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전국 광주·전남

속보

더보기

[전기자의 체험기] 소나기 피하려 들어간 도서관서 재미를 느꼈다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때는 폭염특보가 내려진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그늘 밑에 숨어도 보고,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봐도 더위를 피하는 건 그 순간뿐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쏟아졌다. 예정에 없던 소나기에 택시 타기엔 아깝고 우산을 사기엔 근처에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눈앞에 보인 건 도서관이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던데 몸의 양식만 쌓아왔던 나날들을 반성하며 비가 그칠 때까지만이라도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몇 년 만의 도서관 방문에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했다. 뭐든 시작이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가볍게 만화책부터 골랐다.

우아하게 커피 마시면서 책 보는 모습을 담아달라고 했는데 초점이 안맞아 자체 모자이크 처리된 전기자 [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어릴 때부터 인문학 책은 안 읽어도 만화책은 이미 섭렵했었기에 도서관에 있는 만화책은 오래전에 봤던 책 들이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한 권, 두 권 쌓여갔다. 그 사이 비는 그치고 화창해졌다.

◆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학창 시절 다독왕 상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출상 혹은 대여 상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학교에서 다독왕 상을 수상하면 상장과 문화상품권을 줬다. 그 시절엔 상장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고 상품권을 받아 게임에 현질(온라인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을 주고 사는 것) 하는 것을 인생 최고의 낙으로 여겼다. 

지난해 서울의 모 대학에서는 다독왕 이벤트에서 1등을 차지한 학생에게 고가의 전자제품인 '애플 맥북 에어'를 준다고 하자 한 달간 무려 2694권의 전자책을 대출한 학생이 나오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학교 측은 상품을 회수하기도 했다. 내 어릴 적 모습 같아서 사실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자부하는 것은 있었다. 학창 시절 학교 도서관에 아무도 가지 않는 조용한 곳을 시끌벅적한 곳으로 변화시켰다는 거다.

보통 이런 곳에서 사랑이 싹트고 그러던데..도서관에 혼자인 전기자 [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다독왕 상을 받으면 문화상품권을 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야! 책 빌리기만 해도 문화상품권 준대" 나의 이 한마디에 아무도 오지 않던 도서관을 어느새 쉬는 시간이면 만남의 광장처럼 모두가 모이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처음에는 다들 책을 하루 최대치까지 대여하고 다음날 반납하고 다시 또 빌리기를 반복했지만 어느새 그래도 빌렸으니 책을 조금 봐볼까 하는 문화로 변해갔다. 이런 문화를 만든 장본인이었기에 선생님들도 나만 보면 "요즘 무슨 책이 재밌냐"고 묻고 그랬다. 그럴 때마다 중2병처럼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평행우주'에 대한 책을 소개하곤 했다.(이불킥)

◆ 국민 절반은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다

문득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책을 안 읽고 있었던 건지. 문화체육관광부가 '2021년 국민 독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47.5%였다. 성인의 절반이 넘는 인원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그랬듯 다른 사람들도 독서를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책을 읽은 성인은 종이책과 전자책·소리책(오디오북)을 합해도 연간 4.5권이다. 이는 2019년 조사 때보다 3권 줄었다.

유느님의 옛된 시절 방영된 mbc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 이 당시에만 해도 농담으로라도 책 읽자는 말들이 유행어처럼 번졌었다.[사진=mbc 캡쳐] 2022.07.08 kh10890@newspim.com

모두가 책을 많이 읽자던 시절도 있었다. mbc에서 방영된 느낌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프로그램이 진행됐던 2001년 11월 10일~2004년 5월 1일 이 시기에도 독서량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약 4년간 유지됐던 만큼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모두가 독서를 하자는 분위기는 형성됐었다.

그런 분위기도 잠시 독서를 안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도서정가제' 때문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 도서정가제가 뭐길래?

도서정가제는 출판사가 판매를 목적으로 도서를 발행하는 경우 도서에 정가를 표시하고, 판매자는 최종소비자에게 표시된 정가대로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로 도입됐다. 

도서정가제는 2003년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에는 발행 18개월이 지난 책은 정가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었고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다.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서는 정기적으로 구간 도서의 반값 할인 행사를 진행하곤 했다. 온라인에서 책을 많이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우 유리했다. 

