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文 정권 바뀐 뒤 한은 총재 연임 첫 사례
지난해 선제적 금리인상…미 외신 호평 이어져
노조 65% '미흡'…내부 경영엔 아쉬운 목소리도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이달 말 한은을 떠난다. 이 총재는 43년을 근무한 최장수 한은맨이자, 박근혜 정권에서 문재인 정권으로 연임에 성공한 첫 사례기도 하다. 그는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을 바탕으로 '외유내강' 통화정책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총재는 오는 31일 임기 만료로 한은을 떠난다. 1952년 강원도 정선 출신으로 1970년 원주 대성고, 1977년 연세대 경영학 학사를 졸업한 뒤 198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1977년 한은에 입행한 뒤에는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통화정책 담당 부총재보, 부총재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박근혜 대통령 때인 2014년 총재에 임명됐으며 2018년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연임이 결정됐다.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로는 첫 기록이며, 정권이 바뀐 뒤 한은 총재가 연임된 것도 처음이다.
그는 부총재 퇴직 이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로 활동한 2년을 제외하고는 43년을 줄곧 한은에서 근무해, '최장수 근무 기록' 타이틀도 갖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7~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영상으로 참석하였다. 이번 회의는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을 감안해 대면·영상회의를 병행하여 진행되었으며, 세계경제와 보건, 국제금융체계 및 취약국 지원, 금융부문의 복원력 제고 및 디지털 금융포용 등 금융이슈, 지속가능금융, 국제조세체계 개혁 등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사진=한국은행) |
이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는 8년 동안 기준금리를 9차례 인하하고, 5차례 인상했다. 이 총재 임기 중 기준금리는 최고 2.50%, 최저 0.50%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지난 8년간 금통위의 기준금리 조정 시점을 살펴보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였다. 그는 특유의 '외유내강' 통화정책 스타일로 어려울 때 기준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경기 회복세가 확인되면 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고 단행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제로(0) 수준까지 낮췄던 금리를 지난해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올리면서 외신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블룸버그 출신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지난해 11월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 연준이 말만 하고 있을 때 한은은 행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한은의 중립성과 통화정책의 자율성도 강화했다. 그는 평소 차분하고 말을 아끼는 성격이지만 청와대나 정부의 기준금리 관련 발언에는 가차없이 비판했다. 시장 참가자들이 권력의 눈치를 더 살피는 순간 통화정책은 신뢰를 잃고 기능을 상실한다는 판단에서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을 놓고 금융위원회와 대립할 때도 개정안이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인 지급결제 기능을 침해한다며 단호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다만 내부 경영에서는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한은 노동조합의 65.7%가 이 총재의 경영에 대해 박한 점수를 줬다. 33.3%가 '매우 미흡', 32.4%는 '미흡'이라고 응답했다. 후임 총재에 대해서는 57.9%가 '외부출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26.4%는 '한은 출신을 원한다'고 답했다. 저조한 임금인상률 등 복지에 대한 불만 표출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현 정부와 차기 정부 간 의견 차로 인해 후임 총재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떠나는 이 총재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 총재 임기 만료 이후인 다음달 1일부터는 사상 초유의 한은 총재 공백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도 함께 맡는데, 다음달 14일 금통위 회의까지도 신임 총재가 취임하지 이승헌 현 부총재 대행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한은 후임 총재로는 이창용 IMF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을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