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 의료·어린이 복지에 각별한 관심
이 회장 소유 미술품 국민의 품으로...문화유산 중요성 강조
2008년 사재출연 약속도 지켜..."이 회장의 정신 계승"
[서울=뉴스핌] 구윤모 기자 =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할 것."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들이 28일 발표한 사회 공헌 계획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이 회장의 '사업보국' 정신이 깃들어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족들은 1조원을 감염병 대응과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 환자들을 돕는 데 기부하기로 했다. 또 이 회장이 보유하던 미술품을 기증, 국민의 품에 안겨주기로 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13년 전 자신이 했던 약속도 지키게 됐다. 이 회장은 지난 2008년 특검의 삼성 비자금 수사 이후 "실명 전환한 뒤 벌금과 누락된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것을 유익한 일에 쓰겠다"며 사재출연을 약속한 바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진=뉴스핌 DB] |
◆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
이 회장 유족들은 감염병 대응에 70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고인은 지난 1994년 당시 3300억원을 들여 삼성서울병원을 건립해 선진국 수준의 병원을 국민들에게 제공했으며, 2000년에는 서울대의대 암연구소에 300억원을 기부하는 등 국내 의료 서비스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이 회장의 정신을 이어 받은 삼성그룹은 지난해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마스크 확보, 병상 제공, 의료진 파견 등 다양한 노력을 선제적으로 펼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백신 확보를 위해 직접 해외 출장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기부금 7000억 중 2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될 예정이다.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일반·중환자·고도 음압병상, 음압수술실, 생물안전 검사실 등 첨단 설비까지 갖춘 150병상 규모의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될 예정이다. 기부금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출연된 후, 관련 기관들이 협의해 감염병전문병원과 연구소의 건립 및 운영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소아암·희귀질환에 걸려 고통을 겪으면서도 비싼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3000억원을 지원한다. 앞으로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백혈병·림프종 등 13종류의 소아암 환아 지원에 1500억원, 크론병 등 14종류의 희귀질환 환아들을 위해 600억원을 지원한다. 향후 10년 동안 소아암 환아 1만2000여명, 희귀질환 환아 5000여명 등 총 1만7000여명이 도움을 받게 될 전망이다.
아울러 증상 치료를 위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소아암, 희귀질환 임상연구 및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유족들은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주관기관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 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어린이 복지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고인이 취임 후 사실상 첫번째로 추진한 사회공헌 활동 역시 어린이 복지 사업이었다.
지난 1989년 사재 102억원을 출연해 삼성복지재단을 설립했고, 이를 통해 같은 해 12월 첫번째 어린이집인 '천마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이후에도 이 사업은 꾸준히 지속돼 지금은 전국 30여개 삼성어린이집이 운영되고 있다.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외부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창밖에 낙후된 주택들이 밀집돼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비서진을 불러 어린이집을 만들라고 지시한 일화도 유명하다. 저소득층 어린이들도 양질의 보육 프로그램을 통해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희망의 사다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고인의 평소 소신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이 회장은 어린이집 건설 중에도 직접 현장을 찾아 "5살, 6살 어린이들이 생활할 텐데 가구 모서리가 각이 져서는 안된다"고 당부하고 "하루 급식의 칼로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였고, 이후 개관 소식을 보고 받고는 "진작에 하라니까 말이야"라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고인은 삼성복지재단을 통해 소년소녀 가장 지원 사업, 민간 복지기관 지원 등을 진행함으로써 '빈곤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어린이 복지를 향상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 2002년에는 총 4500억원을 출연해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2006년 사재 3500억원을 추가해 교육부로 이관하는 등 어린이·청소년 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2020.10.25 sunup@newspim.com |
◆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
이번 사회 공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목은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미술품 기부다. 유족들은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이 회장 소유의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 1000여건, 2만 3000여점은 국립기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감정가만 총 3조원에 달하는 것을 알려졌다.
고인은 지난 2004년 리움 개관식에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 회장의 미술품 역시 고인의 이 같은 철학에 따라 국민의 품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우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 또는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 1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한국 근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자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국민들이 국내에서도 서양 미술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기증하기로 했다.
지정문화재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어 국내 문화자산 보존은 물론 국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 및 미술사 연구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 관계자는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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