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등 자본시장 마비 사태
금융지주사가 95조원으로 메워
정부 책임 다했는지 의구심
[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금융사 경영진은 수익을 창출하고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임무라고 생각하지만 취약계층의 어려움에도 세심한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지난 7월 취임한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당시 금융감독원의 금리 인하 압박 등 관치금융 논란에 대해 취임과 함께 언급한 얘기다. 당시 금융권에선 "초기에도 압박이 심한데 앞으로 경제가 더 안좋아지면 일률적으로 시장을 옥죄는 정책을 펴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4개월이 흐른 지난 11월 1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단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회장단에게 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을 요청했다. 채무불이행이 발생한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자금과 회사채 시장 전반의 '돈맥경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깜짝 카드였다.
금융증권부 김연순 차장 y2kid@newspim.com |
회장단이 금융시장 상황이 엄중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며 연말까지 '95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금융권 현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지난 6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은행권 금리인하 압박에 이어 대규모 유동성 공급 자금 계획이 일사분란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관치금융 얘기가 당연히 따라나오겠지만, 현재는 지원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선 금융지주 회장들의 임기 만료, 연임 이슈와 맞물리면서 사실상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오는 12월 말,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내년 3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한 대형 금융사 관계자는 "자금시장 악화가 장기화되고 변수가 발생하면 금융지주들에게 유동성 부담이 올 수도 있다"며 "금융지주 회장 연임 이슈 등을 앞두고 사실상 손목 비틀기라는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의 금융권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상외화거래 은행 횡령 사건에 대한 검사 내용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한편 최근 이복현 원장은 현재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일부 금융회사들에게 '선제적 리스크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 소재를 묻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지난 6월 금리 인하 압박 당시 금융권의 '일률적으로 시장을 옥죄는 정책'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권 초기 금융회사 길들이기 등은 통상적으로 있었지만 금융권 관치금융을 넘어 '사정금융'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는 건 금융당국이 곱씹어볼 대목이다. 지금 금융권에선 "지방자치단체에서 파급된 시장자금 경색을 왜 금융사가 다 떠안아야 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다.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