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은 기존 단순한 안보동맹서 벗어나 다분야로 확장 중
한미간 협력의 로드맵 실천할 차세대에겐 한국 소프트파워가 중요
한국에 긍정적인 미국인, 2003년 46%에서 2020년 77%로 증가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CSIS,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는 워싱턴 DC에 소재한 보수 성향의 외교 전문 싱크탱크다. 1962년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데이비드 앱시러가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를 본떠 만들었다. 헨리 키신저, 브레진스키, 제임스 슐레진저, 윌리엄 브로크가 대표적인 CSIS 출신 인물이다.
CSIS는 진보 성향의 브루킹스연구소, 보수 성향의 헤리티지재단과 함께 워싱턴 DC에서 가장 유력한 싱크탱크 중 하나로, 중립적이고 초당파적인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박사급 연구원만 220여 명이 포진해 있다.
CSIS에서 한국 문제를 전담하는 프로그램인 '코리아 체어(Korea Chair)'를 신설한 것은 2009년 5월 20일이다. 재팬 체어가 28년, 차이나 체어가 17년의 연륜을 가진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다.
이런 CSIS에서 지난 10월 6일 '안보를 넘어서: 한국의 소프트파워와 코로나 이후 세계에서 한·미 동맹의 미래(Beyond Security: South Korea's Soft Power and the Future of the U.S.-ROK Alliance in a Post-Pandemic World)'라는 긴 제목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한류'라는 명칭 대신 '소프트파워'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한류가 한미동맹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토론하는 자리였다. 보수적인 워싱턴 정가의 싱크탱크에서 한류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열었다는 사실 자체가 K-culture의 엄청난 파급력을 설명해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한국의 소프트파워와 한미동맹, 외교정책의 상관관계를 조명한 컨퍼런스를 정리한 CSIS 홈페이지 화면 캡쳐. 2021.11.03 digibobos@newspim.com |
이날의 CSIS 컨퍼런스에 대해 국내 언론은 소프트파워 개념을 처음 내놓은 조셉 나이(Joseph S. Nye Jr., 1937-)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같은 석학들도 한류의 위력을 인정했다는 차원에서만 언급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주목했어야 할 대목은 한류가 한미동맹같은 외교의 핵심 사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역으로 한미동맹이 한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어야 했다.
그러면 한류,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한미동맹과 어떤 역학관계에 있는 것일까.
우선 조셉 나이 교수는 발제를 통해 파워는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으로, 첫째, 강요 또는 위협, 둘째, 지불 또는 유인, 셋째, 매력의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소프트파워는 강요나 지불 대신 자신의 매력을 이용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제3의 방법이고, '스마트파워'는 강요, 지불, 매력, 3가지를 모두 적절하게 활용해서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획득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조셉 나이 교수는 "국내적으로는 한 국가가 지닌 문화와 가치, 국제적으로는 대외 정책이 소프트파워의 원천으로, 소프트파워 강국인 한국도 이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성공적인 대중문화를 만들어냈고, 유례없는 경제적 성취에 민주주의 제도 정착이라는 가치도 형성되어 있다. 또한 대외 정책 측면에서는 대외원조를 통해 다른 국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서 "문화, 가치, 대외 정책의 삼박자가 맞아야겠지만 특히 대외원조에 더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프트 파워를 안보 문제와 대외 정책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집중토의한 2부에서 CSIS 코리아 체어의 초대 책임자였던, 조지타운대 빅터 차(Victor Cha) 교수는 "한국 대중문화가 한국을 변곡점에 이르게 했다. 주류 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보인다. 미국의 청년 세대 사이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한국에 대한 장기적인 연대와 지지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국은 UN 평화유지군, 범지구적 기후 위기 해결, 에너지 전환에 참여하는 등 세계시민 역할에 충실했지만, 앞으로 조금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소프트파워를 만들어내는 매력은 조건 없는 대외원조같은 베풂에서 비롯되고, 수혜의 대상이 된 국가는 수혜를 베푼 국가와 일체감을 갖고, 앞으로도 계속 지지·연대하고자 하기 때문에 "한국이 소프트파워를 더 키우고자 한다면 그런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고위 정치인이나 행정부의 고위 관료에게 한미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의 소프트 파워 활용방안을 제안한다면?'이란 질문에 빅터 차 교수는 "지난 5월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안보동맹 뿐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기후 변화, 첨단 기술 협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동맹의 영역이 구체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라면서 "공동성명이 제시한 한미 협력의 로드맵을 따라가려면 한미 양국의 다음 세대가 상호협력해야만 한다. 여기에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큰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한미동맹은 기존의 단순한 안보동맹에서 벗어나 그 영역이 다분야로 확장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확장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실천할 다음 세대의 상호협력에는 한류가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빅터 차 교수는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아시아 담당국장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대북문제에 대해 가장 최측근에서 조언했던 인물이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논설위원 = 유엔 'SDG 모먼트'의 개막 연설자로 초청된 방탄소년단(BTS)이 유엔본부 건물에서 '퍼미션 투 댄스' 공연을 하고 있다. 이 영상은 유엔 유튜브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은 영상으로 1백만 명 이상이 이를 시청했다. [사진=유엔 유튜브 캡처] 2021.11.03 digibobos@newspim.com |
이런 빅터 차의 주장에 대해서는 죠셉 나이 교수도 적극적인 동조 의사를 표현했다. 그는 "빅터의 말에 동의한다. 여러분이 안보 이상 의제의 확대를 보고 기후와 전염병을 포함시킬 때, 이것은 한국의 대중문화에 이끌리는 젊은 세대에게 매우 중요할 것이고, 이것은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세계적인 공공재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한국에도 좋을 것이고, 그것은 세대 발전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국에 취한 행동 때문에 양국 동맹 균열 생겼지만 한국 소프트파워가 완충 역할"
죠셉 나이는 "트럼프가 재임 시절 한국에 취한 행동 때문에 양국 동맹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는데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또 그는 "한국 정부는 외교적 목표에 따라 국가별로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고, 이를 위해 소프트파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국가별 맞춤형 소프트파워 전략'의 중요성'을 조언했다.
성균관대학교 국정전문대학원의 이숙종 교수는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G7 정상회담에 초청되었고, 12월에 열리는 세계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초대됐는데, 아쉽게도 한국 정부는 소프트파워를 활용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면서 "아시아 지역에서 벌어지는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데 보다 적극적으로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세계 곳곳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의 소프트 파워 또한 증대된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이신화 교수는 정권의 변동과 상관없는 '지속성장의 소프트파워'를 강조했다. 이교수는 "누가 집권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대외정책이 왔다 갔다 하면 외교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로 비치게 된다.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고, 누가 여당이 되든 한국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국익이 무엇인지, 한국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간 우리 산업계가 애써 성장시켜온 소프트 파워가 대외적으로 평가절하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BTS는 한국 경제에 연간 36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병 팬데믹이 발생하기 이전,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 중 약 80만 명(전체 방문객의 약 7%)가 BTS 때문에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번 CSIS 컨퍼런스의 개회사와 폐회사를 맡은 한국계 수미 테리(Sue Mi Terry) CSIS 선임연구원은 "퓨 리서치센터가 2020년 5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인 77%가 한국에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2003년의 경우 46%였다.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호주, 프랑스, 독일 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미국에 대한 한국의 긍정적 시각,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긍정적 시각이야말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고 정리했다.
바야흐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의 '혈맹' 개념보다, 이제는 한류 콘텐츠를 공유하는 '느슨한 연대'의 경험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한류동맹(Hallyu alliane)'의 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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