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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의 체험기] 날 속인 '그놈'...중고거래 사기꾼을 잡았다

기사입력 : 2021년05월25일 11:20

최종수정 : 2021년05월25일 11:20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오빠 사진 좀 잘 찍어봐"(여자친구)

"나는 잘 찍고 있는데 장비가 안 좋아서 그래"(기자)

그래도 명색이 기자인데 사진을 못 찍는다는 말에 주눅이 들었다. 애꿎은 카메라 탓으로 돌려보려고 했는데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여자친구의 사진과 비교해봐도 엉망인 수준이었다.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나는 장인이 아니기에 장비 탓을 했다. 좋은 카메라로 바꾸면 분명 더 예쁜 사진이 나올거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이 카메라와 함께 한 세월이 있는데 어떻게 바꿔'는 무슨. 오래전부터 꼭 바꿔야겠다 다짐한 순간을 실행으로 옮기기로 했다.

기사 문맥상 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필요해서 넣는 사진. 직업 특성상 남은 찍어도 정작 내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없어 사진첩을 뒤적이다 겨우 찾은 사진이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좋은 카메라랑 비교했을 때 화질이 많이 떨어져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도 6년 전 구매했던 카메라를 아직까지 바꾸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대학생 시절 학식 대신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친구들과 술 약속도 줄여가며 악착같이 모아서 샀던 추억이 담겨 있어서였다. 이렇게까지 모아서 카메라를 사려는 이유가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 여학생들이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할 테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인연이 연인으로 바뀌는 상상을 했다. 내 예상과 달리 현실은 여행 가서 풍경이나 찍고, 음식 사진 찍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헛된 시간은 아녔다. 그렇게 사진을 찍다 보니 기자가 됐을 때 도움이 됐다.

◆ 같은 장소, 다른 사진

결정적으로 카메라와 렌즈를 바꿔야겠다는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기자가 글만 잘 쓰면 됐지'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다른 회사 기자의 사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찍은 사람은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었는데, 다른 기자의 사진에는 굳은 의지가 담긴 정치인의 모습이 담겼다. 같은 글에도 사진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랜 꿈을 이뤘다

비싼 돈 주고 샀으니 카메라 자랑 한번 해보고 싶었다. 바닥에 렌즈 그대로 두면 안좋다길래 지갑을 쿠션 삼아 놔뒀다.(니콘 뒷광고 아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오래전부터 바라던 모습이 있었다. 글 잘 쓰는 거야 당연한 거고, 내 사진에 찍힌 상대방이 실물보다 훨씬 잘 나왔다며 칭찬하는 걸 상상했지만 그런 사진은 고사하고 그저 누군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만 찍는 수준이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 사진 전문가가 아니야'라며 애써 위안 삼았지만 현실을 마주한 순간 글을 월등히 잘 쓰지도, 사진을 잘 찍지도 않는 그저 그런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무기가 필요했다. 장비 탓인지, 내 촬영 실력이 별로인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깨달은 뒤엔 더 큰 배움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 주식을 손절(손해 보고 매도)했다.

로망처럼 눈여겨보던 카메라와 렌즈를 새 상품으로 사려고 보니 몇 달 치 월급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갑자기 큰 금액을 쓰려고 생각하니 '원래 카메라로 더 연습을 할까', '마음먹었을 때 사자' 두 가지 고민을 반복하다 결국 중고 제품을 사기로 했다. 국내 최대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를 뒤져보니 적당한 가격에 올라온 좋은 제품이 있어 직거래를 이용했다. 비록 새 상품은 아니었지만 오랜 꿈을 이루던 순간이었다.