무조건적으로 도서정가제 때문에 독서를 안하는 거라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도서정가제 시행과 더불어 영상 매체 등의 발달로 어느새 독서 문화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에 도서관이 썰렁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하지만 과도한 가격 할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싼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가격 중심의 왜곡 현상이 발생하자 도서문화가 가격경쟁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14년 도서 할인율을 15% 이내로 제한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소비자 권익 증진과 착한 가격 정착에 목적이 있다고 밝혔지만 시장경제에 국가가 개입해 결국 책값만 올라 가계 부담이 늘고,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라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 같은 지적이 꾸준히 이어지자 출판사들도 꾸준히 논란이 되는 도서정가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원근 책과 사회 연구소 소장은 더 나아가 서점의 활성화를 위해 '국민 독서 수당' 도입을 제안했다. 백 소장은 "1년에 최소 2만 원 정도의 도서구입비를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 한 권의 책이라도 스스로 골라 읽는 경험을 선물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악순환은 꾸준히 이어졌다. 부담 없이 책을 사서 보다가 어느 순간 비싼 값으로 오른 책을 더 이상 구매하지도 읽지도 않게 되는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영상매체까지 발달하면서 책에서 TV로 눈을 돌렸고, TV에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갔다. 더 이상 유튜브, SNS, 넷플릭스 등에서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다시 책에서 재미를 느끼는 시대로 되돌릴 수 없게 됐다.

◆ 왜 독서인가

기자가 되고선 더더욱 독서를 안 하게 됐다. '짜장면 집 아들이 짜장면 좋아하는 거 봤냐'는 말처럼 직업 특성상 매일 글을 보고, 쓰고 하기에 쉴 때라도 글 대신 영상을 즐겨보게 됐고 컴퓨터 화면보단 바깥세상을 더 보려고 애썼다.

그런 마음은 잠시 접어두고 독서를 꾸준히 해보자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다.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들렸던 도서관에서 꽤나 재밌는 책들을 봤지만 사실 꾸준히 들려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는 아녔다. 다만 비 오는 장마철, 가만히 있어도 푹푹 찌는 날씨에도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다.

카페에서 편히 있고 싶을 땐 힐링하고 싶어서 여행 관련 서적, 그림 많은 책들을 위주로 골라서 읽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산책을 좋아하지만 지금처럼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에 에어컨 밑에 있어도 땀줄기가 흐르는 지금, 좋아한다고 마냥 할 수는 없는 날씨라 대책이 필요했다.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결국 내린 결론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것은 독서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 더운 날 도서관에서 빵빵한 에어컨 밑에 있으면서 몇 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있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돈도 들지 않는다. 카페처럼 오래 앉아있다가 한잔 더 시켜야 할지 그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오히려 오래 앉아 있을수록 더 멋있어 보이는 효과까지 있는 게 독서였다.

◆ 도서관은 어디에나 있었다

광주 서구 운천역 역사 안에 스마트 도서관이 있다. 회원증만 발급 받으면 24시간 언제든지 이용 가능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독서를 해보려고 하니 또 하나의 변명거리가 생겼다. 퇴근 후에 도서관 가려고 하니까 문을 닫는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 돈 주고 서점에서 책을 사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 지금도 집에 책을 사두고 안 읽은 책이 수두룩하니까.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니 책을 읽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동네 곳곳에서 도서관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스마트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정해진 시간 내에, 마음먹고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스마트 도서관은 시청 같은 관공서나 지하철, 유동인구가 많은 길 한가운데에도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무인 도서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날짜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이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첫 이용자는 도서관에 방문해 카드를 발급받아야 이용이 가능하다.

광주 서구 치평동 상무역 인근에 있는 스마트 도서관 내부. 책 안빌리고 안에만 있어도 에어컨 덕분에 더위 피하기에도 좋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시간 할애가 힘든 사람들에게는 일부 지자체에서만 시행하는 사업이긴 하나 책을 배달해 주기도 한다. 도서관을 갈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건 핑계라는 이야기다.

◆ 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이제 독서를 미룰 핑계는 사라졌다. 접근하기 쉬운 책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도서관을 둘러보다 보니 '직딩들의 해외여행 베스트 54'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대학생 때부터 여름에 해외여행을 종종 가곤 했는데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을 갈 엄두가 안 났다.

