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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중단된 북·중 무역, 4월 재개 가능성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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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북·중 국제열차 운행 재개 위해 철길 점검 중"
김정은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서울=뉴스핌] 이영섭 기자 = 코로나19 발생 이후 중단됐던 북한과 중국의 무역이 4월부터 재개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중국 료녕성 단둥시의 한 조선족 소식통은 30일 "어제 단동역에서 근무하는 지인이 다음 달에 조선과의 국경무역을 재개하기 위해 신의주로 이어지는 철길에 대한 점검 및 보수작업을 시작했다고 알려줬다"며 "4월부터 중·조 국제열차운행을 재개하기 위해서 철길을 점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를 잇는 '조중친선다리' [사진=로이터 뉴스핌]

소식통은 "코로나 발생 이후 1년이 넘도록 문을 굳게 닫고있는 단동과 신의주 세관도 검역 시설을 새로 갖추고 무역이 재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며 "지금까지 1년이 넘도록 두 나라 사이에 국제열차가 한번도 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로 상태를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정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또 "중·조 국경을 오가며 운행을 재개할 국제열차는 일단 객차를 제외한 화물차량만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북조선이 경제발전계획 수행에 당장 필요한 식량과 건축자재, 영농물자를 수입하기 위해 국경을 개통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서 "요즘 며칠째 단동역 선로점검인원들이 철로에 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들은 형광색의 안전복과 안전모를 착용한 채 작업을 하고 있어서 압록강 철교부근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단동을 출발한 국제열차가 신의주를 걸쳐 평양까지 갔다"며 "하지만 이번에 운행을 재개해도 북조선의 코로나비상방역체계가 해제되지 않은데다 사람이 타지 않은 화물전용 열차인 때문인지 단동·신의주 사이만 오가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단둥시의 또 다른 소식통은 31일 "북조선 신의주와 단동을 잇는 국제열차가 4월부터 다시 운행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국경이 다시 열리더라도 사람의 이동은 금지하고 화물운송만 가능하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오늘도 압록강철교에는 숱한 점검인력이 동원되어 선로를 보수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코로나방역을 매우 엄중한 사안으로 보는 북조선에서 국경을 재개하는 것을 보면 북조선의 경제사정이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증언했다.

소식통은 또 "단동에는 벌써 중·조무역이 재개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무역 관계자들과 무역대방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며 "1년 넘게 북조선과의 무역이 중단되면서 파산직전까지 몰렸던 단동 일대의 무역대방들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북조선 측이 머지않아 중국과의 무역을 재개할 것이라는 소문은 그동안 여러 번 단동지역에서 돌았으나 대부분 실현되지 않아 번번이 무역대방들을 실망시켰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단동지역에 주재하는 북조선 무역일꾼들의 움직임이나 압록강철교 점검작업 등을 감안할 때 4월 중·조무역 재개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양국 무역관계자들의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 2월 22일 웹사이트에 올린 '국가 전략계획 수정' 안내를 통해 "만일 심대한 위협이 있고, (국경을 통한) 식량 반입이 가능하지 않으면 2021년에 (대북 식량지원) 활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월 1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농업을 추켜세우는 것은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주의 건설을 성과적으로 다그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뤄서라도 반드시 결실을 봐야 할 국가중대사"라고 인민들의 식량 문제를 강조했다. 

nevermind@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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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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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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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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