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재 이임식 진행…40년 한은 생활 마침표
"중앙은행 존립기반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
이창용 "빼어난 인품·뛰어난 식견, 훌륭한 분"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31일 퇴임한다. 이 총재는 현재 경제에 대해 "성장을 지키면서도 금융안정과 함께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후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치러진 이임식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중앙은행의 유일한 존립기반은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라는 점을 되새기며 첫 업무를 시작했다"며 "국민의 신뢰는 일관성 있고 예측가능한 정책 운용을 통해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에 대해 그는 "패를 보여주고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협조게임이다"며 "정책의 출발은 항상 시장과의 소통이었으며, 정책결정의 적기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시장참가자와의 인식의 간극을 줄여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소회를 남겼다.
이 총재 재임기간 세월호 사고, 메르스 사태, 브렉시트, 미·중 무역갈등과 세계화의 후퇴, 코로나19를 비롯해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실제 지난 8년간의 제 임기 중 대부분은 기존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많이 다른, 매우 익숙치 않은 새로운 거시경제 환경에서 통화정책을 운용하지 않았나 싶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장기간 이어졌음에도 세계경제가 저성장·저물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은 경제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하기에 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더 복잡해지고 난해한 고차방정식이 돼 버렸다"며 "가계부채 누증 등 금융불균형이 심화되고 금융위기 이후 사라져 버린 줄로 알았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나타나면서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한 바람직한 정책체계가 무엇인지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성장을 지키면서도 금융안정과 함께 물가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송별 간담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8년 동안 한은을 이끈 이 총재는 이달 말 임기를 마친다. [사진=한국은행] 2022.03.23 photo@newspim.com |
디지털 가속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지금 우리 사회는 디지털화의 가속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고 있는데 어떤 모양으로 나타날지 아직 알 수 없는 뉴노멀에의 적응은 중앙은행도 피할 수 없는 도전 과제"라고 말했다.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고민도 드러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은행의 법적 책무에 금융안정이 추가된 이래, 최근에는 고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통화정책 운용에 이를 어떻게 반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며 "또 준재정적 활동에 중앙은행의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일부에서는 중앙은행이 양극화와 불평등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변화 리스크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응은 이미 정책수단의 개발과 이행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여러 가지 사회문제 해결에 경제적 처방을 동원하고자 하면 할수록 중앙은행에 대한 기대와 의존은 계속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구조나 제반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게 되면 중앙은행 역할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면서 "중앙은행으로서의 본연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앞으로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해 나갈 것인지 깊이 있는 연구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내부경영과 조직운영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이 총재는 "기존의 인사 제도와 업무수행 방식에서 비효율적인 요소를 제거해 생산성을 높이는 일과 직원 개개인의 전문성을 제고하여 중앙은행으로서의 정책역량을 강화하는 일에 역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과도 분명 적지 않았지만 직원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는 미흡했던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어느 조직이든 문화와 제도를 바꿔나가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직원들이 약 2년간의 노력 끝에 조직·인사 혁신방안의 밑그림을 그렸는데, 앞으로 어떻게 실행해 나갈 것인가는 이제 새 총재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차기 총재로 임명된 이창용 후보자에 대해서는 "빼어난 인품과 뛰어난 식견을 갖춘 훌륭하기 이를 데 없는 분"이라며 "새 총재님의 풍부한 경륜이 여러분들의 열정과 결합돼 한국은행이 더욱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총재는 "이제 저는 한없는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세인의 이목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