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심문 앞둔 노조 간부 분신에 탄압 논란
노동계 "건폭 프레임, 전방위 수사로 압박"
법조계·전문가 "수사보다 논의가 선행됐어야"
[서울=뉴스핌] 김신영 김현구 기자 = 정부가 이른바 '건폭(건설폭력)'으로 규정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나서자 일각에서는 '노조 때리기'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 발언을 두고 야권과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정부가 노조의 정당한 쟁의 행위에 대해서도 건폭 프레임을 씌어 폭력 집단으로 매도하고 탄압한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와 노동계는 정부가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목표로 노조의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강도 높은 수사만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내다봤다. 전방위 수사로 인해 건설노조 간부 등이 소환조사를 받거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둔 상황이 잇따르면서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우려다.
[건폭전쟁] 글싣는 순서
1. '건폭수사단' 출범 4개월…노조 간부 등 무더기 수사 선상
2. 건폭 vs. 쟁의…"불법 바로잡되 합리적 대안도 필요"
최근 건설사에 노조 전임비를 요구하고 조합원의 채용을 강요한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있던 한 건설노조 간부는 급기야 분신을 택했다. 노동계는 압박과 탄압이 아닌,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실태와 불법행위 발생 배경 등을 정확히 파악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때라고 제안했다.
시민사회종교단체 관계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제시민사회종교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정일구 기자] |
◆ 강도 높은 수사…노동계 "유례 없는 탄압"
정부의 방침에 따라 경찰의 특별단속에 이어 검·경 '건폭수사단'이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가자 노동계는 유례 없는 탄압이라며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6일 노동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121개 시민사회 단체 및 야권은 지난달 초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투쟁 결의대의를 열고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구속된 노조원들에 대한 석방과 과잉·강압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노동계는 수사기관이 무차별적으로 영장을 청구하며 경찰 특별단속 기간 내 실적을 올리기 위한 강압 수사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사의 교섭 과정과 단체 협약 형태를 면멸히 살피지 않은 일방적인 수사를 벌인다고 꼬집었다.
김준태 민주노총 건설노조 교육선전국장은 "지난 25일 경찰이 예고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이 끝났다"며 "이 시점을 앞두고 수사기관이 일종의 아니면 말고 식의 수사를 진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조합원이 없는데 노조를 빙자한 단체도 건설현장에 분명 있다. 이처럼 문제가 되는 노조에 맞춰진 수사를 진행하면 되는데, 최근 수사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며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하는 건설노조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수사를 하다보니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용직 근로자들이 모인 건설노조는 매일 채용과 교섭을 요구하는 형태로 일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정이 고려되지 않는다"며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현장의 실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 고(故) 양회동 씨 영결식에서 건설노조 조합원과 유가족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6.21 mironj19@newspim.com |
◆법조계·전문가 "일방적 수사, 능사 아냐"
법조계와 노동 전문가들은 정부와 수사기관이 오랜 기간 건설현장에서 자행된 불법 행위를 바로 잡기 위해 수사에 나설 필요는 있지만, 일방적인 수사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정병욱 변호사는 "건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노조를 꾸려 활동할 수밖에 없는 사정과 경위를 살피지 않고 무조건 건폭이나 불법 행위라고 보는 시각은 건설 현장의 특수성을 무시한 경향"이라며 "수사기관이 사건을 기소했더라도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어 "정당한 노조 활동에 대해서도 건폭으로 왜곡해 무리한 수사를 이어간다면 보여주기식 수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사측도 건설현장에서 노동자에게 불합리한 행동을 했을텐데 왜 수사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노조의 특성을 악용해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집단은 처벌해야 하지만, 정부가 경찰 특진을 내걸어 억지 수사를 야기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노동 분야 전문인 한 변호사는 "조폭들이 노조를 만들어 건설현장에서 협박을 일삼는 행위는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면서도 "합법적인 노조활동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이를 촉구하고자 집회를 연 것을 두고 공갈이라고 매도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건폭 수사에 경찰 특진을 내걸고, 한 노조단체의 1000명 이상을 소환해 조사하며 전방위적으로 압박한 사례는 없었다"며 "법원도 압수수색과 구속영장 발부에 신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유재원 한국노무사회 부회장은 "노조의 불법 행위는 기업인이 배임하는 혐의와 동일한 수준으로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혐의가 명백하지 않은 데도 소환과 수사를 통해 압박하고 무리하게 기소하는 행위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강도 높은 수사가 노조의 불법 행위를 근절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합리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전방위 수사로 인해 정당한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해결할 필요는 있지만 검찰이 나서서 사법처리하고 여론 몰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어야 했냐는 의문이 있다"며 "심각한 사법 처리 대상이 될 만한 문제와 아닌걸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적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노조 힘만 뺀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정당한 노조 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다"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거나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관행을 고치는 방법들을 먼저 논의하는 게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s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