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지혜진 기자=월 6000만원.
B지사에서 가장 많이 번다는 영업자가 한 달에 받아 갔다는 금액이다. B지사는 텔레마케팅으로 뭐든지 팔 수 있다는 곳이었다. 당장 눈앞의 휴지를 팔라면, 지사 소속 영업자들을 휴지 전문가로 만들어 얼마든지 팔아 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젊은 총판은 의기양양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밑바닥부터 삶을 시작했다는 그는 30대 초반에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자부심이 넘쳐 보였다. B지사는 투자 전문회사인 양 영업 전화를 돌리며 실제론 기껏해야 몇천원에 불과한 비상장주식을 1~2만원에 팔고 있었다.
텔레마케팅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회유하고 투자금을 꾀어내는지 알아내기 위한 자리였지만, 월 6000만원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머릿속으로는 '1년이면 7억2000만원'이라는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근로소득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던 '내집마련', '서울아파트'도 먼일이 아니겠다 싶었다. 실제 몇몇 영업자들은 텔레마케팅으로 폭리를 취해 주식이나 코인을 파는 일을 자신들의 '계급 사다리'라고 표현했다.
면접을 보고 돌아와 한 동안은 혼란스러웠다. 돈 버는 게 참 쉬웠다. 돈을 버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잘 돼도 너무 잘 된다'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총판들의 얼굴이 한동안 불쑥불쑥 떠올랐다. 무슨 일을 하면서 너무나 흐뭇해서 웃음이 삐져나오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너무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더라.
가치관의 혼란은 하루 출근으로 말끔히 사라졌다. 비상장주식을 사기 위해 대출을 하러 가겠다는 피해자를 부추기는 게 그들의 일이었고, 전문가 행세를 하며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는 비상장사에 투자하라고 하는 게 그들의 업이었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 하루 파이팅입니다', '힘내시고요',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따위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누군가의 빈틈을 파고들어 판단력을 흐렸다.
언론의 책임도 가볍지 않았다. 그들의 수법에 언론 기사는 필수항목이나 다름없었다. 영업자들을 모집한다는 글엔 '기사작업 완료'라는 문구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사형 광고가 나가는 시점을 영업자들이 미리 알고 고급 정보인 양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했다. 언론의 병폐는 영업자들을 더욱 당당하게 했다. "선생님 판단을 믿으시겠어요, 우리나라 대표 언론사를 믿으시겠어요?"
"이제 '후킹' 들어갈까요?" B지사에서 일하던 20대 영업자가 상급자에게 물었다. 회원에게 자료도 보내주고 어느 정도 무엇을 파는지 설명했으니 투자금을 본격적으로 편취하겠다는 말이다. 이들의 업은 이토록 조직적이고 계획적이지만, 수사기관은 사후적으로 고의성을 입증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투자 실패와 사기를 법리로 가려내는 과정은 지난하다. 이들의 '아이템'이 주식에서 코인으로 넘어가면 가려낼 법리가 없어지기도 한다.
법과 공권력이 진화하는 지능범죄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는 절망한다. 가족의 병간호를 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상장주식을 구매했다는 한 피해자는 자꾸 나쁜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가 당한 피해 금액은 몇백만원대다. 월 6000만원 소득에 비하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100만원에도 누군가의 삶은 흔들리고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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