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뉴스핌] 남효선 기자 = '위드코로나'. '코로나19'라는 낯선 이름 앞에서 인류는 1년10개월의 혼돈과 혼란 끝에 마침내 손을 내밀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탐욕과 경쟁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었는 사람들은 이웃과 세상의 단절 속에서 문득 혼자 서 있다는 절박감에 소스라치며 멈칫멈칫 손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이번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는 오래되고 남루한, 그러면서도 소중한 가치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위드 코로나'. 문득 고개를 드니 세상은 찬란한 자연의 빛깔이다. 제 자신의 모든 진력을 끌어올려 자연은 제 마다의 빛깔로 새상을 물들인다. 꾸미지 않으나 아름답고, 제 마다 혼자 서 있는 것 같으나 함께 어우러져 어깨를 결고 있다.
천년고도 경주는 온통 가을빛깔의 향연이다. 어느 빛깔 하나 도드라짐 없이 한데 어울려 제 마다의 빛깔과 소리로 사람들을 부른다.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의 은행나무[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경주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은 유가(儒家)를 상징하는 은행나무 노란 빛깔이 압권이다. 마침 바람이 불어 36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희열처럼 이파리를 날린다. 노란 나비떼가 지상으로 내려앉는 듯 하다.
운곡서원은 안동 권씨 시조인 권행(權幸)을 모신 서원으로 1784년에 건립됐다.
경주시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경주의 서면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홀로가 아닌 숲이 선사하는 탁월한 경관이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서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숲이 입권이다.
은행나무가 연출하는 또 다른 탁월한 경관은 통일전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황금들판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줄지어 선 은행나무길은 전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손꼽히는 곳이다.
길의 끝에 위치한 삼국통일의 정기가 서린 통일전이 자리하고 있다.
통일전 은행나무길 인근에 자리한 산림환경연구원은 경주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책 명소이다.
경주시 소재 산림환경연구원의 산책길.[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다양한 수종이 연출하는 단풍숲은 그야말로 가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찻길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통일전 쪽으로 걸으면 정강왕릉과 헌강왕릉의 조용한 산길로 이어진다.
신라 시조 김알지의 신화를 담은 '계림 숲'은 오래된 고목들이 연출하는 장엄이다. 오랜 시간이 빚은 느티나무와 고목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감히 넘볼 수 없는 처연한 빛깔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계림 숲 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교촌마을과 웅장한 월정교를 만난다.
신라 건국신화를 품은 계림숲의 가을.[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경주 동궁과 월지의 밤 풍경.[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가을빛깔은 경주 도심을 지나 '왕의 길'로 부리는 감포 동해바다로 이어진다.
경주도심과 동해를 가르는 추령재는 단풍이 빚은 병풍이다. '왕의 길'은 신문왕이 삼국통일을 이루고 국토수호를 위해 감포 앞바다에 잠든 아버지 문무왕을 찾아가던 길이다.
경주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옛길을 따라 추령재 터널 넘어가기 전의 추원마을로 빠지는 곳이 '왕의 길' 시작점이다.
경주 도심에서 감포 바다로 이어지는 '왕의 길'로 부르는 추령재 용연폭포의 가을.[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경사가 높아서 말이 넘어졌다는 '말구부리', 신문왕이 잠시 쉬었다 세수를 하고 간 '세수방', 용이 승천했다는 '용연폭포' 등 흥미진진한 설화와 이야기가 가득 담긴 길이다.
천년고찰 기림사까지 이어지는 길은 그저 흔한 등산코스가 아닌 천년 신라 역사가 숨쉬는 현장이다.
감포를 지나 양남해안은 자연이 빚은 또 하나의 절경이 사람들을 맞는다. 전연기념물 제536호인 '양남 주상절리'가 그 것이다.
경주 양남해안의 부채꼴 주상절리[사진=경주시] 2021.11.04 nulcheon@newspim.com |
주상절리는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의 해안을 따라 약 1.5㎞ 구간에 형성돼 있다. 파도에 덮혔다가 씻기면 오로지 자연만이 빚을 수 있는 오묘하면서도 웅장한 주상절리가 비경을 드러낸다.
꽃 봉오리 모양, 위로 솟은 모양, 기울어진 모양 등 절묘한 경관 중에서도 바다를 요처럼 깔고 누워 부채살처럼 광활하게 펼쳐진 '부채꼴 모양 절리'는 단연 압권이다.
경주시는 이 곳 1.7㎞ 거리를 둘레길로 조성하고 '주상절리 파도소리길'로 이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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