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는데요." "다음 선고기일 때도 많이 오실건가요."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청사 동관 558호 법정. 재판장인 김양호 부장판사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6년 만에 열린 첫 변론기일에서 법정을 가득 메운 방청석을 바라보며 난색을 표했다.
이날 법정에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 그들의 대리인, 앉을 공간도 부족해 선 채로 변론을 한 16개의 일본 기업 측 대리인, 기자들이 있었고 법정 밖 복도에는 미처 들어오지 못한 피해자와 유족도 있었다. 재판부는 정말 이 소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재판 시작 전과 종료 직후 법정에서 작은 소란이 있기도 했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우리나라 변호사들에게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냐', '돈이면 다인가' '일본 앞잡이'라고 소리치며 원성을 쏟아냈다.
이성화 사회문화부 기자 |
아마도 재판부는 일본 기업들을 대리한 대형 로펌 변호사들에 대한 비난이 선고기일에는 자신들을 향할 것이 두려웠나보다. 이를 의식한 듯 재판부는 선고기일 3일 전 갑작스럽게 일정을 변경했다. 당초 선고일자는 지난 10일로 예정돼 있었는데 갑자기 7일로 바뀐 것이다. 재판부는 '법정의 평온과 안정'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해 선고기일을 변경한 것이고 대법원 판결에 따라 당사자에게 고지하지 않더라도 위법하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재판부의 뜻대로 선고 당일 법정의 평온과 안정을 지키는 일에는 성공했을지라도 그 법정을 둘러싼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들은 '부당한 판결'이라며 규탄했고 재판장인 김 부장판사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3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판결문을 다 못 써서, 법리 검토가 더 필요해서 등의 이유로 선고기일을 뒤로 미루는 일은 종종 있어도 앞당기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한 현직 법원장은 '난센스'라는 표현을 쓰며 판결을 비판하기도 했다.
원고 측은 기일 변경을 통지받은 당일 선고하겠다는 법원에 1차적으로 당황했고 소송으로 개인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제한되므로 소송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판결 내용에 2차적인 충격을 받았다.
적어도 과거 13년간 재판을 반복하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논리를 한 번에 뒤집는 판결을 하면서 패소 결과를 받을 피해자와 유족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본래 선고기일에 방청을 원하는 당사자들이 참석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판결 이유를 설명해줬다면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웠을까 싶다.
피해자들은 오늘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부디 항소심에서는 양측에 충분한 변론 기회가 주어지고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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