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략으로 악용된 성별 갈라치기..."당분간 이어질 것"
전문가 "특정 사안에 쏠려 문제 본질 잊혀져"
다원주의·관용 문화 정착 필요
[편집자] 제20대 대선에서 '성별 갈라치기'가 선거전략으로 활용되면서 우리 사회 젠더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대남'과 '이대녀'는 실제 투표에서 뚜렷하게 갈린 표심을 보여줬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 시민사회가 분열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여가부 존폐와 젠더갈등을 연결짓는 시각에 우려를 표한다. 뉴스핌은 '도 넘는 젠더갈등'이라는 연속보도로 과장된 젠더갈등의 실체와 향후 해법 등을 짚어본다.
[서울=뉴스핌] 박우진 기자 = 이번 대선은 20대에서 성별에 따른 지지후보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다. 주요 정당 후보들도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 '이대녀'(20대 여성)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성별 갈라치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별 갈라치기가 젠더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성차별 구조 해소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성별 갈라치기, 없어지지는 않을 것"
전문가들은 성별 갈라치기 양상이 향후에도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는 청년들의 관심도가 덜하고 지역 공약이 이슈가 되는 만큼 성별 갈라치기는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다만 다음 대선까지는 여야 양당간 이대남·이대녀 구도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최상수 기자 =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고 성평등과 공존을 외치는 청년 남성 모임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이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2.02.09 kilroy023@newspim.com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대선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으로 인해 성별 갈라치기가 심하게 나타났다"면서 "1차적으로는 향후 새정부가 어떤 정책 방향을 펴느냐에 따라 갈라치기 양상이 달라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어 "새 정부가 성평등 정책 등 온건한 정책을 펴더라도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있어 젠더 균열이나 갈등이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젠더 이슈 등에 있어서 개인간 의견 차이는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것처럼 심각한 갈등으로까지 확산되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이 적지 않다"면서 "학생들을 보면 일부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체로 의견 차이가 갈등으로 이어질 정도로 크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 "이슈에 매몰되지 말고 차별 낳는 구조 문제에 접근해야"
전문가들은 특히 성별 갈라치기가 특정 젠더 이슈에서 비롯돼 온라인 특성인 쏠림 현상 등으로 인해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고 봤다. 특정 이슈에 매몰되다보면 차이가 나는 의견을 적으로 간주하게 되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정 이슈가 익명으로 손쉽게 의견을 펼칠 수 있으며 집단적인 성향이 강한 온라인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확대되는 모습이 나타난다"면서 "갈등이 격화되면 서로를 적으로 보면서 싸우게 되는데 차별을 낳는 근본적인 구조는 해소되지 않은채 핵심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젠더 이슈를 이용해서는 안되며 성차이를 존중하면서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이를 예방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권에서 표를 의식해 성별 갈라치기 전략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남녀가 문제 삼고 있는 구조 문제에 집중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설 교수는 "정파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성별 갈라치기 유혹이 있겠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이를 활용해서는 안된다"면서 "여성에게는 임금차별 등 구조적 성불평등 문제가 남성들에게는 군복무 문제 등이 나타나는데 이를 중장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원주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송 교수는 "다원주의 사회가 성숙하면 양성의 차이에 따른 삶의 특성과 양식을 이해하고 서로를 포용하게 된다"면서 "한국 사회에는 아직 다원주의와 관용의 문화가 정착되지 못하다보니 젠더 갈등 등이 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krawj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