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岳麓山笑啼岩背后:一段异乡人留下的家国故事

기사입력 : 2021년07월06일 15:00

최종수정 : 2021년07월06일 15:00

在岳麓山白鹤泉西侧的山崖边,嵌有一块题为"笑啼岩"的石碑,石碑左侧山体刻有:"民国二十六年十二月登岳麓,访李北海碑,祭黄、蔡、焦诸友墓。滇南李根源书石"。根据景区文史专家胡滔滔生前考证,此碑为"第五"笑啼岩,系韩国爱国志士李宁斋书写。边上石刻为中国近代名士、国民党元老、爱国人士李根源所书,他在1937年底登上岳麓山,观摩了李昱"北海碑"(麓山寺碑,今存于书院),拜谒了黄兴、蔡锷、焦达峰等同盟会及革命友人的墓茔。虽然看上去两人同姓"李",但两人国籍不同,且题写的内容在关联度上是并无瓜葛。

【图片=新湖南提供】

李宁斋,名康浩,出生于1870年,1944年去世。系韩国著名思想家、理学家、心学家李退溪(李滉)11 代族孙,其父李敦行,曾在朝鲜李朝后期任大司成和史曹参判。李宁斋在1896—1902年间任公立小学教员,因痛恨日本吞并朝鲜,1922 年在庆尚北道青松市袭杀两名日本巡警,流亡中国汉口。之后以大同协会代表和临时政府独立运动团成员的身份,致力于韩国复国斗争。1944年秘密回国后被日本警察拘捕,幽禁于忠清南道鸡龙山深山。当年7月瘐死于囚禁中,葬于鸡龙山国师峰。曾在中国庐山、鸡公山、北固山、岳麓山等名山大川留有"笑啼岩"碑刻。

据泰山学院周郢院长在研究文章《泰山李宁斋"笑啼岩"觅踪》文中记载:"笑啼"典出《周易》爻辞中"旅人先笑后号咷"。李宁斋流亡中国期间,遍游中华名山,其屐痕所至之处,皆大书"笑啼岩"三字。并将中国目前发现的五处"笑啼崖"进行了描述,共有摩崖石刻3处,碑刻2处。

第一"笑啼岩",在江西庐山秀峰龙潭,刻于民国二十一年(1932年)。

【图片=新湖南提供】

在"笑啼岩"侧有四川阆中何万信附记称:"宁斋先生韩遗民也,国亡来华。睹吾国现状颇与韩同,乃亲书'笑啼岩'三字于此。"碑中刻的"韩"字也证明了这一点。

第二"笑啼岩",在河南信阳鸡公山,刻于于民国二十三年(1934年)。碑体右侧"第二"两字十分明显。

【图片=新湖南提供】

第三"笑啼岩",在江苏镇江北固山,推测刻于民国二十五年(1936年)前后。碑体右侧"第三"两字一目了然。

【图片=新湖南提供】

第四"笑啼岩",在泰山大众桥与黑龙潭间,刻于民国二十五年夏(1936 年)。现照为残碑,系2003年泰安市对黑龙潭水库整修时挖出。起初推断为冯玉祥所书《墨子非攻》残字,后经考究,字体与庐山秀峰龙潭"笑啼岩"之岩字笔法相近。李宁斋书兼有颜体圆浑与魏碑拙重,此残碑在横、竖、撇、捺收笔处都具有这一特点,应是出自同一人之手。特别是岩字右侧竖划,分明为"啼"字"口"部之残痕。因此断定,龙潭水库清淤所出残石,便是失传已久的李宁斋"笑啼岩"题刻。

【图片=新湖南提供】

第五"笑啼岩",在湖南长沙岳麓山白鹤泉西侧山麓,刻于民国二十六年(1937年)。据民国时游人在岳麓山所留照片来看,原碑右上角的"第五"两字清晰可见。

【图片=新湖南提供】

在考证中,周郢院长对"第一""第二""第三""第四""第五"皆作了详细举证。第一块"笑啼岩"由来的考证,民国吴宗慈《庐山续志稿》中有记载:"笑啼岩,民国廿一年韩人李宁斋刻。李年六十三岁,有《壬申记》述游庐事。李宁斋曾自述在华期间"游遨胜地,怆怀故国,欲啼不得,欲笑不得云云"。

