된 2020년 10월 경 비로소 2차 성공보수금 채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로부터 3년이 경과하기 전 이 사건 소가 제기됐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소송에 대해 태평양 측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따로 말씀드릴 것이 없다"고 밝혔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