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유동성 공급 불가피…신속하게 더 확대해야
가계 금리 쇼크에 대응할 대책 나오고 있지만 폭과 속도 아쉬워
[서울=뉴스핌]김정태 건설부동산 전문기자= "단기간 낙폭이 너무 가팔라 경제 원리상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특정 가격대를 떠받친다거나 인위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는 없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도권 규제 완화 등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 1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원 장관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종합국감에서 연착륙을 위한 선제대응을 주문한 의원 질의에 대해 "아직 집값이 비싸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과 온도차이가 있다. 그의 인식이 확실히 위기의식을 감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무부처 장관의 태세전환은 늦은 감은 다소 있지만 다행이다. 시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이념과 무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던 전 정부의 수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다.
원 장관의 엇갈린 발언을 두고 일부 언론은 '갈지자 행보다'. '부양책이다' 등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 특히 주택시장은 무주택자냐 유주택자냐에 따라 시선의 기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의 부동산 시장은 분명 위기의 징후가 여기저기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단초는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 쇼크다. 정신없이 가파르게 올리는 미 연준의 거침없는 결정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특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쫓아 갈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고금리발(發) 쇼크의 공포가 '돈맥경화'로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주택시장은 '거래절벽', '거래실종'이란 표현도 모자라 '거래빙하기'라며 꽁꽁 얼어붙은 시장을 지칭하고 있다. 집값 하락기에는 거래가 감소하고 상승기에는 늘어나는 게 일반적 추세다. 하지만 이번 빙하기는 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가계뿐만 아니라 내수 산업과 지자체 세수(稅收)까지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을 과거 두 차례 위기를 통해 절감해 왔다. 경착륙을 저지하기 위한 정부의 대응은 바람직하다. 사실상 자금줄이 막힌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들에 유동성을 공급한 것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비상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선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지만 지금은 '고금리 쇼크'가 경제 전반을 휘청이게 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오히려 자금경색을 풀 수 있는 여러 묘안을 짜내야 하는 시가다. 그런 점에서 금융당국은 신속히 증권사 기업어음(CP) 매입에 투입한 데 이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까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개인투자의 실패를 논하기 앞서 고금리 쇼크를 완화할 만한 규제 완화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의 규제지역완화와 청약 규제 완화는 당장 수급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꽁꽁 얼어붙은 매수심리를 녹일 수 있는 몇 가지 요인은 있다. 대출과 세금의 실질적 완화는 아직 기대에 못미치나 실수요자들에겐 여러 혜택이 주어지면서 거래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는 있다.
다만 규제의 완화 폭과 속도는 아쉽다. 이번 규제지역 완화 조치에서 서울과 광명·과천·성남·하남 등 4개 인접 도시를 제외한 이유로 '집값 불안의 휘발성'을 들었다. 거래가 어느 정도 돌게 하려면 자금의 '낙수효과'가 필요한 게 현실인데, 이를 여전히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규제지역 해제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정부는 일단 단계적 완화를 지켜보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그럴 여유를 부릴 시기는 이미 지났다.
도심공급의 적기라고 판단한 것도 긍정적이다. 서울시가 신통기획을 통해 여의도에 이어 목통 재건축 단지들을 추진 대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도심 공급에 탄력이 붙게 됐다. 또 청약제도 손질도 시의적절하다. 전 정부에서 공급부족 우려 때문에 부랴부랴 수도권 외곽 신도시 지정과 사전청약을 남발하던 '뻥튀기' 공급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
규제 완화의 틀을 잡아가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지만 좀 더 폭을 넓히고 속도를 높여야 할 시점이다. 공급도 시장 안정화를 위해선 아파트 안전진단의 문턱과 초과이익환수제도의 추가 기준을 대폭 낮춰야 한다. 여기에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양도소득세 중과 등 세제규제도 풀어야 비로소 연착륙할 수 있는 시장 안정화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dbman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