◆ 모두 좋은 사람일 거라 착각했다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게시글 [사진=화면 캡쳐] 2021.05.25 kh10890@newspim.com

카메라를 샀으니 렌즈를 살 차례였다. 사이트를 뒤져봐도 파는 사람이 없어 혹시나 연락이 올까 싶어 'OO 렌즈 삽니다'라는 글을 올렸더니 1시간여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렌즈 아직 구매 안 하셨으면 인천인데 직거래 가능하세요? 불가능하시면 버스 수화물이나 택배로 거래하시죠" 40~50대쯤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평일 근무시간에 타지역으로 갈 수 없기도 하고, 빨리 렌즈를 갖고 싶다는 생각에 버스 수화물로 당일에 바로 받아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렌즈 상태가 어떤지 사진도 받아봤고, 목소리도 들었으니 안심이 됐다. 사기를 칠 생각이었다면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했을 텐데 렌즈 상태가 어떻고, 언제 구매했고, 버스 수화물은 몇 시에 받는 게 편한지 친절하게 설명도 해줬다.

중고나라에 기자가 올린 게시글을 보고 사기꾼이 접근해왔다. 애초에 기자가 사려고 했던 렌즈를 보유하고 있지도 않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그래서 덜컥 17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입금했다. 카메라를 직거래로 살 때처럼 운 좋게도 이번에도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수화물이 도착하기로 했던 예정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 내 물건은 어디?

기자가 보낸 계좌주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2년 전부터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었다.[사진=화면 캡쳐] 2021.05.25 kh10890@newspim.com

도착 예정 시간은 저녁 9시 30분. 이 렌즈만 있으면 이제 내 로망을 다 이룰 수 있다고 설레고 있던 중 도착 30여분을 남겨두고 초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느낌이 싸했다. 판매자의 핸드폰 번호를 검색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010-XXXX-XXX 김OO 사기 조심하세요.'라는 글이 수십개가 검색이 됐다. '아뿔싸...' 그야말로 영혼이 가출하는 느낌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판매자에 전화를 걸어보니 "네. 9시 30분에 도착할 겁니다"라고 했다. 사기였으면 전화 안 받았을텐데 나한테는 사기 안 친 건가? 아니면 30분부터 연락이 안 되려나 불안·초조함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30분만 더 참아보자. 곧 수화물이 올 거야.' 괜찮을 거라 최면을 걸어봐도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사기란 걸. 예정 시간인 9시 30분. 10시.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도 내 물건은 결국 도착하지 않았다.

◆ 사기꾼의 수법, 시간 끌기

물건을 보내지도 않았으면서 배송 오류 난 것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는 사기꾼. 시간 끌기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를 최대한 절제하고 다시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 사기꾼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인 것 같다. "9시 30분에 도착한다던 물건이 1시간이 더 넘었는데도 안 왔는데 어떻게 된 거죠?"라고 물었더니 "배송이 오류 난 것 같다. 다시 알아보겠다"며 정말 배송이 오류 난 것처럼 다급한 목소리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 하마터면 진짜로 속을뻔했다.

하지만 이미 '중고나라' 카페에는 사기꾼이라는 글을 봤던 터라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회사 명함을 문자로 보냈다. '내 신분은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물건이 정말로 잘못 배송 된 거라면 물건 받은 뒤에 돈을 돌려드릴 테니 오늘 중으로 내가 보낸 170만원을 돌려달라. 만약 물건 받고도 내가 돈 안 보내면 회사로 연락하라'고 했다.

이때부터 연락이 두절될 거라 생각했는데 연락은 잘 받았다. "네.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론 예상했다시피 돈은 보내오지 않았다.

◆ 경찰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잡기 쉽지 않다"

먼저 일부 돈 보내고 물건을 받으면 남은 금액 보낸다고 했더니 "제가 나이가 50인데 이런 거로 사기 치겠습니까? 그냥 믿고 보내주세요"라는 말에 별일이야 있겠나 싶어 보내버렸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하루가 더 넘어가기 전에 사기꾼의 계좌를 막아야 된다고 생각해 112에 전화하니 "내일 아침 9시 이후에 오세요"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민원 상담 번호인 182에 전화했더니 "중고거래 사기는 조직적으로 해외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서 잡기도 어렵고, 국내에 있는 범인을 잡아도 처벌은 해도 돈을 돌려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마지막 희망은 은행이었다. 사기를 당했으니 170만원 송금한 걸 취소해달라. 아니면 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정지시킨다거나 어떤 다른 방법은 없냐 물으니 역시나 돌아온 대답은 경찰에 신고하라는 말뿐이었다.