코시국 해외여행이 이제는 조금 가능해질까 싶으면 원숭이 두창이다 뭐다 바이러스가 끊이질 않은 탓에 이 책이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읽다 보니 위로는커녕 더 놀러 가고 싶은 마음만 절실해졌다. 그래도 책 덕분에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어디를 가는 게 내 취향에 잘 맞을지는 알게 됐다.

에필로그(epilogue).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늘 하신 말씀이 있다. "딱 30페이지만 읽고 버려라" 정말 30페이지만 읽으란 말도 아니고 책을 버리란 말도 아녔다. 그만큼 책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부담을 갖지 말고 편하게 일단 읽어라도 보라는 의미였다.[사진=전경훈 기자] 2022.07.08 kh10890@newspim.com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다 보니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가장 가슴 설레던 기억이 있다. "이번 학기 다독왕은 '전경훈'"이라고 호명되는 순간이었다. 상장을 받아서 좋은 게 아녔다. 그저 내 손에 쥐어지는 문화상품권 5000원권 2장을 받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 좋았다.

하지만 책 대출만 해도 상품권을 준다는 비법(?)을 전수하고 다녔던 게 화근이었다. 10~20권만 빌려도 다독왕 상을 무난히 받다가 느닷없이 한 달에 50권을 빌려야 겨우 순위권 경쟁이 가능해졌다. 그 경쟁에서도 당당히 1위를 기록한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들에게 '대출 왕'으로 불렸다. 뭐든 좋다. 어쨌든 왕이니까.

