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변협 '조건부 석방제' 도입 필요성 주장
2005년부터 논의...검찰 반대로 법안 제외되기도
대법 "구속 아니면 불구속, 일도양단식 결정 벗어나야"
법조계 "스토킹 범죄자 보석 허가하지 않는 법 개정 필요"
[서울=뉴스핌] 김신영·신정인 인턴기자 =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을 계기로 '조건부 석방제'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구속과 불구속 외에도 구속을 대체할 조건을 걸어 피의자를 석방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스토킹범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하더라도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 또한 기존 구속제도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해 한계가 있다며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제도는 2005년부터 도입이 논의됐지만 입법은 이뤄지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돈 많은 피의자들만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나섰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건부 석방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피의자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는 조건 등이 구속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면서도, 죄질이 나쁜 범죄자에 대해서는 영장 발부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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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준선 기자 =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진보당원들이 신당역 스토키엄죄 강력처벌 촉구! 영장기각 판사 징계 촉구 국민 서명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9.21 hwang@newspim.com |
◆ 조건부 석방제, 스토킹범 불구속 대안으로 부상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이후 법원이 가해자 전주환(31)씨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법부 책임론이 확산했다. 전씨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 20일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현행 인신 구속제도는 구속과 불구속이라는 일도양단식 결정만 가능한 구조로 구체적 사안마다 적절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조건부 석방제도를 통해 일정한 조건으로 구속을 대체해 무죄 추정의 원칙 및 불구속 수사의 원칙과 피해자 보호가 조화를 이루게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또한 성명을 내고 "스토킹 범죄 가해자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법원이 기각할 경우, 가해자의 활동 반경을 제한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선제적인 공권력 개입과 제한 조치를 감수하도록 하는 조건을 붙이는 조건부 석방제를 마련하는 보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05년부터 조건부 석방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당시 대법원 산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는 인신구속제도를 개편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법률안에는 구속영장 심사단계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함과 동시에 조건부로 석방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당시 검찰이 영장발부 단계에서의 조건부 석방제 도입을 반대하고 영장항고제도만 단독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해 해당 내용은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2010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와 2017년 대법원 형사사법발전위원회에서도 조건부 석방제가 재차 거론됐다. 2018년과 2019년에는 장제원, 조응천 의원 등이 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고 입법을 시도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지난해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조건부 석방제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다. 당시 구속영장 심사단계에서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제도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내놨다.
대법원은 후속 검토를 이어가고 있지만 제도를 도입하려면 입법 절차를 거쳐야할 뿐만 아니라 법무부와 검찰, 대한변호사협회 등 유관기관과의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사법행정에 대해 자문을 할 뿐, 조건부 석방제를 제도화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법무부나 검찰과도 관계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법원이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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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8일 오전 여성 역무원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지하철 신당역 2호선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글귀를 읽고 있다. 2022.09.18 pangbin@newspim.com |
◆법조계 "조건부 석방 필요 vs 영장 발부가 우선"
법조계는 법정형이 낮고 범죄 판단 기준이 모호한 스토킹 범죄의 특성을 고려해 조건부 석방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피해자 보호 장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봤다.
김학자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은 "스토킹범 석방 조건으로 피해자 접근금지, 주거지 접근금지 등 여러 조건을 내걸면 구속과 경고의 의미가 확실할 것"이라면서도 "일부 범죄자들은 조건을 어기고 보복성 접근이나 더 중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가해자 추적이나 행태분석을 통해 이상 징후를 감지해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제도를 보완하지 않으면 오히려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며 "조건부 석방제가 긍정적인 작용을 하려면 보완 장치가 반드시 따라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장 발부의 문턱을 낮춰 죄질이 나쁜 범죄자들은 경각심을 주는 차원에서 구속하고 후속 조치로 조건을 걸어 석방하는 방안이 적절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속영장 발부와 별개로 법원이 새로운 형태의 제도를 도입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영장 발부의 허들을 낮추고, 보증금 납입과 전자팔찌 착용 조건의 석방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영장을 발부하는 판사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범죄를 전문으로 다루는 이은의 변호사는 "스토킹범의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와 피해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우려가 높은 가운데 보석을 전제로 한 조건부 석방제는 무리가 있다"며 "오히려 스토킹 범죄로 구속된 경우 보석을 허가하지 않는 부분을 예외 사유로 두는 법 개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sy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