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진열된 음식을 먹을 줄만 알았지, 포장은 처음이었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부대찌개, 감자탕, 떡볶이, 주꾸미볶음을 하나씩 용기에 옮겨 담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숙이 넣어둔 사표를 꺼내 '창업'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물론 진짜 사표를 던진 건 아니고 단 하루 사장이 됐다. 이대출(가명·30대) 씨의 가게에서 하루를 보냈다.
진짜 창업을 하고 싶어서 간 건 아녔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떨어져 한 집 걸러 한 집 임대를 내놓은 현실에서 날 것 그대로 '자영업자'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일일 사장이 된 전기자. 레시피에 맞게 하나씩 소분해서 담은 용기에 유통기한 라벨을 붙였다. 제법 손에 익으니 속도가 붙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 누구나 힘든 지금, 자영업자는 하루도 편할 날 없었다
뉴스 검색창에 '자영업자'라고 쳐봤다.
거리두기에 '한숨' 최저임금 인상에 좌절, 자영업자의 절규·고통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매출이 올라서 좋다는 내용의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내년 최저임금이 9160원이라는 기사가 연일 보도되고,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절망적인 내용뿐이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폐업한 수준이 아니라 연달아 폐업했다. 임대 내놓은 왼쪽 가게는 '코로나 블루' 우울증 자가진단 해봤더니…' 체험기에 소개했었던 확진자가 다녀갔던 식당이다.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이라고 낙인 찍혀 매출이 안올랐지만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1년만에 폐업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통계적으로 폐업률이 어떻고 하는 숫자상의 수치가 아닌 진짜 자영업자의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보고 싶었다.
밀키트(식사(meal)+키트(kit)) 프랜차이즈 점주 이대출 씨는 처음부터 청년 창업에 도전한 건 아녔다.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었다.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에 지쳤고, 날마다 고공행진하는 부동산 가격에 상실감만 커졌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것도 아녔고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길 바랐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에 버금가는 임금으론 도저히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고 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꿈이라던 그는 2달 전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30대에 사장이 되기로 결심했다.
이대출(가명) 사장이 운영하는 밀키트 전문점. 손님이 없어 야속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하지만 그는 모아놓은 돈도 없고, 1금융에서 창업 비용을 마련할 만큼의 신용등급도 좋지 않아 2금융에서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그마저도 한 곳에서 창업 비용을 다 빌려주지 않아 여러 대출을 통해 약 1억원을 빌려 창업 비용을 마련했다.
돈은 마련했지만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워본 적도 없던 이대출 씨가 창업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요리에 필요한 손질된 식재료와 딱 맞는 양의 양념, 조리법을 세트로 구성해 제공하는 제품을 판매하는 밀키트 프랜차이즈였다고 했다.
◆ 물류 도착=장사 시작
발주한 물건들이 수량에 맞게 왔는지 확인하고 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이대출 씨의 가게는 24시간 무인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하루 전날 밤, 상상했던 모습은 "어차피 무인이면 가게 구경만 하다 오겠는데 기삿거리가 될까?"라는 생각이었지만 이른 아침 물류가 도착함과 동시에 편할 거란 생각은 깡그리 사라졌다.
'택배기사 과로사로 죽는 이유 알게됐다' 체험이 떠오를 만큼 묵직한 상자들이 떠밀려 온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한 정도로 주문한 물건이 도착했다.
너무 많이 주문한 것이 아니냐 물으니 "유통기한을 생각해서 적게 시키면 관리가 안 되는 느낌이라 손님들이 오히려 물건을 안사가는 경향이 있다"며 "손해가 생기더라도 일단 겉보기에 좋아야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이씨는 24시간 영업이라고 진짜 24시간이 아니란다. 본사에서 물류가 도착한 이 시간부터가 진짜 영업시간이라고 했다.
◆ 프랜차이즈라고 거저먹는 것이 아녔다
주꾸미 볶음 재료들을 레시피에 적힌 대로 넣기만 하면 됐는데도 재료가 많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힘들었던 만큼 손님들이 맛있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식재료들이 담긴 물류 박스를 뜯으니 새우, 떡, 온갖 소스류 등이 담겨있었다. 내 첫 임무는 레시피에 맞게 식재료를 용기에 담는 거였다. 감바스 재료인 새우 1봉지, 올리브유 1봉지, 마늘 1봉지 등 순서대로 몇 번 담다 보니 손에 익어 속도가 빨라졌다. 레시피에 없는 재료들도 있길래 이것도 넣는 거냐 물으니 그는 "손님들이 더 맛있게 드셨으면 해서 본사에서 보내오는 것 외에 추가로 다른 재료들을 서비스로 넣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고백한다. 장사를 해본 적은 당연히 없지만 요식업 아르바이트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이 작업을 하기 전에는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알아서 다 해주는데 점주가 무슨 할 일이 있나 생각했다.
