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정치 입문한 통일독일 인프라·교통 전문가
"형편없던 동독 인프라...북한도 마찬가지일 것"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인 한국 주도 통일 당연"
"통일 과정서 서독이 동독에 너무 장밋빛 약속"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안드레아 쇼이어(49) 전 독일연방 교통부 장관은 "독일 통일 직후 서독의 정치인들이 굉장히 놀란 건 동독의 인프라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는 점이었다"며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일 것인데 통일 이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평화협력연구원과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가 공동 주최한 한독 통일포럼 참석차 방한한 쇼이어 장관은 17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가진 뉴스핌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반도는 아직 분단된 상태지만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이 주도해 통일을 하는 건 당연하다"며 "그 바탕은 바로 경제적인 힘"이라고 강조했다.
독일 바이에른주 출신인 쇼이어 장관은 2002년 독일 연방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교통⋅인프라 전문가다.
지난 17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프레스클럽에서 뉴스핌과 인터뷰하는 안드레어 쇼이어 전 독일연방 교통부 장관. [사진=이영종 기자] 2023.05.18 yjlee@newspim.com |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10대 시절 독일 통일을 경험했는데, 분단 상황을 절감했던 때는 언제인가.
▲1984년 LA올림픽이 열리던 시점으로 기억한다. 당시 10살이던 나는 아버지와 TV를 보고 있었는데, 왜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입장했는데 당시 이해할 수 없었다. 독일은 하나의 민족이라 생각했는데 참 의아한 장면이었다.
-매우 젊은 시절에 정치에 입문했는데.
▲27살에 독일연방 의회에 들어갔으니 참 빨랐다. 15년간 정치인으로 주로 교통 분야를 다뤘다. 4년 간 독일 연방정부의 교통⋅디지털⋅인프라 담당 장관을 지냈고 앞서 차관도 역임했다. 기사당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는데, 당 사무총장은 독일의 경우에도 싸움닭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에 방한하게 된 이유는.
▲유럽과 아시아, 독일과 아시아국 교류와 소통을 도모하는 아시아브릿지라는 조직을 이끌고 있다. 북한과 중국은 빠져있지만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는 기구다. 이 조직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게 된 건 지금 예전과 다른 시대가 열리고 있고, 다른 질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독통일포럼 참석도 중요한 일정이다.
-남북 분단 상황을 살펴 봤을텐데 어떤 느낌을 받았나.
▲오늘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왔고 판문점에서 휘날리는 남북한의 큰 깃발(각기 게양한 대형 태극기와 인공기)을 보면서 굉장히 감성적인 느낌을 받았다. 저 너머 자유 없이 빈곤 속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통일을 하는 게 긴요하다고 생각했다.
북한 최전방 선전 마을인 기정동 지역에 대형 인공기가 게양돼 있다. 지난해 11월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판문점 방문 때 촬영된 영상이다. [사진=통일부 제공] |
-한국의 통일은 어떻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한반도는 아직 분단된 상황인데, 자유를 갖고 민주주의를 하는 쪽이 주도해 하나가 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은 바로 경제적인 힘이다. 한국이 지금까지 이뤄낸 경제적인 성과는 놀랍고, 찬사를 보낼 수 있다. 첨단기술과 신기술 선도는 놀랍다.
-통일독일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 할 수 있는가.
▲독일이 통일된 건 하나의 기적이었다. 당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4개의 인접국가들, 그러니까 2차 대전 승전국들을 독일 통일에 찬성토록 만드는 어려운 과제를 맡았다. 주변국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든 소통과 만남의 시도는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독일이 통일을 이룬지도 33년이 흘렀다.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의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통일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거저 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보수정당에 속해 정치를 하고 있는데, 독일의 보수정당도 통일이 서로에게 적당히 맞춰가는 방식이 아니라 완전히 하나가 돼야 한다는 목표를 가졌다.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의지가 중요하다.
-통일 과정에서 엄청난 돈이 들어가지 않았나. 통일비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통일과 관련해 가장 커다란 가치로 얘기를 했던 건 자유와 경제적인 안정이다. 독일 통일에는 말대로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국가의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는 인프라와 교육, 에너지 문제인데 나는 인프라 전문가로서 이 분야에 집중했다.
-장벽이 무너진 뒤 드러난 동독의 인프라 상황은 어땠나.
▲서독 정치인들은 통일 직후 굉장히 놀랐다. 동독 인프라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동독이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3가지 요소 중 인프라와 산업 기반이 붕괴돼 있었다. 도저히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것에 반감을 품고 개선하겠다며 동독사람들이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다. 북한도 이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독통일포럼에서 통일독일의 교통 인프라 관련 건설 경험을 발표하는 안드레아 쇼이어(가운데) 전 독일연방 교통부 장관. 왼쪽부터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오재학 한국교통연구원장, 쇼이어 전 장관,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김영수 사무총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국사무소장. [사진=이영종 기자] 2023.05.18 yjlee@newspim.com |
-어떻게 동독의 낙후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할 수 있었나.
▲인프라를 짜기 위한 독일 통일 교통프로젝트(VDE)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도로와 철도⋅수로를 구조적으로 새로 만드는 것이었다. 통일과정에서 희망이 생겼고 이를 뒷받침할 의지와 재원이 있었다. 물론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실망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동독 쪽 기반 너무 안 좋아 이를 바꾸는 과정에서 실업도 많이 생겼고, 시장경제의 도입도 바로바로 성과가 나지 않아 시간차 때문에 실망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통일 직후 동독의 산업은 어떤 상황이었나.
▲모든 기반시설이 낙후되고 개선되지 못하는 상태였다. 동독의 대형 국영기업이나 사업소들은 1만명, 10만명 규모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고 했지만 그건 허울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쓸모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동독 시절 주민에 트라반트라는 조그만 차를 만들어 공급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경쟁력이 없었다.
-통일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현재 동독 지역의 인프라 구축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통일 이후 동독 고속도로를 다시 개선하기 전에 시험 삼아 직접 운전해본 적이 있는데, 도로가 형편없고 진동이 심해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희망과 의지가 있었고 그에 따르는 재원이 갖춰진 때문이다. 이런 기반은 지금 다 정리된 상황이다. 교통 관련 17개 프로젝트는 부분적 미진함이 있지만은 큰 틀로는 다 마무리 됐다.
-옛 동서독 지역 간 차이 뿐 아니라 동독 지역 내에서도 산업이나 인프라 투자와 생활 수준의 격차가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의 고향인 독일 바이에른주의 경우는 탄탄한 산업적 기반이 있는 곳이다. 동독 지역과는 차이가 난다. 말씀대로 동독 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동독의 대표도시인 라이프치히의 경우는 잘 정비가 됐다. 그러나 이런 성공적인 도시가 아닌 시골이나 지방의 경우는 인구유출 등 어려움이 상당히 있다. 그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들이 패배자라는 의식을 갖는다. 또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정당에 표를 주게된다.
-통일 독일의 시행착오나 경험은 한반도 통일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되는데.
▲독일의 앞선 통일 사례가 있다는 점은 한국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한반도 특성에 맞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틀을 잘 짜야한다.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유의해야 한 점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통일이 되면서 서독 사람들이 동독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장밋빛 약속을 한 건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서 구 동독 지역의 전통적인 상표들이 있는데, 이들 제품들이 경쟁력 없다보니 그 제품들이 밀려나고 서독의 다른 브랜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을 보면서 동독 사람들이 큰 상실감을 갖게 됐다. 이런 건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