kh10890@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앤스로픽·오픈AI 'AI 감속론'의 속내는? [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앤스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지난주 12일 내놓은 인공지능(AI) 개발 감속론에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와 xAI 모회사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CEO가 잇달아 동조했다. 경쟁 관계인 3사 수장이 최상위 모델의 성능 개선 속도를 늦추자는 데 공개적으로 뜻을 같이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업계의 시선은 감속 선언에 붙은 조건에 쏠린다. 아모데이 CEO의 제안이 자발적 제동에 머물지 않고 정부 규제 요구와 한 묶음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다. 업계에서는 규제를 동반한 감속은 개방형 모델과 후발 주자의 진입로를 좁히기 위함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달 오픈AI·앤스로픽의 개방형 제한 로비가 '사다리 걷어차기' 논란을 부른 데 이어 같은 구도가 감속론을 매개로 되풀이된 양상이다. 3사만 속도를 늦추면 개방형이 격차를 좁히는 결과만 남는 만큼 개방형까지 같은 규제에 묶어야 감속이 성립한다는 셈법이 규제 요구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3단계안과 부속 조치 아모데이 CEO의 에세이 '우리는 프론티어(최상위 성능 모델)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3단계 구조로 짜여있다. 1단계는 앤스로픽이 단독 이행을 약속한 조치로 제3자 평가 기관에 내부 위험평가팀에 준하는 상시 접근권과 평가 결과 공개권을 준다. 같은 의무를 다른 개발사에도 지우도록 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이 함께 붙어 있다. 2단계는 미국 최상위 모델 개발사 전체에 대한 정부 규제를 기본으로 삼되 입법 지연에 대비해 개발사 간 자발적 기준 마련을 병행하는 내용이고 3단계는 국제 공조다. 앤스로픽이 스스로 지는 부담은 평가자 수용에 그친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스로픽 CEO의 개인 웹사이트에 게시된 에세이 'We Must Pace the Frontier' 갈무리 [사진=아모데이 CEO 개인 웹사이트] 2단계에 함께 담긴 부속 조치들이 개방형 진영을 자극했다. 아모데이 CEO는 중국과의 격차 이상으로 감속하면 안보 위험이 생긴다며 반도체 수출통제 강화와 무단 증류(한 모델의 출력으로 다른 모델을 훈련하는 기법) 단속, 가중치(모델이 학습한 결과를 담은 핵심 수치) 도난 방지를 요구했다. 표적은 중국이지만 다른 모델의 출력을 훈련에 활용하는 증류가 널리 쓰이는 개방형 생태계에서는 무단 증류의 규제 범위를 넓게 잡을 경우 통상적인 모델 개발 기법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 개방형 진영의 우려다. ◆개방형 추격과 감속 딜레마 감속 주장의 '저의'를 따지기에 앞서 살펴야 할 것은 규제를 동반한 감속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개방형의 추격 속도가 아모데이 CEO에게 규제 없는 감속을 허용하지 않는다. AI 모델 이용 중개 플랫폼 오픈라우터에 따르면 미국 이용자가 요청한 토큰 처리량 가운데 개방형 비중은 작년 9월 26%에서 지난달 60%로 높아졌다. 유럽연합 이용자의 개방형 비중도 같은 기간 16%에서 65%로 상승했다. 가성비로 시장을 파고드는 개방형 모델 앞에서 3사만의 감속은 점유율 양보와 다르지 않다. 앤스로픽의 공동창립자인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 [사진=블룸버그통신] 폐쇄형 3사만 속도를 줄이면 개방형과의 성능 격차가 좁혀지는 시간만 짧아진다. 기술 우위로 높은 기업가치를 떠받치는 회사가 스스로 감속을 선언하는 것은 자기 약화에 가깝다. 에세이에는 자기 약화를 피하는 장치가 들어 있다. 아모데이 CEO는 훈련 중단이 아니라 안전 검증 시간 확보가 목적이라고 했다. 감속 대상은 외부 공개 모델의 역량 향상 속도이고 내부 연구는 제약에서 비켜난다. 폐쇄형은 공개 시점만 조절하면 되지만 공개 자체가 사업 방식인 개방형은 공개를 늦추면 남는 것이 없다. 규제를 동반한 감속이 개방형에 지우는 부담은 준수 조건에서 한층 커진다. 아모데이 CEO가 제시한 제3자 평가자 상주 방식은 모델을 자사 서버에 두고 API로 제공하는 구조에서만 작동한다. 누가 쓰는지 확인하고 위험한 사용을 감시하며 접근을 차단하고 문제 모델을 서비스에서 내리는 일은 서버를 통제하는 개발사만 할 수 있다. 가중치를 공개한 개발사는 수정·재배포된 복사본을 회수할 방법이 없다. 해당 조건이 강제되면 개방형은 결국 존재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진입장벽 논란과 '규제 포획' 공방 앤스로픽이 6월 내놓은 규제 프레임워크의 적용 기준도 논란이다. 훈련 연산량이 10의 25제곱 플롭을 초과하고 연간 AI 매출 5억달러 또는 연구개발비 10억달러가 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삼는다. 소규모 개발사는 면제되는 구조지만 문제는 기준선을 넘는 순간부터다. 문턱을 넘자마자 비용과 기간을 가늠하기 어려운 승인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면 투자자와 창업자로서는 문턱 아래 머무는 편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소규모로 남는 것은 허용하되 대형사로 성장하는 길은 막는 면제 조치가 된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사진=블룸버그통신] 백악관에서 감속론을 공개 비판한 인사는 데이비드 색스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 공동의장이다. 색스 공동의장은 감속 선언 다음 날인 13일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다리오가 프론티어 속도를 조절하자고 썼고 샘이 동의했다. 그렇게 해라. 당신들이 프론티어다"고 했다. 두 회사가 점유율·매출·성능 어느 기준으로 봐도 최상위 모델 시장을 사실상 둘이 나눠 갖고 있으니 남을 규제할 것 없이 스스로 늦추면 된다는 논리다. 감속의 대가로 원하는 규제 틀을 얻으려는 시도는 규제 포획(규제가 기존 강자의 이익 보호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에 해당한다고 했다. 색스 공동의장의 규제 포획 비판은 지난달 아모데이 CEO와의 엑스 공방에서 이미 구체화된 바 있다. 당시 그는 앤스로픽이 요구하는 사전 심사 체제를 'AI를 위한 차량국(DMV)'에 빗댔다. 