◆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거였다

이미 사기를 당했다면 경찰서에서 고소장을 접수하자. 기자는 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하러 갔다가 경찰서로 가야한다고 해서 시간 관계상 당일에 접수를 못했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중고거래를 했는데 물건 대신 벽돌이 도착했다는 이야기,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잃었다는 이야기 등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생각했다. 조심하지 않아서, 심한 말로는 조금 멍청해서 당한 거라고 생각도 했었다. 막상 내가 당해보니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당했다. 당한 뒤에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방법도 마땅히 없었다.

돈을 벌어도 모자랄 판에 170만원을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아 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는 없었을지 고민해 봤다. 다시는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몇 가지 팁을 공개한다. 이 방법이 100% 사기 피해 방지를 보장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피해는 막을 수 있을 거다.

사진 인증을 요구했더니 모니터 위에다 인증하는 사기꾼.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팁 1. 카카오톡 아이디 대신 전화번호를 받자. 사기꾼들은 속이기 위해 가족사진, 심지어 아기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해 신뢰성을 높이기도 한다. 신고할 때도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팁 2. 이미 돈을 보냈다면 은행에 오송금 신청을 하자. 사기당했다고 말하면 자신들은 강제할 권한이 없으니 경찰에 신고하라고 한다. 신고를 해도 몇 개월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상대방의 처벌보다 내 돈을 받는 게 우선이라면 오송금 신청을 하자. 물론 상대방이 거절하면 돈을 돌려받을 순 없다. 하지만 사기꾼 입장에선 경찰 신고로 계좌가 막히는 것보단 건수 하나라도 줄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돈을 반환할 확률이 크다.

팁 3. 사기 신고 공유 사이트 '더치트'와 '경찰청 사이버 캅'을 통해 계좌나 전화번호로 판매자가 신고당한 이력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기자도 이미 사기를 당한 뒤에서야 사기꾼 번호를 더치트에 조회해보니 5건의 피해 이력이 검색됐다.

'더치트'를 사용하니 사기 신고가 누적된 사람에게 전화, 문자가 걸려오면 경고 표시가 뜬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팁 4. 직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중고거래 사이트 공식 홈페이지 주소와 일치하는 안전거래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다만 최근에는 가짜 안전거래 사이트가 등장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팁 5. 가장 중요한 거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삽니다'라는 글을 먼저 올리지 않는다. 애초에 물건을 보유하지도 있지도 않으면서 접근해 오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제품 사진을 보여달라고 요청하면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진을 마치 자신이 찍은 사진인 것처럼 보내온다. 기자가 사기당한 렌즈를 또다시 사겠다고 게시글을 올려보니 연락 온 5명 중 3명이 사기였다. 사기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제품 옆에 종이로 닉네임이나 원하는 구도대로 찍어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다른 사진을 요청하면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 인증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다. 주저 없이 인증을 요구하자. 상대방이 인증을 피한다면 99.9% 사기라고 봐도 무방하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팁 6. 제품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는데 당당하게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진짜 정직한 판매자라서 자신의 물건을 파는 경우도 있지만 팁 5에서 말한 것처럼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진을 가져와서 속이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구글링'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보낸 사진을 저장한 뒤 구글에 접속해서 이미지에 업로드를 하면 사기꾼이 어떤 사진을 어디서 받아왔는지 검색되는 경우가 많다.