2개월 초보 사장 이대출 씨는 자영업이 다 쉬운 것 같고, 프랜차이즈는 가만히 본사에서 떠먹여 주는 대로 거저먹는 것 같이 보여도 요즘처럼 소상공인들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에는 개인 브랜드처럼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 내가 보기 좋아야 손님도 보기 좋은 것
쾅 하고 누르기만 하면 포장 작업은 마무리 된다. 막상 있으면 필요도 없겠지만 괜히 하나 장만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용기에 재료들을 담은 뒤에는 진공포장을 했다. 뜨거운 열기로 비닐을 녹여 접착하는 방식이었다. 기계를 꾹 눌러 '덜컹' 소리가 나야 되는데 가만히 누르기만 했더니 포장은 안되고 비닐만 녹아버렸다. 이씨는 괜히 기계 고장 낼 것 같다고 살살 누르면 오히려 작업 시간만 더뎌진다고 자신이 사표 과감하게 던진 것처럼 과감하게 누르라고 터프하게 '쾅' 하고 눌렀다.
이렇게 하나 둘 포장을 마친 밀키트는 손님들이 보기 좋게 가지런히 냉장고에 진열해야 한다고 했다. 최대한 군대 오와 열 맞추듯이 반듯하게 놓여야 상품을 보는 소비자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보기 좋게 진열해야 보는 손님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진열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물론 가지런히 놔둬도 하루라도 유통기한 긴 걸 고르려고 뒤에서부터 집어가는 손님이 있어 금방 흐트러진다고. 문제는 뒤에 있는 상품만 집다 보니 정작 바로 앞에 있는 상품은 유통기한을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 고민이 많다고 했다.
◆ 구경하는 손님마저 그렇게 고마웠다
이씨의 최대 고민은 매출이다. 1억의 대출 빚을 껴안고 창업할 때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만 벌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내 가게라는 생각에 하루에 잠을 3~4시간 밖에 못 자고 일해도 마냥 행복했지만 하루 매출이 10~20만원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순수익은 처참한 수준이라고 했다. 이씨는 매출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려고 밤낮없이 고민하고 인터넷 카페, SNS, 전단지 등을 통해 홍보도 안 해본 종류가 없을 정도였다.
더운 날씨에 찾아와 주는 손님이 고맙다며 서비스로 음료수를 건넸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게다가 매출이 오르지 않으니 임대료 걱정, 세금 걱정, 대출 이자 걱정, 온통 걱정 투성이었다. 손님에만 신경을 쓰고 싶어도 현실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니 스트레스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했다.
걱정이 많아지니 건강도 나빠졌다. 이씨는 식사 시간에라도 끼니를 잘 챙겨 먹어야 되는데 사 먹으면 또 돈 나간다며 차라리 다이어트 한다는 생각으로 굶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창업한 지 1달이 지난 어느 날에는 갑자기 길을 걷던 중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가게에 혼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의 근심은 커져만 갔다. 상권이 좋아서 비싼 임대료를 주고 들어왔지만 주변 가게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는 걸 볼 때마다 자신도 저렇게 문을 닫게 되는 건 아닐까 한숨만 내쉬게 됐다.
하지만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씩씩하고 큰 목소리로 가게 입구에서부터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구경이라도 하고 가세요"를 연신 외쳤다. 당장 구매하지 않더라도 기억에 남아 한번은 구매하러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오전이 다 가도록 손님 한명 오지 않던 가게에 2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단골 고객이었다. 이 고객도 처음에는 무인 가게가 신기해서 방문했다가 이씨의 간절한 마음을 느꼈을까. 1~2주에 한번씩은 찾아온다고 했다. 이씨는 더운 날씨에 와줘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건넸다. 기분 좋은 기운이 가게 안에 가득해 힘이 저절로 났다.
◆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더라
이대출 씨는 손님들에게 제일 좋은 품질의 재료로 보답하고 싶다며 시장을 찾는다고 했다. 이날도 더 신선한 채소는 없냐며 상인과 대화를 나눴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프랜차이즈다 보니 자신이 맛을 좌지우지할 방법은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이씨는 같은 프랜차이즈라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비를 털어 재료를 풍성하게 넣었고, 야채는 시장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따져가며 신선한 재료를 싸게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먹었을 때 맛이 없다면 소비자에게도 판매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그는 또 무인 시스템의 장점이자 단점인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는 어르신이 와서 헛되이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저녁 늦은 시간까지 가게에 머무르며 친절하게 안내한다고 했다.
가게 안은 청년 창업자의 느낌을 최대한 녹여낸듯한 그의 취향을 꼭 닮았다. 손님이 가게에 들어왔을 때 좋은 기분만 가져가도록 화분도 놓고, 손님과 소통의 부재에 놓일까 메모지로 소통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애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
프랜차이즈라고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줄 알았더니 구석구석 이대출 사장의 손이 안닿는 곳이 없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7.16 kh10890@newspim.com |
에필로그(epilogue). 저녁 11시까지 올린 이날 하루 매출은 14만 8500원, 8명이 다녀갔다. 순수익으로 따지면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매출이었다.
이대출 씨는 오늘도 한숨을 쉰다. 그런 그의 바람은 딱 하나. 정부의 지원이 아닌 '코로나19 종식'
이씨는 "자영업자가 죄인은 아니지 않느냐.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일부 시민들 때문에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며 "내가 편하자고 마스크를 벗는 순간 누구는 힘들어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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