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스턴=뉴스핌] 고인원 특파원= 러시아가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보장하는 흑해 곡물 협정이 종료됐다고 17일(현지시간) 선언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흑해곡물협정은 오늘부터 효력이 없다"며 "러시아 관련 사항이 아직 이행되지 않았고, 따라서 협정이 종료됐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인근의 흑해 해상에 우크라이나 곡물을 싣은 화물선 '데스피나 V'(Despina V)가 항해하고 있다. 2022.11.02 [사진=로이터 뉴스핌] |
그러면서도 대변인은 "러시아의 관련 사항이 이행되는 즉시 러시아는 협정 이행에 복귀할 것"이라며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는 과거에도 협정 기한 연장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다 막판에 동의한 적이 있다.
흑해 곡물 수출 협정은 러시아의 침공에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이 중단되면서 촉발된 세계 식량 위기 우려를 잠재우고자 지난해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체결됐다.
당초 협정 기한을 120일(4개월)로 정하고, 이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5월 17일 세 번째로 연장된 뒤 이날 2개월의 기한이 만료될 예정이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길은 열어주면서, 자국 농산물과 비료의 수출은 제재받고 있다는 이유로 협정 연장에 반대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은 지난 4월 중순 유엔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흑해곡물협정에는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 수출 기회의 확대가 명시되어 있지만 "실상은 우리가 합의한 협정이 아니다"라며 약 20만톤의 러시아산 비료를 실은 선박이 수입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정박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러시아는 협정 연장을 위한 조건으로 러 농업은행의 스위프트 결제망 복귀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러시아는 지난해 우크라를 침공한 이후 스위프트에서 퇴출되면서 국제 결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위프트 차단 등 국제사회의 복잡한 제재 때문에 러시아산 곡물과 비료의 안정적인 수출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러시아 측의 주장이다.
한편 러시아의 이번 발표에 앞서 이날 우크라이나 크림반도(크름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대교가 공격받는 사건이 발생했고, 러시아는 이번 공격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이에 러시아가 이번 공격에 대한 일종의 보복으로 협정을 종료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대교는 지난해 10월에도 우크라이나가 배후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아 올해 2월에야 차량용 교량이 완전히 복구됐다. 실제로 러시아는 해당 공격 이후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이 협정 참여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번 협정 종료 결정이 크림대교가 공격받은 것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날 러시아의 이번 결정으로 전 세계의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식량난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에 많은 국가가 이미 급격한 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전 러시아와 우크라가 세계 밀 수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했다. 특히 중동, 아프리카 등은 우크라이나산 곡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당장 빈곤국과 개발도상국 등의 식량난이 한층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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