◆ 늘어나는 온라인 중고거래 '먹튀'...법 제도·수사기법은 과거에 머물러

번호를 조회했는데 검색이 안된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처음 사기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경우도 있다.[사진=화면 캡쳐] 2021.05.25 kh10890@newspim.com

경찰에 따르면 중고거래 사이트 등에서 돈만 받고 물건을 보내지 않는 수법의 단순 사기 사례가 최근 수년간 꾸준히 늘고 있다. 사이버 사기 범죄 건수는 2014년 8만 9519건에서 2019년 15만 1916건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인터넷 물품 거래 특성상 피해액이 크지 않아 신고를 포기한 이들도 많을 것으로 추정돼 실제 피해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더치트에 등록된 사례로만 봐도 2019년 한해 사기 건수는 23만 2026건으로, 경찰에 신고 접수된 것보다 10만 건 가까이 많았다.

25일 기준 현재까지 더치트에 등록된 전체 피해 사례는 약 130만 건, 누적 사기 예방은 무려 1971만 건이다. 경찰이 아닌 민간 사이트인 더치트가 존재하는 덕분에 1971만건의 피해를 예방한 것으로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기자가 사기를 당했을 때처럼 피해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수단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사기꾼의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고, 경찰은 잡는 것도 어렵지만 잡아도 돈을 돌려받기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사례가 이어지다 보니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도 똑같은 아이디로 사기를 치고 있다.

경찰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보이스피싱처럼 즉각적인 계좌 지급정지 등의 법령이 미비해서 일일이 범죄에 사용된 계좌를 파악해 은행에 공문을 보내고 은행이 지급정지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기까지 2주가량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선 경찰이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사기꾼은 특정 제품만 노리고 접근하지 않는다. 언제 어느 상품을 살 때 사기일지 아닐지 유의해야 한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피해자 중심의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현행법상 피해구제를 위한 장치가 전혀 없어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당수익 환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에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중고거래 등 인터넷 거래 사기를 방지하기 위한 '통신사기 피해 환급 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힌 자가 피해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3배 범위에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했다. 물론 내 마음 같아선 3배가 아니라 30배로 물어내야 한다고 하고 싶다. 그래야 피해자의 마음도 위로받고, 배상 하는 게 무서워서 범죄율도 줄어들 거라 생각해서.

다행히 하루만에 돈을 돌려받았다. 고소장을 제출하겠다고 하니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먼저 구매하겠다는 게시글을 올리는 건 위험하다. 기자가 실험을 위해 '구매합니다'라는 글을 올린지 하루만에 4명의 사기꾼이 접근해왔다.[사진=전경훈 기자] 2021.05.25 kh10890@newspim.com

에필로그(epilogue). 170만원. 물론 큰 금액이지만 이 돈이 없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질 정도로 큰 금액은 아녔다.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사기를 당했다는 상실감은 1억 7000만원쯤 잃은 기분이랄까. 다른 피해자들의 글을 봤다. 오지 않을 물건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나 배송지를 착각한 건 아닐까 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됐다.

나는 운이 좋게도 사기당한 다음날 사기꾼에게서 돈을 돌려받았다. 어설픈 사기꾼이라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시까지 돈 안 보내면 변호사 선임해서 민·형사상 소송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실제로는 변호사 선임할 생각은 없었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했다. 당신 때문에 선량한 피해자가 생겨선 안된다고. 그리고 당신 때문에 다른 판매자들까지도 모두 불신의 대상이 된다고.

아무리 사회가 각박해졌다지만 서로를 범죄자 취급하는 사회가 돼선 안된다고. 사기꾼은 "잘못된 생각에 실수를 했다. 죄송하다. 돈은 돌려드리겠다"며 돈을 보내며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끝까지 사기꾼이라 부르는 이유는 여전히 이 사람에게 돈을 돌려받지 못한 5명의 피해자. 어쩌면 신고도 하지 않고 속으로 끙끙 앓은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에. 감히 내가 용서할 수 없었다.

kh1089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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