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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의 체험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했더니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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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안녕하세요."

매일 출·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지만 한 번도 인사는 해보지 않았던, 이웃에게 인사를 했다. 무려 25여년을 한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몇 층에 누가 사는지, 얼굴은 익숙하지만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이웃의 이름·나이도 모르고, 대화를 단절한 채 살았던 건 아녔다.

초등학교 입학 전 처음 이사를 했을 당시에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시면 퇴근하기 전까지 자연스레 옆집에 살던 형과 같이 비디오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음식을 많이 차려서 옆집과 반찬을 나눠먹기도 했고, 여행을 가느라 택배를 못 받을 상황이 오면 서로의 집에 보관해 주는 그런 정(情)이 있었다.

25년 정도를 살았던 집을 떠나 이사하는 날. 새벽부터 일어나느라 머리에 까치집이 졌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시간이 흘러 옆집 가족은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새로운 이웃이 몇 번 바뀌니 어느새 성인이 됐다. 나는 한곳에 머물렀지만 이웃은 계속해서 변해갔다. 물론 변한 것은 이웃만이 아녔다.

스스럼없이 이웃에 인사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보이지 않는 담벼락은 커져만 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먼저 인사를 하면 그제야 인사를 하긴 했지만 친밀감을 쌓는 내면의 벽을 허물기는 쉽지 않았다. 살갑게 인사를 해봐도 그 순간 멋쩍은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래도 인사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다. 유치원 입학 전부터 현재까지 거의 평생을 살아왔던 이곳을 떠날 때가 된 탓이었다. 사람은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또 새로운 터전에서 다시 옛날 어릴 적 이웃 간 정이 넘치던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나부터 변화해보기로 했다.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롤러코스터가 떠오르는 사다리차. 사진 찍다가 핸드폰 떨어뜨릴까봐 조마조마 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이사 준비에 사다리차 등이 대거 등장했다. 한동안 이사를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던 탓일까. 몇 층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이웃인 것은 분명하게 아는 아주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문 앞에서 "이사 가요?"라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얼굴로 얼마에 팔았냐고 좋겠다고 했다.

아마 두 번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에 평소였다면 긴 대화를 하지도 않았겠지만 이날은 먼저 안부를 물어보기도 하고 여러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주머니는 "완전 쪼꼬마 했을 때부터 봤는데 언제 이렇게 자랐다"며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고 했다.

어릴 적 모습까지 기억해 주는 모습에 "또 뵐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감사했다"고 했다. 이웃들끼리 진작에 이런 간단한 대화 정도라도 하고 살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 앞으로 매일 보게 될 새로운 이웃에게

생전 처음으로 돌려본 이사 떡. 혹시나 잡상인으로 볼까봐 인터폰에 떡을 가까이 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예전에는 당연한 문화처럼 여겨졌지만 언젠가부터 잊혔던 풍습이 생각났다. '이사 떡 돌리기'

한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떡을 받기만 했지 다른 이웃들에게 떡을 줘본 적은 없었다. 남들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도 해보기로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던 찰나에 자칫 시루떡을 들고 찾아가면 오히려 불편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아파트 이웃들 간에 좋은 소식보다 층간 소음이다 뭐다 하면서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좋지 않은 소식만 접한 탓이었다.

또 떡을 전하며 진짜 이웃이 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잡상인 취급을 받을까 봐 지레 겁부터 났다. 심호흡 크게 내쉬고 '띵동' 초인종을 누르니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반겼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에 "새로 이사 와서 떡 돌리러 왔다"고 했다.

걱정과 달리 이사 잘 왔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고 웃으며 반겨줬다. 이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어색해진 시대, 오래 남아있어도 좋은 풍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 매일 아침 만나는 카페 사장님에게

아침에 커피가 없으면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어색하지만 자주 봤던 이웃, 처음 만나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이웃들에게 인사를 해보니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일상에서 자주 만나면서도 대화를 그리해보진 않았던 이들에게도 인사를 해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모닝커피'를 책임지는 카페로 갔다. 늘 간단한 인사만 했지, 대화를 나눠본 적은 거의 없었다. 사장님에게 "여기 커피가 없으면 일을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는 환하게 웃으며 "취재 다니시느라 힘들죠? 어떤 분야 기사를 다루세요?"라며 평소엔 하지 않았던 대화들을 했다. 자주 와도 늘 스쳐 지나가기만 했었는데 인사 한마디의 힘이었다.