모델을 내놓을 때마다 정부 시험과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면 대응 인력과 자금을 갖춘 대형사만 대기열을 견디고 후발 주자는 출시 자체가 늦어진다는 논리다. 안전을 명분으로 한 심사 요건이 기존 강자에게 유리한 경쟁 규칙으로 굳어진다는 지적이 감속론에서도 되풀이된 셈이다. ◆반독점 면제 요청 문턱 규제 포획 논란과 별개로 규제를 동반한 감속은 현행법의 문턱부터 넘어야 한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오픈AI는 최근 수주간 의회 의원들에게 업계 차원의 감속 조율이 합법인지 지침을 요청했다. 경쟁사 간 개발 속도 합의는 일종의 생산량 제한에 해당해 반독점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해석이다. 7월 초당파 의원들이 안전·보안 협력에 반독점 예외를 두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하원 법사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아모데이 CEO의 반독점 면제 요청은 현행법 아래 조율이 자동으로 합법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사진=블룸버그통신] 법적 문턱을 넘더라도 실행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포브스는 에세이가 제3자 평가자 도입 시한을 명시하지 않은 점을 짚었다. 아모데이 CEO가 요청한 반독점 면제도 정부가 받아들일 의무가 없어 거부되면 2단계는 시작조차 어렵다. 반독점법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두 회사의 협력 회피를 가리기 위한 구실이라는 시각도 있다. 면제가 나올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알고 요청한 것이라면 감속은 처음부터 이행 의사 없이 내건 조건부 약속에 가깝다. 공동 제안서조차 만들지 않은 채 규제 요청부터 앞세운 순서가 의심의 근거로 언급된다. ◆백악관 입장과 개방형 반응 앤스로픽의 규제 요청은 지난달 백악관이 한 번 거절한 내용과 같다. 백악관이 지난달 확정한 자발적 AI 심사 틀은 대상을 폐쇄형 최상위 모델로 한정했다. 개방·폐쇄를 가리지 않는 시험을 요구했던 앤스로픽으로서는 폐쇄형 최상위 모델만 심사받고 개방형은 빠지는 결과가 됐다. 에세이에서 거론된 2단계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모든 최상위 모델 개발사에 같은 기준을 강제하라는 내용이다. 폐쇄형에 그친 심사 대상을 개방형까지 넓혀 달라는 요구를 감속론의 이름으로 다시 낸 셈이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 공동의장 [사진=블룸버그통신] 개방형 진영의 대응은 규제 확대 요구를 맞받아치는 형태로 나왔다. 오픈소스 개발자 제이크 골드는 공개서한에서 "진심이라면 가중치를 공개하라"고 했다. 개방형을 심사 대상에 넣자는 요구에 폐쇄형도 가중치를 공개해 외부 검증을 받으라고 맞선 것이다. 개방형 모델 공유 플랫폼 허깅페이스의 클렘 들랑그 CEO도 감속 자체에는 동의했지만 규제 대상 확대에 대한 찬반은 명시하지 않았다. 감속의 필요성은 인정하더라도 감속의 조건을 폐쇄형 진영이 정하는 구도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개방형 진영의 입장으로 읽힌다. ◆IPO 시기와 겹친 감속론 감속론의 저의를 둘러싼 근본적 물음은 왜 지금이냐에 있다. 최상위 모델 개발사들은 이전 세대 훈련 비용을 회수하기 전에 다음 세대에 더 큰 자본을 투입하기를 거듭해 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오픈AI의 GPT-6 아스트라는 내부 다량 사용 직원 기준 하루 7000달러어치 토큰이 소모된다고 한다. 기술 투자자 마틴 바르사브스키는 엑스에서 "[3사가 다른 건 몰라도] 서로 벌이는 경주가 모두를 파산시킬 수 있다는 데는 동의할 것"이라고 썼다. 감속 합의의 실제 동기가 안전이 아니라 비용에 있다는 지적이다. 감속 선언과 상장 절차 연기가 비슷한 시점에 나온 점은 의심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다. 앤스로픽은 지난주 예정됐던 증권신고서(S-1) 공개를 이달 늦은 시점으로 미뤘고 올트먼 CEO는 12일 연내 상장 배제 의사를 밝혔다. AI 연구자 엘리 데이비드는 엑스에서 "S-1이 손실 규모를 드러낼 것이므로 훈련 비용을 줄여 수익성 경로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상장을 앞둔 회사로서는 손실을 줄일 방법을 투자자에게 보여야 하는데 훈련 비용 절감이 가장 확실한 수단이고 안전을 이유로 감속하면 비용 절감이라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bernard0202@newspim.com 2026-09-14 15:52
사진
대미 투자 시작되면 한·미 관계 좋아질까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한·미 간 최대 갈등 요소인 한국의 대미 투자 첫 사업이 조만간 발표될 전망이다.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진 한·미 관계가 대미 투자 발표로 진전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미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1호 사업은 텍사스주 엔시날 LNG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이 유력하다. 미국이 당초 198억 달러였던 사업비를 250억 달러로 증액할 것을 요구해 이 부분에 대한 막판 협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종도=뉴스핌] 김예원 기자 = 미국을 방문했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20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08.20 yeawon2@newspim.com ◆대미 투자, 한·미 갈등의 시발점 대미 투자 지연은 한·미 관계의 발목을 잡은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다. 미국은 올해 초부터 대미 투자를 독촉했지만 한국은 '상업적 합리성'을 내세워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국의 대미 투자 지연은 일본의 발빠른 투자 이행과 비교되면서 미국의 강한 불만을 초래했다. 미국과 5500억 달러 투자 합의를 한 일본은 올해 2월에 360억 달러 규모의 1차 프로젝트와 3월 730억 달러 규모의 2차 프로젝트를 확정한 데 이어 현재 3차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다. 더욱이 11월 중간선거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경제적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투자 유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어서 투자를 지연시키고 있는 한국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매우 크다. 