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통일비서관 지내 이론⋅실무 겸비
'김정은 타도' 발언 공세 빌미 될 수도
"하반기 北 유화공세 가능성 대비해야"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여 만에 통일부 수장이 교체되는 상황을 맞으면서 정부 대북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이어져 온데다 지난 5월 31일 이른바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로 리더십에 손상을 입은 김정은이 재발사를 공언하고 있는 국면에서 통일부 장관이 바뀌게 된 때문이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29일 오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06.29 yooksa@newspim.com |
남북 대화나 교류⋅협력 쪽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는 통일부 입장에선 안보 위기 상황을 잘 관리하면서 북한의 유화공세로의 전환 가능성이나 당국대화⋅대북지원 등에도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후보자로 지명되는 자리에서 "굉장히 어려운 시기에 장관 지명 받아서 어깨 무겁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김 후보자의 낙점에 대해 통일부 안팎이나 전문가 그룹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우선 김 후보자가 윤석열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사라는 점은 장관직 수행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김 후보자는 지난 2월부터 통일부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전문가 그룹을 이끌며 윤석열 정부의 대북 기조라 할 '신(新)통일미래구상'(가칭)을 설계해 왔다.
앞서 이명박(MB)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 비서관을 지냈고, 외교부⋅국방부는 물론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자문위원을 두루 맡아 대북부처 전반에 걸친 업무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대목도 장점이다.
북한 관영매체는 지난 3월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지도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뒤 벽면에 '화산-31' 전술핵탄두 도면이 보인다. [사진=조선중앙통신] |
통일부 고위공무원단 간부 A씨는 "권영세 장관의 경우 윤 정부 첫 통일장관으로 정무적 역할에 충실했지만 정책이나 업무의 디테일은 아무래도 약했다"며 "오랜 기간 대북⋅통일 분야에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해온 김 후보자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김영호 후보자가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져 있고 내정설이 나올 때부터 일각에서 이를 문제 삼이 공격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된다.
대학교수 시절 유튜브 채널이나 기고문을 통해 '김정은 정권 타도'를 언급한 적이 있고 북한 체제에 대한 반감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라 통일부 장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것이란 주장이다.
특히 청문회 단계부터 정치권의 논란이 뜨거울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정부 당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고 김정은과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치른 점을 나름대로의 '업적'이라 여기는 더불어민주당 측에서는 김 후보자의 대북관이나 북한 체제에 대한 인식을 문제 삼아 논란거리로 몰고 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마침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69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북한 공산 집단에 대하여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청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 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며 직격탄을 날리면서 민주당은 격앙된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기조와 정책을 겨냥한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통일부의 위상이나 정부 내 정책 결정 과정을 감안할 때 김 후보자의 성향이나 대북인식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정쟁화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 장관 출신 B씨는 "정권 실세 출신이 아니라면 장관 한 사람의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된다"며 "민감한 대북현안이나 정책의 경우 청와대와 유관부처 조정을 거치다보면 본안과 많이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통일⋅대북 정책의 경우 통일부가 주무부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성격상 대통령이 직접 챙길 수밖에 없는 사안인데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물론 국가정보원 등 유관부처와의 협의체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30일 서울 용산 국방부·합참 청사를 첫 방문해 공군 항공점퍼를 입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
청문회 과정 등에서 지나치게 정쟁화 하는 상황을 맞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통일부 간부 출신의 C 전문가는 "MB 정부 때인 2008년 남주홍 교수의 통일부 장관 후보자 내정 당시엔 저서인 '통일은 없다'의 제목을 문제 삼아 반통일론자로 몰아가고 결국 낙마시킨 일도 있었다"며 "그런 막무가내 상황이 재연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학자⋅전문가로 민간 분야에서 일하던 때와 달리 부처 장관을 맡아 일하게 되면 대북관련 발언 등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질이나 철학⋅가치관 등을 검증하되 과거 발언 등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논란거리로 삼는 건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은 "장차관이 동시에 외부에서 오는 상황을 맞은 통일부 직원들이 충격을 받은 듯 뒤숭숭하고 사기도 많이 떨어진 것 같다"며 "대북 주무부처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을 추스르는 게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반기 남북관계의 변화 가능성에 대처할 수 있는 방책이나 전략마련에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항저우 아시안게임(9월 23일~10월 8일) 참가 입장을 정하고 선수단 명단까지 통보한 상황이란 점에서 이를 계기로 북중 정상회담을 하거나 대남 유화공세 쪽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원칙을 갖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공들이고 있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압박은 물론 남북관계의 회복에도 공을 들일 것임을 염두에 둔 언급이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