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4대 이어 38·39대까지 당선
네 번째 임기 시작...대선 발돋움할까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최초 4선 시장'이 탄생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6·1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제33·34·38대 서울시장을 지낸 오 후보는 오는 7월 1일부터 4번째로 39대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한다.
오 후보는 1961년 서울 성수동에서 1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979년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부에 입학, 2학년 때 고려대 법대에 편입해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일조권 침해에 관한 피해보상 소송에서 승소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33살의 나이에 대기업을 상대로 한 일조권 소송에서 승소를 거두며 '환경 전문 변호사' 타이틀을 얻게 된 그는 이후 1994년 MBC 생활법률 프로그램인 '오 변호사, 배 변호사'를 진행하며 유명세를 탔다.
[서울=뉴스핌] 국회사진취재단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 발표 방송을 시청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2.06.01 photo@newspim.com |
지난 2000년 당시 한나라당은 제16대 총선에 오 후보를 새 인물로 영입했다. 16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그는 서울 강남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왔다. 2003년 한나라당이 정권 탈환에 실패하자 그는 "진심으로 정권을 재탈환하려면 5·6공 출신 의원들이 2004년 총선에서 물갈이 돼야 한다"며 이른바 '5공 용퇴론'을 주장했다. 그야말로 패기 있는 초선의원이었던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휩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 헌금 비리, 이른바 '차떼기당' 논란이 불거거졌고, 당내 개혁에 불만을 표하며 제17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오 후보는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에서 정치 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실행하려 한다"며 "나아가 정치권 전반에 '내 탓이오' 정서가 만들어지는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어록을 남겼다.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물러난 그가 다시 정치권의 부름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년여의 공백을 깨고 2006년 서울시장 후보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선거에 뛰어든 그는 61.1%의 지지를 받으며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45살의 나이에 인구 1000만 도시의 수장이 된 오 당선인은 ▲세빛섬 ▲다산콜센터 설립 ▲수도권 통합 대중교통 환승제 실시 ▲세계 도시 경쟁력 9위 달성 등 업적을 남겼다. 이후 그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꺾고 최초 재선 서울시장에 오른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국민의힘 관계자가 1일 서울 국회도서관에 차려진 제1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당선자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2022.06.01 kilroy023@newspim.com |
2011년 잘 나가던 정치 여정에 위기가 찾아온다.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지만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가 주민투표가 무산되면서 1년 만에 중도에 사퇴했다.
서울시장 사퇴 이후로도 고배를 마신다.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고, 2019년에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했지만 황교안 전 대표에 패하며 실패했다.
21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사표를 냈지만 청와대 대변인 타이틀로 당시 '文心'(문재인 대통령) 프리미엄을 안고 출마했던 고민정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시련이 길었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 경선에서도 승리해 당시 야권 최종 후보가 됐고, 본선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마저 꺾으며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10년 간 서울을 적진에 내준 패장'에서 '보수의 구심'으로 떠올랐고, 1년만에 다시 나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선거 초반부터 홀로 질주하며 안정적으로 4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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