미국은 한국이 투자를 회피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미 정상합의의 일부분인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 및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를 위한 협상이 중단됐고 쿠팡 문제,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따른 미국 기업 차별 주장이 이어졌다. 최근 미국이 한국에 추가 투자와 함께 호르무즈 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대미 투자 지연에 따른 압박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한·미 연합군사훈련 축소를 지시하고 북한과 조건없는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도 한국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강하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미 정상이 합의한 관세 협상은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와 관세 인하만을 교환한 것이 아니라, 한·미 동맹의 안정성과 안전 보장 등이 포함된 패키지 형식의 합의여서 대미 투자가 안되면 외교 안보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는 구조"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블룸버그통신] ◆시간에 쫓기는 한국 한·미 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대미 투자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하면 한·미는 산적한 현안에 대한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8일로 예상되는 대미 투자 발표 전후로 곧장 미국을 방문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만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조 장관은 대미 투자가 시작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중단됐던 핵잠수함, 농축·재처리 협상 재개를 비롯해 전시작전권 전환, 호르무즈 파병에 대한 정부의 입장 등을 미국 측에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장관이 대미 투자 발표와 동시에 미국을 방문하려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한 소식통은 "한·미 관계를 조속히 정상으로 되돌려 놓지 않으면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의 불편한 한·미 관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 이후 북한과의 대화를 본격 추진한다면 한국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가장 큰 우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대화에서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합의를 하는 이른바 '한국 패싱'이다. 북·미 대화에서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한·미 간 치밀한 사전 조율이 필수적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한·미 관계가 이어진다면 한국이 북·미 대화에 개입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말대로 '연내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한국으로서는 시간이 별로 없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5.10.29 ◆한·미 관계 완전 회복엔 역부족 대미 투자가 시작되면 한·미 관계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나아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투자를 환영하고 중요한 성과로 포장하는 정치적 레토릭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다. 중단됐던 핵잠수함, 농축·재처리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일정 논의도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갈등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너무 늦은데다 규모도 미국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탓이다. 미국은 대외적으로 한국의 투자를 환영면서도 내심으로는 불만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로 한국에 대한 압박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대미 투자가 신속히 진행됐더라면 한·미 관계 냉각이나 미국의 각종 압박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미 투자 시작으로 한국을 향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의 강도가 다소 누그러질 수는 있겠지만 호르무즈 파병이나 추가 투자 요구를 거둬들일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트럼프 시대'가 이어지는 동안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경제와 안보를 한데 묶어 상대국을 압박하는 협상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여전히 경제·산업 부처와 안보 관련 부처가 따로따로 영역을 나눠 미국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에 유기적인 전략 조율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대미 관계에서 관세와 투자, 첨단 기술, 공급망, 안보를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통합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opento@newspim.com 2026-09-16 06:10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