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6월초 5·18 증언 녹음 테이프 배포
2016년 사망, 42년만에 무죄판결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그 실상을 알리는 자료를 배포하다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고문 수사를 받고 실형을 산 여성이 사망한 뒤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형사4단독(이광영 판사)은 1980년 계엄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고(故) 정모(1939~2016) 씨의 재심에서 지난 13일 무죄를 선고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지 42년만이다.
1980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문제상담소 상담원이었던 정씨는 그 해 6월 초 광주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묘사한 전언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 수십개를 몇 차례에 걸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에게 전달했다. 이 일로 그 해 7월 계엄사령부에 연행돼 서빙고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에서 고문 조사를 받고 8월 수도경비사령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포고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는 그 시기와 동기, 목적 및 대상, 사용수단, 결과 등에 비춰 볼 때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파괴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서,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라며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심은 지난해 6월 검사 측 청구로 개시됐다.
[서울=뉴스핌] 윤준보 기자 =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지방법원 전경 2022.04.20 yoonjb@newspim.com |
당시 정씨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한 카세트테이프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목격한 광주의 한 가톨릭 신자가 쓴 기록을 낭독해 녹음한 것이었다. 정씨가 전달한 카세트테이프들은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퍼져 나갔고, 원문을 인쇄·복사한 유인물과 함께 1980년 6월 초 천주교계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세간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부는 일본으로 반출돼 국제사회에 공개됐다. 카세트테이프 3벌과 자필로 된 원문 문서 등이 일본 가톨릭 정의평화협의회로 넘어가 같은해 6월 초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AFP,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등 언론매체가 이를 보도했다.
정씨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 6명과 함께 연행됐다. 당시 계엄당국의 발표로 언론에 이들의 연행·조사 사실과 혐의가 보도됐다.
정씨는 서대문형무소(당시 서울구치소)에서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고 고문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출소 후 십수 년 뒤인 1994년 56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22년간 투병하다 2016년 78세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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