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인력 쟁탈전'이 한창이다. 인재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지자 언제나 '을'이었던 직원들은 '슈퍼 을(乙)'의 위치에 올랐다. 더 나은 처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뚜렷해졌고 이들이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경쟁사 보다 왜 연봉이 적냐"는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그룹 총수와 CEO들이 직접 나서는 모습도 이제는 낯선 장면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4월까지 임금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산업계는 과도한 임금인상 경쟁이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약화를 불러와 '반도체 초강국' 달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교섭단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노조 공동교섭단 조정 결과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22.02.16 pangbin@newspim.com |
반도체 인력난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앞 다퉈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새 공장을 가동할 인력이 필요해 지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인텔, TSMC 등은 경쟁적으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70억 달러(20조원)를 들여 미국 텍사스에 새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고 인텔과 TSMC도 각각 200억 달러, 120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인재 채용 스타트업 에이트폴드닷에이아이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미국에 들어설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기 위해선 7만~9만명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우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오는 2031년까지 총 3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 전망했다.
가열되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도 인력난을 가중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총성없는 전쟁터'라 불릴 정도로 각 국가들은 반도체를 전략물자로 삼고 첨단 공정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국 기업의 기술로 첨단공정을 확보하기 위해 인재 영입전은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실력을 갖춘 경력직 엔지니어를 얼마나 확보했는지 곧 경쟁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숙련된 엔지니어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꼭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이종산업간 융합이 활발해지며 정보기술(IT), 정보통신기술(ICT), 빅테크, 벤처·스타트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엔지니어들 역시 매력적인 연봉과 복지, 워라벨 등을 따져 과감하게 이직을 선택하는 추세가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파격적인 연봉을 제시하며 인재들을 묶어두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통큰' 성과급을 지급, 지난해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연봉이 억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을 만한 숙련된 엔지니어의 경우 "부르는게 값"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반도체 기술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으로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경우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가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재를 유치하지 못하면 곧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기업들은 당장 직원들의 요구에 따라 임금인상을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경쟁적인 연봉 인상은 지속되기가 어렵다. 장기간 출혈 경쟁으로 이어져 결국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앞서 인재 쟁탈전을 벌였던 IT·게임업계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인재영입을 위해 과도하게 인건비를 지출한 IT·게임업계는 시장이 침체기에 빠지자 과도한 임금인상이 기업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해 엔씨소프트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55%)이 났고 넷마블도 절반 가까이(-43%) 영업이익 하락했다. 넥슨과 크래프톤도 각각 18%, 17% 영업이익이 줄었다. 모두 '과도한 임금인상의 부작용'이라는 분석이다.
반도체업계도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임금 협상을 벌여야 할 시점이다. 사측은 노조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노조에선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도 인재양성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관련 규제를 해소해 주는 등 적극적인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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