同时,胡滔滔生前在出版的《两个世纪的光影》一书中对"第一""第二""第三""第五"也进行了详细说明,并结合景区曾经开发的韩国"国父"金九先生避难临时住所,做了大量的研究工作,提出了很多建设性的疑问,如:虽第四"笑啼岩"不可考,但必定有。以及未知是否有"第六"或更多……等等,但近年来始终未有更进一步的调查结果公布。

功夫不负有心人,近期根据热心人士提供线索,终于找到了第六块"笑啼岩"的"芳踪",也算是给前人多年来的困惑,写下一个圆满的句号。第六"笑啼岩"位于广西龙州中山公园内,这块碑刻保存完好,解开了所有疑问。因为它对第一至第五"笑啼岩"的位置和由来都作了详尽介绍,相关记载如下:

第一,纪念东三省在江西庐山瀑布下青玉峡。第二,纪念上海战争在河南信阳州鸡公山鸡公头。第三,纪念塘沽辱盟在江苏镇江甘露寺石窟庵。第四,纪念华北在山东泰山大众桥上黑龙潭下。第五,纪念逃难在湖南长沙岳麓山白鹤泉。第六,纪念山不穷水不尽。后落款:七十翁李宁斋题,廿八年元月,管庆华、张学荣、许鹤年、正友良、陈兆邦、吴国雄仝撰。

按理来讲,所有"笑啼岩"碑位置全部找到,也可证明那些神乎其神的"故事"系杜撰的民间传说(岳麓山上有民间故事"葛仁与花仙爱情"流传于世。同时还传出岳麓山"笑啼崖"之名,源自该区域山坡陡峭、岩石兀突、林木茂密,时有山风激岩回荡,啸然有声,若夜深人寂,更是呼啸阵阵,似笑似啼)。然,就在考证应该告一段落时,第六"笑啼岩"中关于由来的介绍文字,作者极感兴趣。

石刻上写道"笑啼岩":第一,纪念东三省……。第二,纪念上海战争……。第三,纪念塘沽辱盟……。第四,纪念华北……。第五,纪念逃难……。第六,纪念山不穷水不尽。结合现有考证的年份及对应历史发生的中日大事纪,有了惊人的发现。

第一"笑啼岩"立于民国二十一年(即1932年),是为了纪念东三省在江西庐山瀑布下。那么东三省究竟发生了什么重大事件呢?我们在历史中找到了答案:1931年9月18日晚上,日本关东军安排铁道"守备队"炸毁沈阳柳条湖附近的南满铁路路轨,栽赃嫁祸于中国军队,并以此为借口,炮轰沈阳北大营,发动"九一八事变",到1932年2月5日,哈尔滨沦陷,四个多月的时间里,东三省全境落入敌军统治。

第二"笑啼岩"立于民国二十三年(即1934年),纪念上海战争在河南信阳鸡公山。占领东北后,日本进一步扩大对中国的侵略,次年进攻上海,遭到了国民革命军第十九路军等部队的奋起抵抗,后在西方列强的调停下,双方签定了停战协议。虽然战乱平息,但在协议中设置了三项对中华民族的不利条款,国人视为耻辱:一是国民政府取缔全国抗日运动;二是把抵抗日本侵略的十九路军换防,调离上海;三是上海若干地区中国军队不能布防,日军可以驻留吴淞、闸北等地,从而使上海门户大开,为后来日军发动全面侵华战争创造了有利条件。于是在1934年4月20日,由中国共产党提出,经宋庆龄、何香凝、李杜等1779人签名,发表了《中国人民对日作战的基本纲领》,呼吁中华民族武装自卫,把日本帝国主义驱逐出中国。5月,上海成立了"中华民族武装自卫委员会总会"。