◆ 쩔쩔 매는 초보운전자에게

꽉 막힌 도로에서 골목에서 나오는 차량이 도로로 끼어드는 것은 초보 운전자에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양보했더니 비상등을 켜고 감사의 표시를 했다. 사진은 정차 중에 찍었다. 그 사이 비상등은 꺼졌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비가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일찍 서둘러서 나왔어도 하필 도로 공사 때문에 차가 막히는 그런 날. 조금 돌아가더라도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는 그런 길을 가도 이날만 유독 막히는 그런 뭘 해도 안되는 날이었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는데 도로는 꽉 막혀 걸어가는 게 더 빠르겠다 싶은 화나는 날. 그런 날에도 화를 누그러 뜨리는 순간은 있었다. 골목길에서 도로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고 계속 쩔쩔 매는 모습이 보였다. 차들이 절대 양보해 주지 않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 간격 없이 바짝 붙어있던 탓에 껴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차피 늦은 것 같으니 나라도 양보해 주자 싶어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아가며 간격을 뒀더니 껴들고는 비상등으로 인사를 갈음했다. 초보 운전 시절에는 이런 상황 하나하나가 나중에 다른 운전자에게 양보하는 그런 미덕으로 이어졌으면 했다. 다행히 지각도 하지 않았다.

◆ "든든한 한 끼에 마음까지 채워집니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면 술을 안마셨어도 해장되는 것 같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급격하게 추워진 날씨에 속이라도 뜨끈한 국물로 채우고 싶어져서 홀로 동네의 국밥집에 들어갔다. 사장님이 카운터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고는 툭 하고 던지듯이 물통과 물수건을 내려놨다.

밑반찬과 국밥도 마찬가지로 던지듯이 세팅했다. 공짜로 먹으러 온 것도 아닌데 내 돈 내고 왜 이런 대접을 받지 싶었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그렇지만 묘하게 기분 상하는 일이었다.

한 숟갈 뜨기 전까진 '아무리 맛집이어도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겠노라' 그런 마음이 드는 식당이었다. 얼른 먹고 나가야지 생각하면서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밥 한 숟갈 크게 떠서 말아먹으니 깊은 맛이 느껴졌다.

화난 감정은 내려놓고 잠시 냉정하게 맛만 놓고 생각해 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니 고봉밥과 더불어 온갖 반찬들이 꽤 맛있어서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다 먹고 계산하면서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속이 든든하네요"라고 했더니 무뚝뚝했던 사장님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아이고, 맛있게 드셨다니까 제가 기분이 다 좋네요"라며 문 앞까지 나와서 인사를 했다.(처음엔 왜 그렇게 무뚝뚝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 "감사합니다" 한마디의 힘

매일 마주하면서도 인사 조차 해보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 속 어르신은 매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 인근 신호등 앞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자주 접하면서도 인사 한 번도 제대로 나눠보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학교 앞 신호등에서 늘 묵묵히 교통안전을 책임지는 어르신, 문 앞에 놓고 가는 탓에 얼굴 볼 일이 없었던 택배·배달기사님, 전화로만 접하는 고객센터 안내원들이었다.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간단한 인사 한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누군가는 울먹였고, 누군가는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사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왜 그리 표현을 안 하고 지냈는지 반성하게 됐다. 말 한마디에 모두가 행복했는데.

처음 보는 이웃들에게 "안녕하세요" 한마디 했더니 누군가는 이상한 사람을 취급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인사를 받아줬다. 우리는 때론 옛날이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듯 정 많고 좋았다고 회상하는데 어쩌면 누군가 먼저 인사해 주길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10.07 kh10890@newspim.com

에필로그(epilogue). "안녕하세요."(기자)

"아 예예예..."(지나가던 사람)

그는 아는 사람인데 혹시나 자신이 못 알아본 것일까 봐 고뇌하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지나가는 사람 아무에게나 인사를 했을 때 어떤 반응일지 궁금해서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고뇌하는 그에게 "날이 좋아서 기분 좋길래 그냥 인사 한번 해봤다"며 "날씨가 좋은 것처럼 오늘 하루도 좋은 날 보내시길 바란다"고 했다.

분명 상대방이 좋으라고 인사 한 거였는데 정작 기분이 더 좋은 건 나였다는 사실. 그러니 이웃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처음만 용기 내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kh1089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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