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구조' 재확산, 발주와 하도급 원가절감·공기 단축 내세운 악용…'전관 특혜' 가려내야
'하자분쟁조정위' 입주예정자 입장에선 도움 안돼 '유명무실'
10월 '안전· 카르텔 혁파' 종합대책 실효성·형평성 관건…계약해지·손해배상 실효성 높여라
[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우리 사회엔 결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다. 1994년과 1995년에 잇따라 발생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대표적이다. 비록 TV 속 화면에 비쳐진 사고현장이라 해도 눈앞에 펼쳐진 당시 참혹한 광경은 충격과 분노 그 자체의 생생함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2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최근 반복되는 건축물 붕괴 사고 유형이 '판박이'이어서 충격적이다. 특히 붕괴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주자창이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것으로 밝혀지면서 삼풍백화점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무량판 구조로 지어지는 자체가 부실은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보를 생략한 기둥 구조인 만큼 철근 보강이 필수인데 당시에도 이를 빼먹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무량판 구조 자체에 정말 기술적 문제가 없는지도 의심스럽다. 당시 서울시가 전수조사를 실시해 무량판 구조를 가진 강남구 논현동 나산백화점을 폐쇄시켰고 상계동 미도파 백화점도 보강공사 조치를 한 바 있다. 국민들은 왜 이 공법이 다시 적용돼 확산되고 심지어 아파트 주거동까지 적용되고 있는지를 납득하기 어렵다. 삼풍백화점 참사 이후 한때 무량판 구조의 설계 자체가 기피되기도 했다는데 말이다. 결국 공기단축·원가절감의 명분을 악용해 설계서부터 시공과 감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철근 누락'을 눈 감아 온 결과가 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인천 검단신도시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현장 [사진=인천시] |
정부도 그런 차원에서 발주청과 하도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와 '전관 특혜'에 대한 대대적 조사에 들어갔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건설산업의 '이권 카르텔'로 지목하며 척결을 지시함에 따라 대책에 속도감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국토부는 오는 10월 중 '안전· 카르텔 혁파' 종합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지난 3일 밝힌 바 있다.
일단 붕괴사고의 원인이 된 무량판 구조가 채택된 293곳의 민간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가 9월까지 이뤄진다. 앞서 무량판 구조로 '철근 누락'이 확인 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 15개 단지의 보강공사도 함께 진행된다. 아울러 무량판 구조를 '특수구조물'에 포함시켜 안전 점검 절차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수구조물은 구조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각종 건축 기준과 절차를 강화한 건축물이기 때문에 무량판 구조의 부실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이와 함께 '전관 특혜'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도 오는 10월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LH가 발주하는 아파트 가운데 '철근 누락' 등의 부실시공이 확인된 15개 단지에서 LH 퇴직자가 설계, 시공, 감리 등에 관련된 사실이 확인됐다. LH 퇴직자가 있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전관예우가 결국 인천 감단 지하 주차장 붕괴사고를 촉발 시킨 부실시공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당정이 부실시공에 따른 손해배상과 계약해지권 부여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소비자 권리 측면에서 당연히 강화돼야 할 부분들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소비자의 법적 권한이 있다 해도 스스로 이를 입증할 만한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기도 어려운데다, 계약서 상에서도 '을'인 입주예정자들에겐 불리한 조항으로 실제 보상이나 계약해지가 이뤄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손해배상과 계약해지권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정부의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구체안이 제시돼야 한다. 국토부 내 하자분쟁조정위원회가 설치 돼 있지만 말 그대로 협의를 통한 합의여서 입주 예정자에겐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당정 발표에선 무량판 구조의 LH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에 대해서만 계약해지권 부여하는 것으로 제시되면서다. 아파트 부실 시공과 입주 지연 문제는 어제 오늘 만의 문제는 아니나 최근 관련 민원이 각 지자체에 폭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종합적 대책이 기왕에 세워지는 것이라면 소비자의 관련 보상과 권리 행사 범위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권 카르텔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을'의 권한을 키우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오진 국토부 제1차관이 밝힌 브리핑에서 눈여겨 볼만 한 대목은 있다. 김 차관은 "안전문제가 확인된 부실시공 아파트에 대해서도 추후 생각해보겠다"며 부실 시공 아파트 대상 확대를 시사했다. 그는 "부실시공에 대한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국토부 내 전담부서나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좀 더 지속적으로 보완해 갈 수 있는 방안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만다 일회성으로 대책이 나오는 게 오늘과 같은 LH 문제를 만들어졌다고 본다"면서 "대통령께서 반카르텔 정부라고 규정한 것 처럼 이런 맥락 속에 지속적인 대안을 마련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dbman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