第三"笑啼岩"立于民国二十五年(即1936年),纪念塘沽辱盟在江苏镇江甘露寺。1932年国际联盟调查团抛出纵容日本侵略的"李顿报告书",被国民党政府所接受。同时出于利益关系,国际联盟的许多国家对日采取了安定政策。1933年美国新任总统罗斯福向各国发出不承认满洲国的通告,并表达出对日强硬态度。日本因此公开反对,随后宣布退出国际联盟,并进攻华北,占领通州。国民党政府对侵入华北的日军继续采取不抵抗政策,由何应钦出面派熊斌与冈村宁次谈判并签订《塘沽协定》。主要内容:一是长城以南设置100公里的"非武装地带",中国军队退至延庆、昌平、高丽营、顺义、通州、香河、宝坻、林亭口、宁河、芦台所连之线以西、以南地区,以后也不能越过该线;二是为确保第一项落实,日军随时可用飞机或其他方式视察,中国军队要加以保护和提供便利;三是长城线以南的上述地区的治安维持工作,由中国警察机关担任;四是不能使用刺激日军感情的武力团体出任警察机关。某种意义上来讲,这个协议把长城作为了中国与"伪满洲国"的分界线,划定大片面积作为日军自由行动区,在丧失主权的同时也为日军控制整个华北提供了方便。

第四"笑啼岩"立于民国二十五年夏(即1936年),纪念华北在山东泰山大众桥黑龙潭。"华北事变"是指1935年,日本帝国主义企图侵略华北和南京国民政府在华北继续妥协退让、丧权辱国的一系列事件的统称。其内容包括"河北事件"及《何梅协定》;"张北事件"及《秦土协定》;"华北五省自治运动"及"冀察政务委员会",这些事件基本上都发生在华北地区,故称华北事变。华北事变是日本侵略中国、称霸世界的一个重要步骤,虽一时得逞,但遭到中国人民的坚决反对。华北事变后,中日民族矛盾上升为主要矛盾,中国的政治形势发生了重大变化,影响重大。揭开了国共两党由内战到和平,由分裂对峙到合作的序幕,标志着十年内战局面基本结束和抗日民族统一战线初步形成。

第五"笑啼岩"立于民国二十六年(即1937年),纪念逃难在湖南长沙岳麓山。1937年日军发动"七七卢沟桥事变"后,北平、天津失陷,11月13日"淞沪会战"以国民党退出,上海失守告终。战争是残酷的,导致的后果就是生灵涂汰、民不聊生。沦陷后平津沪地区的各级政府机构、文化机构、工厂企业、各类院校都开始往内地进行战略转移。湖南成为抗战初期大后方重要的战略基地,长沙作为自古有名的"四大米市",在这场悲壮的大撤退大逃亡中,成为首选地之一。据统计"文夕大火"前夕,受战乱影响长沙人口由30多万增加到50多万人。辟如当时的"国家教育部"就在长沙的岳麓山下,以南开、北大、清华为基础设立了临时大学,筹备组建了长沙临时大学。

第六"笑啼岩"立于民国二十八年元月(即1939年),纪念山不穷水不尽广西龙州中山公园。日军铁蹄在华夏大地肆虐,1938年10月占领了广州。冈村宁次的部队与第九战区相峙于新墙河两岸,长沙城面临严重威胁。此时,李宁斋与友人一道,已栖身在中国广西西南部的边陲重镇龙州。此时抗战的形势不容乐观,国家的前途和个人的命运尚未可知。多年来,李宁斋从江西到河南,再辗转江苏、山东、湖南等省,最后到达广西龙州,随着题碑地点的转换、数量的增多,但可供停留活动的地方也越来越少。这对一个本身就有着家破国亡之痛的文人来讲,心中是何等的凄惨苦涩。在万般无奈的同时,其心中也是坚守着"山不穷水不尽",总能找到一条出路的坚定信念。

截止今时,除泰山黑龙潭第四"笑啼岩"只剩残碑,且因后期保管不善遗失外,所幸其余碑刻保存完好。六块"笑啼岩"的全部找齐,带给我们的不仅仅是直观上的文化和艺术价值,更多的是对于历史的深思,李宁斋作为一个流亡在中国的外国人,"笑啼"二字既寓含他流落时深沉的亡国之痛,也表达了对华夏动荡离乱局势的忧虑和叹惋。日本的侵略,是中国人民不可忘却的一段历史,这既是一段屈辱史,也是一段奋进史。这些碑刻,是中韩两国友谊的有力见证,也是勉励中韩人民革新自强、砥砺奋进的爱国主义教育生动课堂。

(文章转自新湖南公众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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