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전세사기 주택 6개월 이상 경매·매각 유예
당국, 비조치의견서 발급…금융사 배임소지 차단
경매 주택 대다수 2금융권…건전성 타격 불가피
[서울=뉴스핌] 김연순 강정아 기자 = 금융권이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피해와 관련 피해자의 주택 경매를 6개월 이상 유예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권 자율적으로 피해 주택의 경매와 매각 유예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경매 주택이 주로 2금융권에 포진돼 있어 이들 금융사들의 연체율 등 건전성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19일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 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한 자율적 경매·매각 유예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은행권, 2금융권 등 각 업권별로 시행에 필요한 세부사항을 조기에 확정해 신속히 시행할 예정이며 유예조치는 6개월 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 경매를 유예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 사기 피해 아파트.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앞서 공공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보유 중인 인천 미추홀구 주택 210건 중 경매 기일이 잡힌 51건의 경매를 보류하고, 나머지 159건도 경매 기일이 도래하면 연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전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당국은 전 금융권에 경매 유예 조치를 결정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에 임의로 경매중단을 요구할 경우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자율적인 경매 유예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주소를 입수해 은행, 상호금융 등 주택담보대출 취급 금융기관에 송부하고, 새마을금고에 대해선 소관부처인 행정안전부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는 구체적인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기준이 있어야 경매 중단도 가능하다는 금융사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담보로 취급한 금융기관은 대출의 기한의이익 상실 여부, 경매 여부 및 진행상황 등을 파악해 피해자가 희망하는 경우 경매절차 개시를 유예하거나, 경매가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금융기관이 법원에 매각기일 연기신청서를 제출해 매각 연기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관이 부실채권(NPL) 매입기관 등 제3자에 이미 채권을 매각한 경우에는 매각 금융기관이 매입기관에 경매 유예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또한 금감원은 일각에서 제기된 금융기관의 배임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업권에 비조치의견서를 발급하기로 했다. 비조치의견서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사후관리를 부실하게 하거나 금융관련 법규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 제재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다만 금융회사 입장에선 경매 중단시 연체율 등 건전성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근저당권을 가진 금융사는 통상 채무자가 3개월 이상 원리금을 연체하면 임의 경매 절차를 진행해 대출금을 회수한다. 하지만 경매를 중지하면 채권을 회수할 수 없게 돼 연체한 금액만큼 은행의 유동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경매를 중단하면 금융사들이 고스란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피해자 경매 주택의 근저당권이 대부분 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에 포진돼 있어 경매중단시 상호금융권의 자금경색 우려도 제기된다.
상호금융의 한 관계자는 "전세사기라는게 정의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는데 실질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취하느냐에 따라 경매 및 매각 유예 조치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이 오면 내부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인 연체율 등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세사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금융사쪽에도 보완될 수 있는 점이 있어야 손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호금융의 또 다른 관계자도 "금융 피해자를 위한 조치다 보니 금융사는 연체 기간을 더 길게 가져가는 측면이 있다"며 "금융권에선 연체 이자 발생, 채권 회수시기 연장 등의 손해를 양보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