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6조원 RP 매입·적격담보증권 확대 결정
무제한 RP 매입·SPV 재가동 등은 대책에서 제외
김주현 금융위원장, SPV 설립 공개적으로 압박
[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한국은행이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6조원 규모로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고 적격담보증권 대상에 은행채와 공공기관채를 포함하기로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 재가동까지 요구하고 있어 시장의 자금경색을 풀기 위한 추가 대책이 나올 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뉴스핌] 한태희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 왼쪽)이 7월18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한국은행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회동을 가졌다. [사진=한국은행] 2022.07.18 ace@newspim.com |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27일 비통화정책방향 회의를 개최하고 단기금융시장과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채와 한전채 등 9개 공공기관 발행 채권을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및 공개시장운영 RP매매 대상증권에 3개월간 한시적으로 포함하기로 했다.
적격담보증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에 대출할 때 인정해 주는 담보물이다. 현재 적격담보증권 대상은 국채·통화안정증권·정부보증채 등 국공채로 제한됐다. 은행채의 대규모 발행이 이어질 경우 회사채, 여전채 등 여타 신용채권 수요를 위축시키는 구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은행채가 적격담보증권에 포함될 경우 보유 중인 은행채를 담보로 한은에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어 회사채 등 수요 위축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한은은 이를 국내은행이 활용할 수 있는 추가 고유동성 자산 확보 가능 규모가 최대 29조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한은은 증권사, 증권금융 등 한은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 대상기관에 대해 6조원 규모의 RP 매입을 한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RP 매입은 RP 거래 대상이 되는 적격 증권만 제시하면 매입 요청한 금액을 한은이 모두 공급하는 방식인데, 코로나 초기 무제한 RP 매입과는 다르다. 코로나 초기인 2020년 초 한은은 금융회사 33곳으로부터 RP를 무제한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한 바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RP매입은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원활한 자금 순환을 도모하기 위한 유동성 조절(RP매입시 유동성공급, 추후 통안채 등을 통한 유동성흡수) 차원의 시장안정화 조치"라며 "코로나 시기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액공급방식의 RP매입과는 규모 및 방식에 있어 차이점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한은이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적격담보증권 확대 등 대책을 내놨지만 금융당국의 요구와는 차이가 있다. 금융당국은 '50조+α' 유동성 공급대책의 핵심축인 채권시장안정화펀드(채안펀드)의 조성 한도를 20조원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회사채 발행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고 은행권도 금융당국과 논의해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와 별개로 대형 증권사는 중소형 증권사를 돕기 위한 '제2의 채안펀드' 조성도 검토 중이다.
금융당국이 공개적으로 요청한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의 재가동도 한은의 이번 대책에서 제외되면서, 자금 경색이 이어진다면 금융당국과 한은의 물밑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SPV는 저신용등급을 포함한 회사채·CP 매입기구로 정부가 위험흡수 재원을 지원하고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 산업은행이 매입기구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코로나 위기 때인 지난 2020년 SPV가 가동돼 총한도 10조원 규모로 조성된 적이 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국정 종합감사에서 "한국은행이 시장 안정을 위해 기업유동성지원기구 재가동을 포함해 모든 조치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SPV 설립을 공개적으로 압박한 바 있다. 하지만 SPV 설립은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도구로, 한은 입장에선 '최후의 보루'로 검토하는 카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감에서 "금융안정대출이나 SPV 재가동을 추후 논의할 수는 있지만 지금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