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가능성 커져…원자재가격 급등 등 수출입 타격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이 일촉즉발로 치달으면서 국내 산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사태가 전쟁 발발까지 이를 경우, 해당지역과의 교역 중단뿐 아니라 원자재 수급난에 따른 제조원가 상승 등까지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2일 외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평화 유지'를 명분 삼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자국군이 진입하도록 명령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에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투입한 것인데, 앞서 푸틴 대통령은 이 두 곳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들 지역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가 전개되면서 우크라이나 군과 교전이 재개된 분쟁지역으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직접 대치하게 됐다.
◆ 전쟁 가능성 커져…원자재가격 급등 등 수출입 타격 불가피
전쟁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당장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동유럽권 수출입 기업 86개사를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업들은 이번 사태 악화 시 '거래 위축'(22.7%), '루블화 환리스크'(21%), '물류난'(20.2%) 등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전면전 등으로 악화된다면,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우리나라의 대(對)러시아 수출이 크게 줄었던 때와 같이 우리 수출입 거래에 큰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2014년 당시 우리나라의 러시아 수출규모는 101억 달러였으나 크림반도 합병 후 1년이 지난 2015년에는 전년대비 53.7% 급감하면서 47억 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10위 교역대상국으로 러·우 사태 악화 시 우리 수출입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는 화장품(444개사), 기타플라스틱(239개사), 자동차부품(201개사) 등을 중심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한, 러시아는 2014년 이후 탈달러화를 계속 추진해왔지만 여전히 달러화 결제 비중이 50%가 넘어 이번 사태로 향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가 배제되는 경우 우리 기업들의 대금결제 지연·중단 피해가 불가피하다.
수입 측면에서는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국내 제조기업의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수입 중인 일부 희귀 광물류에 대해 거래선 다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우크라이나의 교역규모는 연간 9억 달러(교역대상국 68위)에 불과하지만,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희귀가스로 네온과 크립톤, 크세논 품목의 우크라이나 수입의존도는 각각 23%, 30.7%, 17.8% 등으로 다소 높다. 이에 러·우 사태가 악화될 경우 이들 수입 원자재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거나 수입단가 상승으로 국내 제조 기업들의 수입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 같은 우려는 금융시장의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주가지수(RTS주가지수)가 13%나폭락하는 동시에 루블화 가치 역시 지난 21일 3.5% 급락했다. 온스당1900달러선에서 숨고르기하던 금가격 역시 0.41% 오른 1906.27달러를 기록하며, 1900달러를 넘어섰고,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유가(WTI 기준)는 3.16% 뛰며 93.95달러로 상승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실상 우크라이나 사태가 외교적 해법을 통한 해결 가능성보다 전쟁 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면서 "우크라이나 관련 각종 가격지표들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고 했다.
◆ 현지 진출 국내 기업들, 상황 예의주시하며 만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진입했다는 소식에 현지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피해 최소화를 위해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무역협회는 현지 진출 기업의 한 관계자를 통해 "전쟁 발발 시 물류난 발생 가능성이 높고, 수출통제까지 현실화되면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수급에 차질이 우려되고 공장 운영에도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지에 법인 또는 지사를 두고 있는 우리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종합상사, 포스코 인터내셔널, 한국타이어, 에코비스, 오스템임플란트 등 10개사 내외다.
이들 기업은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전운이 고조되면서 이미 현지 주재원 등 인력을 모두 철수시킨 상태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생산하고 있고, LG전자 역시 모스크바 외곽 루자지역에 가전과 TV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주재원 가족들을 먼저 귀국시킨 데 이어 현지에 남아 있던 직원들도 귀국, 해외 다른 지역으로의 재배치 등을 통해 철수를 마쳤다.
이들 기업은 일찌감치 현지 주재원 등 인력들을 철수시키고 대비를 해왔기에 이번 사태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태의 여파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과 유럽 등 서방세계의 경제제재 등으로 이어질 경우, 그 파급 효과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지 공장 가동과 관련해서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래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는 하고 있다"며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역협회 측은 "국내 기업의 경우 달러화 결제 중단에 대비한 대응책(유로, 엔화 등 여타 통화 결제, 물물교환 방식의 현물거래)을 마련하고, 향후 수출 통제에 대비해 주요 부품의 재고 확충, 부품 공급처 다양화 등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는 전쟁 발발, 제재 강화에 맞춘 시나리오별 대응방안 마련과 함께 피해업체 지원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