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작가가 5년 만의 개인전 '감각의 요새'를 통해 인간 문명이 남긴 도상과 부호들로 기하학적인 추상 풍경을 만들어냈다.
박경미 PKM갤러리 관장은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PKM갤러리에서 열린 국내 개인전시회 '이상남: 감각의 요새'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이번 전시는 대작 위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재 선생님의 모습을 대중에게 전면 승부하듯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감각의 요새' 설치 전경 [사진=PKM갤러리] 2022.03.16 alice09@newspim.com |
이상남 작가는 인간 문명이 남긴 도상과 부호들을 수집하고, 그 이미지를 곱씹어 만든 수많은 기하학적 조형 기호들을 구성‧조합해 유니크한 '추상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에서 이상남은 컬러가 보다 풍성해지고 공간감이 더욱 깊어진 미발표 신작을 공개한다.
이날 박 관장은 "이상남 선생님은 수많은 아이콘을 작가의 손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투영시켜 우리 시대를 통찰하는 하나의 풍경을 그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며 "2017년 전시 이후 이번 작품들은 공간감은 더 깊어지고 파워풀하고 설득력 있게 선생님의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남 작가는 "'감각의 요새'라는 타이틀은 어렵지 않다. 도미노 게임처럼 의미 없는 생각의 형태를 켜켜이 쌓아가고 제시했다. 목표는 없다. 의미는 보는 사람에 의해 가져가게 되는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가져가는 사람이 그림을 보고 연결시키면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목표보다 그들을 초대해 의미를 가져가라는 것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작가의 'The Fortress of Sense' [사진=PKM갤러리] 2022.03.16 alice09@newspim.com |
이 작가는 "내 작품은 문명화된 지금 우리가 만들어낸 또 다른 형상이라고 할 수 있고, 형태이다. 그것들이 내 작품의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자연이 아니라 문명화된 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작품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인공적인 풍경들은 지난한 수작업과 공력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페인팅과 디자인, 건축 영역의 사잇길을 유연하게 가로지른다.
이에 이 작가는 "직선하고 원을 바탕을 두고 있는데 직선은 죽음, 원은 삶을 표현해 나선형처럼 끊임없이 엮인다. 그것이 나의 작품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들은 작품을 하나의 언어로 보려고 하는데 나의 작품은 의미가 없는 것들에서 의미를 찾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훈육되고 익숙한 것에 대한 접근보다 보는 사람들에게 낯섦을 던져 새로움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구성해가는 것이 작품의 재미"라고 강조했다.
작품은 시각적인 상상, 재미, 정화 등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하나의 '여정'이다. 2017년 개인전보다 더욱 강렬해진 색감과 부호가 시선을 압도한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작가 'The Fortress of Sense' [사진=PKM갤러리] 2022.03.16 alice09@newspim.com |
이상남 작가는 "작품을 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특정한 공간에서 보는 건 3~4초면 끝난다. '봤다'라는 것에 대해 시선을 불청객으로 만들지 않고 끌어들이는 것이 작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낯설고 신선하지 않으면 시선을 끌 수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사고를 가지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처럼"이라며 "제 작업실이 실험실 같다. 내 작품의 여러 요소들이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보다 보는 사람들이 스스로 가져가 스토리텔링,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또 "작품에 있는 날카로움 또한 보는 사람 시선을 빼앗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엔 날카로움이 많다. 2초를 더 볼 수 있게 한다면 대단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시에는 가로 3.8m 길이의 대형 회화 작업을 포함한 시작들이 본관에 구성됐다. 이상남 작가의 모든 작품은 페인팅과 샌딩(갈아내기)을 적게는 50회, 많게는 100회 반복하며 완성된다. 상상 이상의 노동이 필요한 셈이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작가 'Light + Right M' [사진=PKM갤러리] 2022.03.16 alice09@newspim.com |
그는 "하나의 이미지를 놓고 이를 크게 재현했을 때 메시지가 증폭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수없이 변하는 이미지도 하나의 사이즈를 가지고 어떤 순간을 회화로 표현할 때 오는 충격도 있다. 나의 노동성은 그런 면을 표현하려는 점이 강하다. 그래서 내 작품은 퍼포먼스도 굉장히 중요하다. 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생성과 소멸을 쫓다보면 텅 빈 것을 느낄 수 있다. 고정관념이나 패러다임, 봐야하는 것에서 정지하면 느끼는 것이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니멀리즘은 아시안의 전매품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될까 생각했을 때 한국에 IT처럼 다른 게 있지 않느냐. 나는 건축적이고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요소를 차용하기 시작했다. 내 작업에 이것뿐 아니라 과정을 보면 처음에 극단적인 사진이란 매체를 이용한 미니멀 아트가 있었다. 세 단계를 거쳐 지금에 왔다. 끊임없이 변해야 할 것 같다. 작품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 되지 않는 걸 말이 되게 만드는 거니까.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그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영역이 될 수 있다.
이상남 작가의 현대미술, 추상화는 이를 정의하는 틀과는 조금 벗어나 있다.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과는 선과 원을 조합한 추상적인 기호들이 여러 차례의 사포질을 거쳐 평면 속에 담긴다. 또 디지털 방식으로 재단하고 찍어낸 듯한 화면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감각의 요새' 설치 전경 [사진=PKM갤러리] 2022.03.16 alice09@newspim.com |
이상남 작가는 "나는 추상을 추상한다. 일반 추상화가 아닌 제가 생각하는 추상화는 세계를 지각하거나 인식할 때 추상을 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왜냐하면 사물은 다른 사물과 맥락 속에서 연결된다. 그것이 추상이고, 작업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가능성에 가능성, 잠재성의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며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추상적 의미를 다루는 측면에서 추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차별할 수 있다. 추상을 추상이 아니라 이것을 해부하고 분해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고. 말이 되지 않는 작가"라며 스스로를 정의했다.
이 작가는 작품이 하나의 언어로 정의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의미가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해 작품을 완성시켰고, 그 작품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다.
이상남 작가는 "작업은 꼭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대단히 설명되어야 하기보다 거칠게 이야기해서 '예뻐, 아름답다'라는 말만 들어도 성공적"이라며 "어차피 보는 사람들의 시대가 돼서 그들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이상남 작가 'The Fortress of Sense' [사진=PKM갤러리] 2022.03.16 alice09@newspim.com |
특히 "그들의 반응은 다만 다음 작품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나는 단지 고정된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다. 악동처럼 일을 벌이고 여우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이건 현대미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상남 작가는 "이번 전시에 작품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작품을 보면 이게 어떠한 힘이 있는지 느끼게 되는데, 박 관장이 정말 좋은 구성으로 작품을 전시해 줬다. 정말 최고의 에너지를 가진 작품의 전시를 보게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이상남 작가의 '감각의 요새'는 오는 17일부터 4월 16일까지 PKM갤러리에서 전시된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